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낯선' 그대
작성자 방구석디제이
방구석 DJ
별에서 온 '낯선' 그대
👽비인간 (형태의) 지성체?
이번 주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 지성체가 나오는 SF 장르의 작품”이라는 한 구독자분의 의견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 든 생각은 “어라?”였습니다. 왜냐하면 순간적으로 생각나는 것이 <E.T.>와 <월-E>뿐이었기 때문입니다. SF는 제 주력 장르는 아니지만, 세계적으로는 엄청난 팬덤을 가졌습니다. 소위 명작이라고 불리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블레이드 러너> 등의 고전으로부터 시작해, 한국에서는 이상하게 인기가 없지만, 개봉될 때마다 학교/직장을 째고(?) 영화관으로 달려가는 팬들이 많다는 <스타워즈>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이렇게 유명한 영화들 가운데 비인간 형태의 지성체들이 서사의 중심에 위치한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국 판타지 소설의 대가 이영도 작가는 「판타지와 비인간」이라는 글에서 그 이유에 대해 고찰합니다. 그는 SF가 비인간 캐릭터에 시들해진 이유는 SF가 바로 과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현재 과학이 추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지구상에는 인간과 대등하게 교류할 수 있는 존재가 없으며, 나아가 우주에서도 아직 그런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과학이 밝혀낸 사실들을 무시할 수 없는 이 SF라는 장르는 인간 이외의 지적 존재에 대해 심드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캐릭터들은 SF에서 단지 ‘오브제’로 이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서사의 중심이 되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창작물에서 모든 캐릭터들은 인간의 거울 노릇을 하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오브제로 취급되는 비인간 캐릭터들은 결국 우리를 비추는 존재가 아니라 유희의 도구로 전락하게 됩니다.
즉 SF는 비인간 지성체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먼 비유의 길을 돌고 돌아 다시금 인간을 비추는 장르가 됩니다. 예전의 저는 SF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요, 차갑고 딱딱한 느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 SF의 초현실적인 껍데기 안에는 결국 인간, 관계, 존재에 대한 철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조금 즐기게 된 것도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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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이면서도 잔혹한 별
그래서 긴 고민 끝에 오늘 소개할 영화는 <판타스틱 플래닛>입니다! 원제는 <La Planete Sauvage>으로, 영어로는 ‘The Savage Planet’이지만 원제와 다르게 번역되면서 현재는 <The Phantastic Planet>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어떻게 ‘야만적’인 이름과 ‘환상적’인 이름을 동시에 가지게 되었을까요?
먼저 주인공은 Terr(테어)라는 이름을 가진 ‘옴 종족’의 일원입니다. 이 종족은 외관상으로는 인간과 동일하지만 ‘트라그족’이라는 파란색 몸에 붉은 눈을 한 커다란 생명체에게 지배를 받습니다. 테어는 어릴 때 어린 ‘트라그족’인 ‘티바’에 의해 애완 옴으로 키워집니다. 그러면서 테어는 트라그족의 언어와 생활방식을 배우게 되는데, 특히 그들은 ‘헤드셋’이라는 것을 통해 행성의 모든 지식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 점차 아는 것이 많아지면서 탈출을 꿈꾸게 된 테어는 이 헤드셋을 들고 트라그족의 영역에서 벗어나 야생 옴들이 사는 지역에 오게 됩니다. 이후 옴 종족이 자신들을 공격할 지능을 가지게 될 줄 예상하지 못했던 트라그족은 옴들의 반발을 맞닥뜨리게 되고, 이후 옴 종족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행성의 이름은 ‘Terr’가 됩니다. 이는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불어로 지구를 의미하는 ‘Terre’와도 발음이 동일합니다. 또한 옴(Om)이라는 이름 또한 ‘Homme’, 즉 넓게 인간을 지칭하는 단어를 가리킵니다.
