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만 원치 빵 한 자리에서 먹어 치우는 나, 어떤데?
작성자 나나
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3만 원치 빵 한 자리에서 먹어 치우는 나, 어떤데?
오랜만에 글을 쓴다. 내 식이장애는 과거형인듯 현재진행형인듯, 멀쩡한듯 보이다가도 가끔씩 내 발목을 잡는다. 그럭저럭 잘 살고 있고, 때로는 못 살고 있다.
오늘은 아주 어려운 일이 있었고, 또 큰 결심을 했다. 나는 아직까지 ‘디저트’를 먹지 않으면 ‘억울해’ 한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밥을 배부르게 먹어도, 심리적으로 여태 억제된 것 때문에 ‘빵’, ‘케이크’, ‘쿠키’ 등을 먹지 않으면 불만족한다. 불안해 한다. 그래서 아직까지 배가 불러도, 배가 터질 것 같아도 디저트를 먹는다.
3만원짜리 상품권을 한 번에 써야 해서 빵을 엄청 많이 샀다. 나눠서 먹으면 되는데, 아직까지 그걸 못한다. 나는 남편과 짬뽕, 짜장면에 칠리새우까지 배 부르게 먹고도 자리에서 3만원치 빵을 다 먹었다. 맘모스빵, 모카크림빵, 연유모카빵, 타르트, 쿠키 등등… 10개에 가까운 빵을 먹었다.
물론 예전처럼 다 먹고 나서 울거나 그러진 않는다. 아프도록 먹진 않는다. 생각보다 나는 원래 대식가라서, 남편은 끝에 가서 한 빵에 한 두 입 먹고 남겨도 나는 다 먹어 치운다. 많이 배부르지만 어렵진 않다.
사실 따로 먹으면 제일 만족도가 높을 거다. 밥 배 부르게 먹어도, 빵 배는 따로 있는 게 나여서, 그냥 조금씩 먹으면 제일 만족스러울 거다. 근데 아직까지 집에 빵을 들고 가는 게, 음식을 남겨 놓는 게 뭔가 어렵다. 어휴, 남겨 놓고 먹으면 매일 조금씩 행복할 수 있는데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것이 나다. 그것이 내 식이 장애다.
여전히 조금 폭식에 가깝게 행동하고, 꾸역꾸역 먹지만 먹을 수 있을 만큼만 먹는다. 예전 같으면 3만원을 빵으로 다 채우거나 음료 1잔 정도만 시켰을 텐데, 이제는 음료 2잔 시켜서 빵을 좀 덜 먹는다. 이게 무슨 의미냐 할 텐데, 나한테 빵을 줄인다는 건 큰 의미다. 이해할 수 없는 나의 식이장애.
근데 이렇게 빵을 먹으니 진짜 살이 급격히 찌긴 했다. 내 글을 읽어온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곧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2부 드레스로 샀던 옷이 이미 맞지 않아서 새로 주문했는데, 생각보다 작았다. 심리적으로 타격이 좀 있었다.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빵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원래는 빵을 먹지 않는다는 건 나한테 억울한 행위, ‘억누르는 행위’라서 오히려 강박적으로 피하려고 했던 행위다. 배가 불러도 빵을 먹는 게 마음이 편했다. 못 먹어서 억울한 것보단 배 부르고 배 나오는 게 편했다. ‘아직 저체중이니까’라는 핑계였다.
내가 뭔가 식단에서 못 먹는 게 생긴다는 걸 오히려 병적으로 피해서, 남들은 흔히 결혼식 전에 체중 관리를 한다는데 나는 오히려 더 먹었다. 1~2주 전 쯤에 공차에서 치즈폼 추가해서 먹으니까, 친구가 ‘예비 신부 맞냐’고 했다. 물론 그게 좋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예비 신부가 다이어트를 하는 건 그렇게 나쁜 행위도 아니다. 나는 ‘다이어트를 병적으로 피하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나도 이제 ‘작심삼일 다이어트에 도전하는 사람’이 돼보기로 했다. 내가 자꾸 디저트에 집착하는 이유는, ‘먹지 못한 억울함’ 때문이다. 내가 여태 못 먹었기 때문이고, 사실 나는 아직도 ‘1일 1식’에 꽤나 집착하고 있다. 예상치 못하게 회식 등으로 1일 2식을 하면, 여전히 조금 힘들어 한다. 물론 예전에는 거의 미친 사람처럼 굴었다. 지금은 그래도 조금 괜찮다. 근데 그래도 ‘1일 1식’에 집착하다 보니, 예를 들면 오늘은 점심을 먹는데 내일의 1식이 저녁일 때, 그 사이에 배 고플까봐 많이 먹어야 하는 거다. 그 사이가 억울해서, 점심을 배 부르게 먹었는데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드는 거다. 1일 1식이 부른 이상한 집착과 심리적인 우울감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밥 먹으면 꼭 디저트 먹어야 하는 습관은 적어도 일단, 새로 주문한 2부 드레스도 못 입는 일은 없도록 1주일만, 작심삼일 x 2 정도만 해보기로 했다. 대신, 배 고플 것 같으면 1일 1식을 고수하지 말고, 그냥 가볍게 야채라도 먹어볼 거다. 오늘은 점심, 내일은 저녁이 그 1일 1식의 주된 끼니라면, 적어도 오늘 저녁과 내일 점심, 혹은 내일 점심만이라도 야채 같은 걸 먹어 보는 거다. 사실 내가 먹는 디저트가 야채보다 칼로리가 훨씬 높을 거다.
원래 1일 1식의 취지는, 어차피 한 끼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은 제한돼 있으니까 1일 2식하는 것보다 무조건 칼로리가 적을 것 같아서 그랬다. 근데 짜장면, 짬뽕, 칠리새우 2명이서 나눠 먹고 빵 3만원치 반 넘게 혼자 먹는 나 어떤데? 이미 그 칼로리 계산은 틀렸다.
이제 그 이상한 강박에서 한 걸음 더 벗어날 때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는 좀 더 자연스러워질 수 있겠지.
누군가 이 병에 완치는 없다고 하더라.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온통 먹을 것과 운동이다. 멀쩡한 듯보여도 그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면 완치가 없는 거다. 나는 그 시선을 벗어나기 참 힘들다. 그래도 그 시선을 조금씩 옮겨 봐야지. 1일 1식만 고수하고, 다이어트라는 말만 들어도 두려워했는데, 이젠 다시 해봐야지.
식이장애를 극복해야 다이어트할 결심(?)을 한다는 게 웃기긴 하지만, 내가 이렇게 다이어트할 결심하는 것도 식이장애 호전의 아주 큰 증거다.
간만에 소식 전한다. 나의 식이장애 친구들이, 내 이야기를 조금 궁금해 했을 여러분이 이 글을 읽어준다면 참 감사할 것 같다. 이 푸념에 가까운 글을 읽어주어 고맙고, 누군가 나처럼 괴로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또 작은 위로와 용기를 얻길. 다음 편도 있다! 좀 더 희망적인 얘기일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