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시간이 들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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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llreview

금주의 한-탄

⏰ '또 시간이 들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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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셋째 주]

이 시의 제목은 <11월의 마지막에는>입니다.

11월 마지막 주에 이병률 작가의 시를 쓰려고 오래전부터 이 '깜짝 꽃다발'을 챙겨뒀습니다. 하지만 '깜짝'은커녕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무시무시한 '계엄', '처단', '사살' 같은 단어들과 함께 시간이 '순삭'해버렸죠.

11월의 마지막에 해야 할 일이 고작 국을 끓이는 일이라니. '작가도 참.. 허송세월을 보내는구나' 싶다가도 '내가 하는 일이 국을 끓이는 일과 뭐 그리 다르겠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11월이 아니라 12월에 이 말을 써도 크게 다르지 않겠습니다.

삶의 농도가 진하게 우려질 때까지 팔팔 끓이는 중입니다. 연구원 막내인 저는, 오늘도, 그저 도비처럼, 성실하게, 눌어붙지 않도록, 주걱을 휘휘 저을 뿐이죠.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이라는 11월이 떠나갔습니다. 제 머릿속에서만 지난 기억들을 알사탕처럼 데굴데굴 굴려봅니다. 하지만 (보르헤스의 말처럼) '이 모든 건 결국 사라질'테죠. 입 속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어느새 쪼그라든 알사탕처럼요. 좋았던 기억도, 나빴던 기억도 모두 다 왜소해지겠죠.

그러니 남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일단 빨리 써봅니다. 아직 다 녹이지 못한 알사탕을 하나씩 후드득 꺼내보겠습니다. 윽 더러워.

✂️ 두 번째 청산입니다


시계를 7년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2017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기 약 1달 전) 조현천 기무사령부 사령관이 한민구 국방부장관 지시에 따라 비밀문서 하나를 만듭니다. 그리고 약 1년 반 뒤인 2018년. 이 문서가 세상에 공개됩니다. 이름은 <대비계획 세부자료>

출처 : 참여연대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촛불시위대 폭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계엄령을 선포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이른바 '계엄령 모의' 문서.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은 기무사(지금의 방첩사령부)를 아예 해체합니다. 문서를 만든 사람을 징계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기무사 조직 자체를 해체시켰습니다. 다시는 계엄령을 상상도 하지 못하게요("과오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도록").

계엄을 준비했던 것만으로도 '국민 배신 행위'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계엄이 2024년 다시 돌아왔습니다. 45년 만입니다. 1980년 이후 처음입니다.

1980년이라고 하면 감이 잘 안 오실 테죠. 우리나라에서 컬러 TV가 처음 등장한 게 1980년입니다. 개인 유튜브 채널, 넷플릭스 1080p 화질 감상은커녕 흑백 TV에서 컬러 TV로 막 넘어갈 때였습니다. 197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소비 조장'과 '국민 계층 간 위화감 조성'의 이유로 컬러 TV 방송이 금지될 정도였는데요. 말 그대로 '총천연색' 화면을 처음 본 게 1980년이었단 뜻입니다.

1980년은 그런 시대였습니다. 독일로 넘어간 차범근이 축구로 세계 무대를 씹어먹던 시기. '오늘 마시고 자면 내일 숙취가 없다. 왜냐하면 내일 모레 일어나기 때문이다'라는 전설의 양주 '캪틴큐'가 등장한 시기. 전국민이 다 아는 <전국노래자랑> 시그널 음악 빰 빰빰빰빰빰~ 빰~으로 방송을 막 시작했을 시기. 

그때로 돌아간 겁니다.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는 말은 그래서 너무 딱딱한 말입니다. 비상계엄은 쉽게 말해, '따끈따끈한 컬러 TV의 시대', '국위선양 차붐의 시대'로 돌아간 겁니다. 시간을 거슬러 '국민을 배신한 책임을 저버리고 해체될 만한 짓'을 또 한 겁니다.

💖 슬기로운 대중의 예고편


그 결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습니다(관련 내용은 지난 글을 참고해주시고요). '탄핵'이 모든 뉴스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입니다. 정몽규 축구협회장 4선 도전AI 디지털 교과서 도입 등의 기사가 깡그리 묻혔습니다.

이렇게 사회가 혼란스러울 땐 참 답답합니다. 쯧쯧 혀를 차거나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똑같은 심정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심했습니다.

"우리 사회에 화가 너무 많다"(조선일보 1면)느니 "광주의 모 업체가 부정선거에 가담했다"(스카이데일리 단독)느니 하는 말 말고요.

색다른 이야기를 할 순 없을까. 그래서 가져온 문장들입니다.

故 이어령 교수

故 황현산 교수 <잘 표현된 불행> 中

두 거장이 꿰뚫은 문장을 합쳐보겠습니다. 그러면 이런 말이 되겠네요.

<다시 만난 세계>에 맞춰 흔든 응원봉은 아직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본편은 지금부터입니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결투가 유감없이 드러날 겁니다.

로꼬의 노래 가사처럼 결국 '시간이 들겠지'요. 숨겨진 잘못을 찾아내고 그에 상응하는 벌을 줘야 합니다. 재정비하고 예방 대책까지 세우려면 품이 많이 들겁니다. 하지만 결국 이 '더러운 겨울'은 청산되고 '깨끗한 봄'이 찾아오겠죠. 우리가 예고했다시피요.

시계를 미래로 돌려 끝내 '봄이 오면' 어떨 것 같냐고요? 글쎄요. 아마 역도를 하는 송희처럼 '소리라도 지르지 않을까'요.

김기태 <무겁고 높은> 中


그리고 오늘의 사족.

그리고 오늘의 사족. 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해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한 한국의 밤 행사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20230119 연합뉴스發 <尹, 다보스서 한국의밤 행사…"한국, 인류문제에 책임있는 역할">). 

'K팝 응원봉을 든 평화적 탄핵 집회'를 보며 외신들은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K팝이 이런 방식으로 전세계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겠죠.
이 말이 부메랑이 되어 자기 발등을 찍을 줄, 정말 몰랐겠죠.
이것 역시 역사의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