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나는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작성자 나나
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사실 나나는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글의 저자 ‘나나’는 나 혼자지만, 사실 세상에는 여러 나나가 있다. 아프게도 그렇다. 식이장애라는 틀로 규정하지 않더라도, 체중과 운동에 대해 강박을 느끼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특히 내가 이런 얘기를 주변에 조금씩 털어두자, 생각보다 내 주변에도 이런 압박을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
식사 루틴을 지켜야 해서 외식을 할 때면 무조건 탄수화물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식당으로 가야 하고, 샐러드를 주로 먹고, 먹고 나면 날씨가 좋든 안 좋든 무조건 걷고, 칼로리를 계산하고, 매일 체중을 재고… 다 내 얘기 같은데, 다 내가 들은 얘기만 쓴 거다. 타인의 얘기여서 함부로 글에 담을 수 없지만, 놀랍도록 나와 닮은 타인의 이야기이다.
세상에 이렇게 하루하루 압박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여전히 그렇다. 내가 식이장애 환자(였)다라고 제목을 지은 건, 사실 나도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어제만 해도 밥 양이 내 기준엔 좀 모자랐는데, 더 먹자고 하기에는 살 찔까봐 남편에게 말을 못했다. 나 혼자라도 시켜 먹으면 되는데, 내가 너무 많이 먹는 걸까봐, 계속 이렇게 먹으면 살찔까봐 그냥 참았다. 그러니까 억울하고, 괜히 눈물이 났다. 왜냐면 나는 어제 점심을 먹고, 오늘 저녁까지 아무 것도 안 먹을 거니까. 어제 점심을 더 먹든지, 어제 저녁이나 오늘 아침/점심을 먹으면 되는데 그건 내 선택지에 없었다. 무슨 이상한 규칙 때문에, 아직 힘들다. 심지어는 밥을 먹고 걷는데, 행사 때문에 가려 했던 길이 통제됐다. 대중교통을 타면 되는데, 내 걷기 시간을 못채워서 다시 길을 뱅글뱅글 돌아 공회전하고, 그러고 나서야 대중교통을 탔다.
나 정도로 심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참 슬프다.
세상 모든 나나들이 조금 더 편해지면 좋겠다. 그냥 내가 행복하게, ‘나는 나야!’하고 ‘나’를 가꾸고, ‘나’를 소중히 대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가면 좋겠다. 식이장애 시리즈를 쓰면서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많다. 사실 이 경험을 글로 풀어내는 것 자체가, 내 기준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상처를 계속 들쑤시는 경험이기도 했다. 자기연민에 빠진 적도 많다. 그 때 여러 가지 동력이 있었는데, 이 글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내가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고, 때로는 좌절하는 과정이 남에게 크든 작든 위로가 될 수 있구나 했다.
실제로 나도 식이장애 극복 초반에, 여러 사람의 극복기를 찾아봤다. 뒷 이야기가 올라오지 않는 식이장애 이야기를 보면서는 괜히 걱정도 됐다. 극복하지 못한 걸까? 나도 결국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식이장애를 극복했지만 재발한 사람을 보며 걱정하기도 했다.
그래서 뭐가 됐든 꾸준히 쓰고, 이겨내 보고 싶었다. 100% 완치! 이런 게 아니더라도, 이렇게 식이장애에 아등바등 맞서 가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어요라고 얘기해 주고 싶었다. 식이장애를 강하게 겪고 있는 나나들에게도, 일상 속 조금씩 압박을 느끼는 이들에게도 얘기해 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다 한 번쯤 갖고 있었던 생각들인데 못 펼쳐둔 내용들일 거라, 너무 뜻깊다’라고 얘기해 준 친구가 있다. 뉴닉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무렵 받은 피드백인데, 이 글을 보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나같이 심각하게 나아가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식이와 운동에 대해 단순히 ‘관리’나 ‘목표’의 차원이 아닌 ‘압박’과 ‘강박’을 경험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내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보편적인 이야기가, 이런 압박과 강박을 내려놓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되면 참 보람찰 것 같다.
글을 쓰는 과정이 아파도, 내 글이 도움됐다는 사람이 있을 때 ‘이미 이 글을 쓴 의미는 충분하다’고 느꼈다. 나나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니까 나의 극복기도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많은 나나가 함께 극복하는 과정이자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