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모스빵을 1/4로 나눌까, 1/6로 나눌까? 1시간 넘게 고민했다
작성자 나나
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맘모스빵을 1/4로 나눌까, 1/6로 나눌까? 1시간 넘게 고민했다

휴직을 허가 받는데는 거의 1달이 걸렸고, 휴직 예정일 2일 전에야 최종 승인이 났다. 휴직일은 그렇게 준비도 없이 찾아왔다. 나를 괴롭히던 것들이 눈에서 사라지니 좀 괜찮아졌다.
아니, 괜찮아지는 줄알았다. 나를 괴롭히던 것이 눈에서 사라졌다는 건, 휴직을 했다는 건, 이제 내 환경의 많은 부분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단 거다. 통제를 한단 건 결정을 하고 책임을 진단 거다.

통제, 자유, 책임, 간섭의 상실, 온전히 나만 있는 공간, 나의 생각.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했다. 뭐 이렇게 서론이 기냐면, 그게 바로 내 먹는 것과 운동에도 적용됐기 때문이다. 먹는 강박과 운동 강박 모두 차차 줄여나가는 중이었다. 운동은 사실 쉬웠다. 50분을 40분으로 줄이고, 운동 영상 4개를 3개로 줄이고, 그렇게 숫자가 명확했다.
너무 어려운 건 음식이었다. 배고픔과 배부름의 감각을 잃어버렸고, 1인분의 적정량이 정말 어려웠다. 차라리 남들이랑 먹을 땐 식당을 가니까 괜찮았다. 근데 휴직을 하면, 약속이 있으면 괜찮지만 어쩔 수 없이 혼자 먹는 끼니가 늘어갔다.
심지어 나는 식사를 너무 적게 하지 않기 위해서 ‘메인 두 끼/한 끼’ 따위의 규칙을 정해놓곤 했다. 하루는 점심, 저녁을 꼭 제대로(외식 등) 챙겨 먹고, 하루는 한 끼만 먹어도 되는 거다. 물론 한 끼만 먹어도 되는 날은, 어쩌다 두 끼를 먹으면 그 다음날 꼭 한 끼만 먹곤 했다. 살 찌는 게 무서워서. 그래도 어쨌든, 한 끼라고 제대로 먹는다는 건 참 희망찬 일이었다. 그런데 그 ‘제대로’가 너무 어려웠다. 혼자 먹는 날은 더 그랬다.

나는 식이장애를 겪으며 이상한 빵, 디저트 집착이 생겼다. 빵, 디저트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혼자 뭘 먹을 때면 꼭 내가 좋아하는 빵, 디저트를 끼니로 먹어야 했다. 밥을 먹는 건 뭔가 아까웠다. 좋아하는 음식으로만 살을 찌우고 싶었다.(뭐 사실 이건 지금도 그렇다) 아예 음식을 제대로 밥으로 먹거나 하면 모르겠지만, 빵이랑 디저트는 끼니로 먹자니 1인분 양이랄 게 정말 모호했다.
너무 어려웠다. 칼로리를 안 보려고 했는데, 일단 적정량을 찾기 위해 칼로리를 찾아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메인 한 끼인 날은 한 끼에 500kcal는 무조건 넘기려고 했다.(이는 서서히 800kcal 정도로 바뀌어갔다.) 그렇게 찾은 건 CU의 이웃집통통이 황치즈 약과쿠키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디저트는 황치즈, 피스타치오, 쑥류인데, 이웃집 통통이 황치즈 약과쿠키가 딱 600kcal 내외였나, 그랬다. 좋아하는 황치즈를 카페에 가지 않고도, 가까이서 먹을 수 있으니 그게 너무 좋았다. 나는 ‘먹계획’을 짜는 게 습관이었다. 하루 이틀치의 음식 스케줄을 생각하는 거다. 그래서 약속이 없는 메인 끼니를 먹기 전에는 미리 약과 쿠키를 사러 갔다. 그게 그렇게 즐거웠다. 황치즈 약과쿠키는 솔직히 내 기준 그냥 먹으면 그저 그랬고, 얼려 먹어야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약과 쿠키를 사오는 날 냉동실에 쿠키를 넣기까지의 발걸음이 너무 설렜다. 쿠키가 부서질까봐 손에 조심조심 들고 왔다. 이걸 먹을 때면, 쿠키가 내 눈 앞에서 사라지는 게 아쉬웠다. 그럼 하나 더 먹으면 되는데 그렇게는 또 못했다. 돌이켜 보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래도 이 황치즈 약과 쿠키는 내 식이장애 극복에 정말 큰 도움을 줬다. 그렇게 나는 황치즈 약과 쿠키를 엄청 자주 먹었다. 지금도 좋아하는 음식이고, 고마운 음식이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쿠키만 먹을 순 없다. 빵도 먹어야지. 우리 집 옆에는 엄청 유명한 맘모스빵집이 있었다. 맘모스빵이 나오는 시간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곤 했다. 휴직을 하니 좋은 건 평일 낮에 힘들게 줄서지 않고 빵을 살 수 있단 거였다. 아침 산책을 갔다가 맘모스빵을 사오는 건 나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황치즈 쿠키만큼은 아니었지만, 맘모스빵도 너무 너무 맛있었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건 크림빵류인데, 이 집 맘모스는 이런 옛날빵이 취향이 아닌 내게도 맛있었다.