결국 이 영화에서 트라그족에게 지배를 당하다가 벗어나는 옴 종족은 인간에 대한 비유인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굉장히 ‘인간적’인 면모를 보입니다. 옴 종족끼리도 분열하며 다투기도 하고, 서로의 싸움에 자신보다 더 약한 종족을 이용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굉장히 잔인하게 옴 종족을 대하던 트라그족은 사실 생긴 것은 인간과 가깝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생김새를 차치하면,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트라그족에 가장 가까운 것은 또 인간이 아닐까요? 영화를 본 사람들은 트라그족과 옴 종족의 관계가 마치 인간과 쥐/곤충의 관계와 유사하다고들 느낍니다. 결국 비인간 형태의 지성체를 다룬 이 SF 영화는 다시금 인간에 대한 사유로 돌아옵니다. 트라그족과 옴 종족 둘 다 인간을 비추는 거울로 작동함을 알게 된 이상, 이 작품의 제목이 ‘야만적’(잔혹한)이면서도 ‘환상적’이라는 모순적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 조금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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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Radiohead - Creep
비인간 캐릭터가 다수 등장하는 SF 영화로는 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시리즈의 마지막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음악인 이 노래를 추천 드립니다. 또한 이 영화의 ‘비인간 캐릭터’들과 관련한 흥미로운 영화 비평이 있어 함께 공유해 드릴게요! 다음 한 주도 파이팅입니다!
http://m.cine21.com/news/view/?mag_id=87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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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를 듣고 천선란 작가의 ‘로봇 3부작’이 가장 먼저 생각났어요. 이 로봇 3부작이라는 건, <천개의 파랑>, <랑과 나의 사막>, <뼈의 기록>으로 이루어진 시리즈예요. 하나씩 가볍게 소개하고, 오늘 메인으로 다뤄볼 ‘랑과 나의 사막’에 대해 얘기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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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리기
천개의 파랑은 휴머노이드 기수인 ‘콜리’가 경주마 ‘투데이’를 타고 달리다가 떨어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낙마 사고에는 반전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더 이상 자신의 파트너가 힘들어하는 것을 두고볼 수 없었던 콜리의 자발적 낙마였다는 것! 이로 인해 콜리는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연재’는 콜리를 고쳐줄 목적으로 집으로 데리고 온다. 그렇게 연재의 집으로 오게된 콜리는 이후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되는데…!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콜리가 다른 기수들과 다르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타 휴머노이드와 다르게 학습과 인지가 가능한 소프트웨어 칩의 삽입 덕분이었다. 그 덕에 콜리는 투데이의 마음을, 연재의 마음을, 연재의 언니인 은혜와 엄마인 보경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해나갈 수 있었다. 특히 달리는 것에서 삶의 행복을 느끼는 투데이를 위해 콜리는 스스로를 기꺼이 내던지며 ‘희생’한다.
이 책은 후반부가 압권인데, 휴머노이드 콜리를 통해 결국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 방향성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콜리는 연재가 고쳐준 몸을 갖고 다시 투데이와 호흡을 맞출 수 있게 된다. 콜리와 투데이 둘 다 예전처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기에, 둘은 ‘천천히, 느리게’ 달린다.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달려야했던 경주마 투데이가, 그리고 그의 기수인 콜리가 제 속도로 호흡을 맞춰가는 장면에서 나는 여지없이 눈물을 훔치게 된다.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언제 써놨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언제나 이 문구를 보며 지구가 변해가는 속도와 놓치고 가는 사람, 그리고 동식물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서 천개의 파랑을 썼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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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심장을 가진 차가운 고철 덩어리들
랑과 나의 사막은 거대한 모래폭풍이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황량한 사막에서, 종말의 시대를 견디는 인간 ‘랑’과 로봇 ‘고고’=’나’의 이야기다. 보다 세부적으로는 ‘랑’의 죽음 뒤, 과거로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인간 ‘지카’의 말을 듣고 고고가 그걸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방랑기랄까. 그렇게 고고는 ‘랑’에 대한 그리움을 가진 채(그러나 이것이 어떤 감정인지조차 정확히는 모른 채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인물들을 만나며, 새로운 사실들을 깨닫는다.
고고는 전쟁 시대에 만들어진 로봇이다. 그렇지만 고고는 자기 자신이 사람을 해치는 용도로 제작된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고고는 다정한 로봇이니까. 자신이 모르는 과거를 곱씹으며 쓸쓸해하는 타인을 위해 ‘마모되지 않은 기억의 모서리에 손이 베이지 않기를’ 기도해주고, 랑과 함께 특별한 별자리인 마차부자리를 지켜봤던 날들을 기억하고, 또 다른 로봇을 위해 제 팔 한쪽을 내어주는, 따뜻함을 가졌으니까. 카일이라는 로봇 제작자는 로봇을 만들 때 뺨과 가슴에 발열장치를 넣어두었다고 한다. 어쩌면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막에선 발열장치보다 냉각장치가 더 어울리겠지만, 이들이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따뜻한 심장을 갖고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을.
아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고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이다.
