나는 식이장애 환자다
작성자 나나
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나는 식이장애 환자다
이 글은 어떻게 마무리지어야 할까? 너무도 어려웠다. 심각한 수준의 식이장애에서 빠져나온 것은 맞다. 그러나 아직 진행 중이다. 내가 이 글을 쓴 건, 심각한 수준의 식이장애를 겪는 또 다른 나나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위로하고, 식이장애를 겪는 사람의 주변인에게 식이장애를 알려주고, 식이장애는 아니더라도 식사와 운동에 어느 정도 강박/압박을 느끼는 사람에게 나처럼 되지 않기를 말하고 싶어서이다. 이 기록을 통해 내 식이장애를 되돌아보고, 큰 과정에서의 오답노트를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럼 그 다음은? 이제 내 얘기를 어느 정도 들려줬고, 정리도 됐다. 그럼 이 글은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까? 혹은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자연스레 서사가 완성됐다.
휴직을 하고 나서는 상담을 가지 않았다. 나는 회사 상담실을 다녔고, 휴직을 하면서 자연스레 발걸음이 끊겼다. 복직했다고 갑자기 찾아가는 것도 어색했다. 내 나름의 루틴을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중간에 상담실과 정신과를 같이 다닌 적이 있는데, 이게 정해진 답은 없는지라 상담 선생님과 의사 선생님의 의견이 조금 다른 경우도 있었다. 내 아픈 상황을 계속해서 설명하는 데 지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어둠 속으로 파고들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휴직 간 있었던 일을 모두 토해내는 게, 솔직히 말하면 귀찮고, 그러다 과거로 돌아갈까 겁나기도 했다. 그래서 온전히 내가 이겨내고자 했다.
물론 아예 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업무 중에 시간을 내기 어렵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무너질까 두려웠다. 이상하게 상담실을 가면 나는 항상 울었다. 엉엉 울지는 않았다. 다만 상담 받는 내내 주륵주륵 눈물을 흘렸다. 나는 슬플 때, 엉엉 꺽꺽 우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소리 없이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감정의 동요가 커도, 뭔가 내가 동요됐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티를 안 내려고 하는 건지 뭔지. 그렇게 조용히 눈물만 흘리면 그게 내 슬픔을 감추는 증거 같아서 더 슬퍼지곤 했다. 상담실에 가면 또 울 것 같아서, 그 슬픔이 덮칠 것 같아서 혼자 나아가 보기로 한 것 같다.
뭐, 사실 이유가 있겠나. 그냥 어찌됐든 가기 힘들었다. 상담 예약이 빈 시간을 찾아 종종 들어갔지만, 예약하진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다시 상담을 예약했다. 정확히 말하면 예약했다가, 20분 정도 후에 취소했다. 회사 상담실은 예약 후 상담실 선생님의 승인을 받아야 확정되는 구조였다. 승인이 되기 전 취소했다. 용기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막상 가면 할 말이 없는데’ 싶기도 했다. 실제로 나는 어느 정도,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정상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돌아왔다. 내가 순간 순간 힘에 부치는 때는 있지만, 어쨌든 과식도 하고, 운동도 적당한 수준으로 한다. 귀찮아하기도 한다. 예전엔 귀찮아도 티를 못냈다. 지금은 ‘어휴, 그래도 해야지’ 하면서 운동한다. 많이 먹으면 울거나 답답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여전히 하루에 무겁게 먹는 끼니가 2끼 이상 있으면 힘들어 하지만, 그런 변수 외에는 괜찮다. 그래서 괜히 상담실에 가는 게, 다른 사람의 상담 기회를 뺏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취소했다.
그래도 내가 예약했던 기록은 남으니까, 그걸 보고선 상담 선생님이 메일을 보냈다. 본인이 일이 바빠 못 봤다고, 곧 뵐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다행히 그 메일을 받고 바로 30분 뒤 시간대 예약이 비어 있었다. 예약했고, 곧이어 승인 메일이 왔다. 상담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는데, 우연인지 일부러 열어두신 건지 몰라도 그랬다. 괜히 환영받는 느낌이었다. 거의 1년만에 뵙는 건데 날 기억하실까?
가볍게 두 번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선생님, 혹시 저 기억하세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랜만에 보아 반갑다고 이야기하셨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했다. 상담실 안에 작은 방이 있는데, 그 방에서 상담이 진행됐다. 그 방으로 먼저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
“식이장애 상담이라고 적혀 있어서, 이거 어떡하나 걱정했어요”
선생님이 들어오며 말씀하셨다. 상담을 신청할 때는 상담 내용을 입력하게 돼있다. 뭐라고 써야 하지, 고민하다가 ‘식이장애 상담’이라고 썼다. 일단 나를 기억하시는지 모호했고, 그간 식이장애 상담이라고 써왔는데 이걸 뭐 다르게 표현하기도 모호했다. ‘감사의 인사’라고 쓰기도 이상하고, 엄연히 말하면 완치도 아니니까? 그렇다고 식이장애 경과 보고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상담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했다. 30분 예약하고 갔는데, 결론은 1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어떻게 나아졌는지, 휴직 기간은 어떻게 보냈는지, 그 과정에서 결혼을 결심하고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너무 감사하다는 이야기도 드렸다.
선생님은 정말 신기하다고 했다. 어떻게 이렇게 달라졌냐고, 혼자 이렇게까지 올라왔냐고 하셨다. 이 시리즈에서 써왔듯 내 극복 과정을 조금씩 이야기했다. 그리고 사실 아직 완치라 하긴 모호하고, 결국 이 식이장애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면 지금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데, 결혼은 ‘몸매’에 대한 압박을 느끼게 할 환경이 많으니, 그런 환경에 나를 덜 노출하기 위해 결혼 준비 기간을 짧게 잡았다. 어차피 결혼식에 관한 로망도 없어서 드레스 투어로 여러 샵을 다니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한 군데만 지정해서 가기로 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늘어놨다. 선생님은 잘했다고,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나는 그 당시 선생님이 나의 치료 성공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나님, 나을 수 있어요’ 그치만 선생님은 사실 본인도 ‘이게 맞나, 이래서 나아질 수 있나’ 늘 고민하셨다고 했다.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선생님께도 말씀드렸지만, 사실 여러 가지 요소 중 내게 가장 힘이 됐던 건 ‘나아짐에는 부침이 있다’는 말 하나였다. 나는 한 번 무너지면 끝인 줄 알았다. 식사량을 열심히 늘려가다가, 갑자기 폭식을 하면 ‘망했다’고 생각하고 다시 거식으로 돌아가려 했다. 조금만 삐끗하면 세상이 무너지는줄 알았다. 그럴 때마다 ‘나아짐에는 부침이 있다’는 선생님 말씀을 떠올렸다. 그래, 오늘 망했더라도 내일 다시 잘하면 되지. 이 말은 꼭 식이장애 뿐 아니라 내 삶에도 조금씩 적용되고 있다.
인생은 어차피 부침이 있는 거니까.
나는 여전히 식이장애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치만 인생에 부침이 있는 거니까, 그냥 그 ‘침’, 떨어짐을 조금씩 줄이고, 조금씩 올라가서, 그냥 조금씩 조금씩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더 나은’은 남의 시선이 아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
나는 나니까! 나는 식이장애 환자고, 그래도 나답게 살아가려 애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