근데 이 맘모스는 내겐 절망이었다. 약과 쿠키는 어차피 한 개고, 칼로리도 적절했다. 맘모스는 이걸 소분해야 했다. 그게 나한테는 너무 어려웠다. 나에게 소분이라는 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과제였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봤다. 근데 사실 맘모스를 끼니로 먹는 사람들은 잘 없다. 대부분 간식으로 먹으려고 정말 한입 크기로 쪼개서 소분을 한다. 나처럼 빵을 메인 끼니로 먹으려면 얼만큼 소분해야 하는지 참고할 수가 없었다. 사실 정해진 건 없다. 내가 먹고 싶은만큼 먹으면 된다. 그런데 그때 나에겐 그게 너무 어려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빵집 맘모스빵이 너무 유명한 덕에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도 그 맘모스 빵을 살 수 있었다. 나는 스마트 스토어를 통해서 살 필요가 없었지만 스마트스토어에 들어갔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맘모스빵 칼로리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 맘모스 빵은 대략 1,800kcal 정도였다. 이걸 어떻게 나눠야 할지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남편은 황치즈 쿠키와 비슷하게 먹을 수 있게 이걸 1/3로 나누라고 했다.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맘모스 빵은 비교적 동그랗게 생겼고, 크기도 크기 때문에 이걸 1/3로 나누는게 힘들었다. 어떤 조각이 필연적으로 더 크고 어떤 조각이 필연적으로 더 작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표 선 긋듯이 그으면 되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건 나에겐 너무 힘들었다. 결국 나는 이걸 비교적 편차가 적은 조각으로 나누기 위해 1/4로 나눌지 1/6로 나눌지 미친 듯이 고민했다. 나는 그 당시 1/6 쪽이 조금 더 끌렸는데, 덜 먹는게 살이 덜 찌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그래도 1/4을 해 보라고 했다. 나는 사실 고집이 엄청 세서 남편의 조언도 잘 듣지 않았지만, 정말 고민되는 순간에 남편이 이렇게 말하면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머릿속으로 아닌 걸 알지만 강박이 이기려고 할 때, 나 혼자라면 이성이 지겠지만, 남편의 말을 핑계로 이성이 이기는 때도 종종 있었다. 이때도 머릿속으로는 1/6보다 1/4을 먹는 것이 메인 한 끼인 날도 있는 나에게 훨씬 적절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였다. 4분의 1로 하기로 하고도 빵을 자르는 것은 나에게 너무 어려웠다. 내가 어떤 조각을 일부러 크게 자르나? 많이 먹으려고 너무 크게 자르나? 적게 먹으려고 너무 작게 자르나? 내가 거식을 하고 싶은 건지, 폭식을 하고 싶은 건지 나조차도 모르겠는데, 양쪽으로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을 계속했다. 사실 어차피 그 맘모스 빵은 나와 남편이 나눠 먹을 것이고 주로 내가 먹을 거였다. 크기가 차이 나봤자 얼마 한다고, 그걸 자르는 게 죽도록 힘들었다.
한 번은 근처에 다른 맘모스빵 맛집이 있다길래 그 맘모스빵도 사 먹어 보고 싶어졌다. 근데 그러면 이 맘모스빵은 어떻게 잘라야 하는지 어려웠다. 맘모스빵 크기는 가게마다 조금씩 다를 거니까 이건 1/4을 해야 하는지 6분의 1을 해야 하는지 너무 어려웠다. 인터넷에 그 빵집의 후기를 미친 듯이 찾아봤다. 그 집은 맘모스 빵도 잘하지만 다른 빵이 더 유명해서 맘모스빵 후기를 찾는게 너무 힘들었다. 그 빵과 다른 빵들의 크기를 비교하고, 여러 가지 사진들을 보면서 얼만큼 잘라야 할지 계속 연구하고 연구했다. 남편은 그 당시 집에서 다른 일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나는 계속 침대에 누워서 약 1시간에서 2시간을 그 빵을 어떻게 얼만큼 소분해야 할 지만 찾아봤다. 결국 남편도 옆에서 같이 고민해줬다. 그게 참 미안했다. 화도 났다. 이 사람은 바쁜데, 맘모스빵 이깟 게 뭐라고. 칼로리가 뭐고, 살이 뭐라고.
처음에 상담을 하러 갔을 때 선생님은 (그 당시) 남자 친구가 식이장애 극복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처음에 그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성격이 우유부단해서 저를 잘 끌어 주지는 못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은 그게 아니라 남자 친구가 계속 마른 몸 이야기를 한다든지, 살을 빼도록 압박하거나 유도하는 말을 하느냐고 물었다.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내 볼살을 귀여워하고 ‘찌부’라면서 볼살 만치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선생님은 다행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남자 친구나 엄마 등 가족이 식이장애 원인 혹은 극복의 주요한 장애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나는 그럼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남편은 어떤 모습의 나도 사랑한다고 했다. (그 당시) 지금 너무 많이 말랐지만 그 모습도 심지어는 예쁘다고 했고, 통통했을 때도 나를 여전히 사랑했다. 사실 나는 늘 통통했고, 내가 식이장애를 앓기 전 약 5년이 넘는 연애 기간에도 나는 마른 적이 없었다. 그는 어떤 모습의 나도 사랑했다. 그런데 내가 뭐 좋다고 이렇게 살찌는 걸 두려워하면서 나도 남편도 괴롭히고 있는지 모르겠다. 눈물이 났다.
나는 남편에게 사실 이거 1/4 먹어도 6분의 1 먹어도 상관없고 그냥 그날 먹고 싶은만큼 먹으면 되는 거 아는데 이걸 계속 찾고 있는 내가 비참하다고 했다. 결론은 그 집 맘모스빵은 그 동네를 떠날 때까지 한 번도 사 먹지 못했다. 이상하게 타이밍이 안 맞았다. 결국 먹지도 못할 맘모스빵을 어떻게 자를지 몇 시간 동안 괴로워하기만 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