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경직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면 이런 걸 것 같다

사후경직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면 이런 걸 것 같다

작성자 나나

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사후경직을 미리 경험할 수 있다면 이런 걸 것 같다

나나
나나
@naneunn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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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 마지막 야식. 2021년 12월 31일이다. 건강엔 야식을 안 먹는 게 좋지만, 야식을 끊은 계기가 나빠진 정신 건강 때문이라는 건 슬프다.

내가 식이장애일 거라는 거, 내가 몰랐을까? 아니다. 근데 마르고 싶기도 하고.. 이상한 생각이 나를 묶었어서, 그냥 누군가가 뜯어 말려주기를 바라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은정이가 상담 받으라고 했을 때, 어쩌면 그냥 핑계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냉큼 날짜를 잡고 상담을 받겠다고 했다. 1년 뒤에는 거식증 장례식을 치르자고 했다.


어두운 구름과 대조되는 밝은 귤 껍질

장례식까지 치를 정도는 못됐지만, 식이장애 혼수상태 정도는 만들었다. 그 당시, 초반에 나는 꽤나 열심히 내 상태를 기록했다. 그게 바로 '사실 이 식이장애가 제일 답답한 건 나야'의 기초 기록(?)이다. 나는 뭐 사실 지금도 대단하게 식이장애를 극복한 건 아니고, 하루하루가 어렵다. 누군가는 이 병에 완치는 없고, 재발도 쉽다고 한다. 그래도 그냥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다. 식이장애 생존자로 살아가고 있고 누군가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식이장애에서 살아남았다고, 그런 이야기가 필요했어서 나도 그런 사람들에게 작은 용기라도 되고 싶었다. 그래서 기록을 시작했다. 오래 지속되진 못했지만, 그렇게 조금씩 글을 썼다.

이게 그 기록이다. 실명을 제외하고는 날 것 그대로 옮겼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마저 내 정신 상태다.

뭔가 이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돈을 쓰긴 싫었다. 정신과를 가는 게 무섭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회사 상담을 예약해서 갔다. 근데 정신과든 회사든, 이렇게 상담을 간 건 진짜 잘한 일이었다. 선생님한테 이야기하면서 나는 모든 걸 횡설수설 쏟아냈다. 선생님은 정신과를 가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158cm에 32kg정도?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내가 운동 강박으로 그 당시 하루에 약 2만 5천보 정도씩 걸었는데, 선생님은 그 정도면 입원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고 했다. 입원하기는 싫었다. 그치만 이런 모든 말들을 듣고 나니까, 그제서야 내 몸이 보였다. 사실 이전에도 머리가 빠지고, 걷는 게 힘들고, 몸이 아팠는데, 어떻게 보면 부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걸 인정하고, 상담을 갔다가 애인을 만났는데, 상담 선생님이랑 했던 이야기를 정리해서 해주고 나니까, 뭔가 내가 식이장애라는 게 실감이 났다.

날씨가 맑았으면 좋겠지만, 어두워도 그런대로 매력이 있다

그 당시는 봄과 여름의 사이였는데, 나는 그때도 피부가 터 있었다. 근데 이전에는 한 손만 터 있었는데, 내 상태를 인정하고 나니까 갑자기 반대 손도 다 갈라지기 시작했다. 온 몸이 갑자기 이상해졌다. 그러고 애인과 조금 걷다가 화장실을 갔는데, 잠시 눈을 감았다. 근데 거기서 내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겨우 집을 갔다. 화장실에 겨우 앉았는데, 계속 소변을 봤던 것 같다. 그러고는 유언처럼 애인에게 횡설수설, 여러 말을 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사실 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말하면서도 "내가 이 말을 하고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후에 얘기하기를, 이런 내 모습과 말이, 내가 진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애인은 너무 무서웠고, 잘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