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찬란한 언어로도 이 곡절을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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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llreview

금주의 한-탄

✏️ 어떤 찬란한 언어로도 이 곡절을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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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둘째 주]


💸 아니 돈이 남아도는 게 아니라

핸드폰을 바꿀 때가 됐습니다. 2019년부터 지금까지 약 5년 반 동안 썼죠.

- (나) 핸드폰 바꿔야 할 것 같은데..
- (엄마 딸) 엄마! 얘 핸드폰 바꾸겠대! 돈이 남아도나 봐~
- (나) 아니.. 삼성페이도 안 되고, 충전 단자도 헐렁거려서 충전도 잘 안 되고, 배터리도 너무 빨리 닳고...
- (엄마) 뭘 얼마나 썼다고 망가져?
- (나) .....5년 반. 66개월째야. 내가 군대에 있을 때부터 이걸..
- (엄마) 야! 저거 전자레인지도 한 10년 쓴 거야. 그래도 멀쩡하잖아?
- (나) 버티고 있는 거지. 멀쩡한 게 아니라.
- (엄마) 아니 그럼 좀 일찍 일찍 말하든가. 왜 다 지나서 얘기를 해..

때마침 TV에선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습니다(20250209 JTBC發<'미키17'로 돌아온 봉준호 감독 "제 색깔, 작품 곳곳에 담겨 있어요">).

갤럭시 S25는 24와 출고가가 똑같아서 가격 부담이 적어 '지금이 기기변경 할 좋은 시점'이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흠결이 있지만 이해하면서 쓰는 핸드폰'과 '허술하지만 이해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겹쳐 보였으니까요. 핸드폰 바꾸겠다는 얘기는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핸드폰이 완전 먹통되거나 부서지지 않고서야 바꾸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 변화의 충분조건

그러니 언제나 한발 늦고 다급하게 문제를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핸드폰이 아니라 '뭐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불감증이니까요.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의 책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엔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건 언제나 '큰 충격'이었고, 그 충격이 없다면 바뀌지도 않죠.

이번 주 하늘이가 세상을 떠난 건 분명히 큰 충격이었습니다. 우울증 등을 앓고 있는 40대 교사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목숨을 잃은 아이 앞에서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죠.

하늘이 아버지가 울며 한 글자씩 읽어 내려가는 심경을 같이 흝었습니다.

엄마 아빠와 선생님은 슈퍼맨이다. 아이 앞에서 뭉툭했던 문장이 이제는 너무나도 예리하게 꽂힙니다.

아버지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하늘이 법'도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정신질환이 있어 수업이 어려운 교사는 강제로 휴직시키겠다는 게 핵심인데요.

매번 한 발씩 늦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2019년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민식이가 교통사고로 하늘에 갔을 때도, 2020년 영양실조에 걸린 정인이가 아동학대로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제야 부랴부랴 움직였으니까요.

우리는 분명 부족합니다. 지극한 현재에 발붙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릅니다(하늘이 아버지 기자회견 질의응답 中 "제가 출근을 좀 빨리해서 7시에 나가는데 항상 6시 40분에 일어나서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손을 흔들고 있어요. 그날도 그게 마지막일 줄은 저도 몰랐어요.").

봉준호 감독님의 말마따나 '완벽한 히어로'는 세상에 없습니다. 어찌저찌 굴러가는 핸드폰처럼 오늘 각자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우리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경고 신호를 조금만 더 미리 알아챌 수 있다면, 더 촘촘하게 여과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 놨었더라면.. 그런 아쉬움들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사회 변화의 충분조건이 목숨이라니. '목숨마저 걸어야 바뀌는 사회'를 언제까지 지켜만 봐야 할까요. 


🕯️ 곡절을 담은 언어

출처 : unsplash

물론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목숨마저 걸었지만 바뀌지 않는 사회를 지켜봐야만 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전광훈 씨는 유튜브를 통해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한다. 역사를 도대체 어디서 배웠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5·18을 평가절하했습니다.

우리나라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있습니다. 그 법에 쓰여 있는 내용 그대로입니다.

정확하게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항'한 게 5·18 민주화운동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법을 만든 이유(제정 사유)도 보시죠. 3년 전에 법제처가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슬픈 역사를 왜곡/날조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들을 더 강하게 처벌'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목숨으로 민주주의를 안착시켜 놓았는데, 이걸 역행하다니요. 어디서 배웠냐뇨.

그럼 구체적으로 어디서 어떻게 가르치는지까지 설명해보죠.

대학에선 "어느 찬란한 언어로도 5.18 민주화운동의 곡절을 그리기 어렵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전남대학교 홈페이지에 게재된 5.18 민주화운동 당시 상황입니다(누가 전남대 홈페이지까지 들어가 봐? 제가요.).

한강 작가가 강연에서 던졌던 질문을 여전히 놓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