「소용돌이로 한 발을 뻗는다. 거센 바람 소리가 그제야 들린다. 몸은 금방이라도 소용돌이에 휩쓸릴 것 같다. 나는 힘주어 한 발자국을 내딛는다. 그때 소용돌이 밖에서 살리의 외침이 들린다. 소용돌이와 함께 안으로 흘러 들어온 살리의 목소리가 어둡고 시끄러운 이 공간에 가득 퍼진다.
"나 드디어 네가 기억났어. 네가 어떤 로봇이었는지! 너는 전쟁시대에 만들어졌어!"
나는 살리가 당부한 대로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너는 그곳에서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했어! 사람을 사랑하고 살리는 일을 했어! 너는 사람을 끌어안아야 하는 로봇이었어. 두 팔로! 네 팔을 다른 로봇의 팔과 달라. 인간을 안았을 때 안정감을 줬어. 너는 그 팔로 인간의 마음을 안았어! 고고, 너는 랑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거야! 네 마음은 진짜야!"」
고고의 여행은 그 자체로 랑을 위한 애도이자, 랑에게 보내는 편지 같다. 그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문단을 다시 읽을 때, 나는 불가능한 둘의 재회를 감히 바라게 된다. 누구라도 그럴테니, 아름다운 문장들로 섬세하게 그려진 아포칼립스 세계를 만나고 싶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읽어보셔요. 모든 문장이 공들여 짠 비단처럼 부드럽고 예쁘답니다.
「바람 소리에 더 이상 살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두려움마저 소용돌이에 휩쓸려 내 안에서 사라진다. 나는 랑이 존재하는 곳으로 가고 싶다.
랑을 다시 만나면 이야기해주고 싶다. 내가 만난 사막에 대해. 너를 만나기 위해 걸어온 나의 사막에 대해. 그렇게 늙어가는 랑의 곁에서, 조금씩 망가져 가는 내 몸으로 이야기하겠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로소 랑과 시간이 맞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한다. 이번에는 너와 함께 늙어갈 수 있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고 랑을 떠올리며, 더 깊은 어둠으로 내려간다.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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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우리에게 하려던 말은
뼈의 기록은 밀리 오리지널로 발행되어 밀리의 서재에서만 읽을 수 있다. (광고 아님!) 단편 치고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장의사 안드로이드’! 이름은 로비스. 우리가 아는 장의사와 수행하는 역할은 같다. 다만 주 고객이 다를 뿐. 주로 고독사한 사람들, 그리고 생전에 자신의 마지막을 로비스에게 맡기고자 했던 이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주로 로비스의 ‘고찰’에 주목해 읽게 되는 책. 안드로이드의 ‘시선’을 통해 우리가 당연시했던 것들을 새롭게 보게 된다. 그중에서도 제목과 연관된 문장들이 인상적이다. 피부가 뼈를 감싸는 구조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태어났을까. 나는 가끔 이 외부 충격에 약한 ‘부드러운’ 살갗이, 뼈의 ‘단단함’을 이기는 때가 있을까도 의문해본다.
「뼈가 피부를 감싸는 것이 아닌 피부가 뼈를 감싸는 구조는 비효율적이며 생존에도 불리해보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피부가 뼈를 감싸는 것인가.」
또한 죽음의 순간에,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로비스의 말들이 인상적이다. 그는 단지 고철이 되어, ‘폐기’에 이를 뿐인데도. 로비스가 행하는 죽음에 대한 고찰은 인간이 느끼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순간 로비스는 이제 죽음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죽음이란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모두에게 다르며, 볼 수 없는 존재의 삶을 끊임없이 보고있는 뼈의 아름다움과 같은 것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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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특별 편성! SF입문작 추천리스트
서윤빈, <파도가 닿는 미래>
위 책에 수록된 <루나>는 작가님의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론 표제작과 그 외 작품들을 모두 재밌게 읽어서 추천!
2. 김보영, <다섯 번째 감각>
이곳에 실린 단편들보다 심도 있는 작가님의 다른 책을 찾고 있다면 <7인의 집행관>도 추천합니다
3. 그 외 천선란, <어떤 물질의 사랑>과 <나인> / 문목하, <유령 해마>/ 배명훈 <예술과 중력가속도> 등도 추천해요. 유머와 재치가 좀 더 들어간 소설이 좋다면 곽재식 작가의 <지상 최대의 내기>,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이 취향이실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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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하동균 - From Mark
<랑과 나의 사막>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노래입니다. 시를 읽는 것 같은 서정적인 가사가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곡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