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셋째 주]

이번 주에도 하고 싶은 얘기는 많았습니다.

배우 故김새론 씨 사망과 일본군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 240명 중 이제 7분만 남으셨다는 안타까운 소식, 노벨상을 수상한 클라우드 골딘 교수가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연구(<A Nobel Prize winner decodes why people aren’t having kids>, 핵심: 남성이 집안일하는 나라가 출산율이 더 높다)까지.

그런데 유독 눈길을 끄는 기사는(제 알고리즘이 오염돼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진법'이었습니다.

어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민주당은 원래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보수다. 우리는 원래 진보 정당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20250220 경향신문發<민주당,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그 반대편에서도 역시 진보와 보수를 나눴죠(20250220 경향신문發<김문수 “박근혜 파면 잘못, 이승만·박정희가 진보”···대선 행보 본격화>).

세상에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질문들은 이지선다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요리사들이 흑과 백으로만 나뉘지 않는 것처럼, 세상은 흑백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죠.

😨 '이지 선다'라는 공포

'6.25 전쟁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 이청준 작가가 쓴 소설 <소문의 벽>을 볼까요. 이 작품엔 '이지 선다의 공포'가 나옵니다.

저는 때때로 정치 기사를 보다가, 이와 같이 '엄습하는 공포'를 느낍니다. '그래서, 너는 어느 편이냐'는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죠.

그렇습니다. 이건 하버드 대학 교수인 토드 로즈가 <오징어게임> 오일남처럼 '그만해! 이러다~ 다~ 죽어~'를 말하려고 쓴 책 <집단 착각>에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은 상당 부분 일치합니다.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 '법을 지켜야 한다'는 가치 등 하나씩 좁혀나갈 수 있는 영역이 많습니다.

그런데 먼발치에서 서로를 삿대질하며 침을 뱉다니요. 너는 어느 편인지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우리 편이 아니면 죽기 살기로 덤벼들다니요.

이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겁니다.

❤️‍🔥 갈등은 상호 파괴적이지 않다

이런 걸 흔히 갈등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전 그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갈등은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을 뜻합니다. 두 종류의 나무가 만나 얽히고설키다 도저히 타래를 풀 수 없는 상태를 갈등이라고 하는데요.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칡은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성장하는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러다 둘이 만나면 꼬여 있는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키게 되죠.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있습니다. 갈등은 '상호 공존'을 원칙으로 합니다. 칡이 성장하자고 등나무를 죽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등나무 또한 성장하기 위해 칡을 짓밟지 않죠. 갈등이 '상호 파괴'를 전제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갈등'들은 상호 파괴를 전제합니다. 다름이 아닌 틀림을 내세우죠.

이러한 '상호 파괴적인 갈등'은 필연적으로 피해를 낳습니다. 작년에 국무조정실이 내놓은 '정부 공식 연구 보고서'를 보죠(20240429 이데일리發 <[단독]갈등에 몸살 앓는 한국, 매년 '233조' 날렸다>).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이 얼마인지 계산해 본 보고서입니다.

최근 10년(2013~2022년) 동안 쓴 사회갈등비용은 2,326조 6,000억 원입니다. 매년 평균 232조 원을 사회 갈등비용으로 쓴 겁니다. 우리나라 1년 GDP 약 10%에 해당할 만큼 엄청난 돈입니다.

올해를 기준으로 한다면, 2025년 2달 동안 이미 약 38조 원을 갈등 비용으로 썼겠네요.

✨ 양극 사이엔 무한대가 있다

저는 오히려 이러한 이분법적인 현상을 '양극화'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봅니다. 말 그대로 양쪽 끝으로 달려가는 거죠.

이렇게 내달린 양쪽 끝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기존 사회학적 결론이었습니다.

미국 경제학자 안토니 다운스가 '민주주의의 경제이론(1957)'에서 설명하는 걸 보죠.

우리나라와 같은 '양당제 국가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좋든 싫든 중앙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정치적인 선명성을 유지하되, 극단적인 위치를 고수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었는데요.

다운스는 이런 예시를 듭니다.

해변가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두 가게가 있다고 칩시다. 이 두 가게는 양쪽 끝에서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습니다. 이 가게 주인들이 아이스크림을 더 많이 팔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해변가 중심부로 모여야 합니다. 그러면 두 가게가 해변가 중심에서 찰싹 달라붙게 되겠죠. 

이건 같은 종류의 식당과 카페가 즐비하게 늘어선 입지를 설명하는 이른바 '호텔링의 법칙'이라고도 하는데요. 이 경제 법칙이 사회적으로도 통용된다는 겁니다. '합리적 투표자의 후보자 선택 방법'도 똑같다는 거죠. '극단으로 가면 당선될 수 없다. 중도층을 끌어모아야 한다'는 게 암묵적인 룰이었습니다. 반세기 전까지는요.

그런데 이제는 그 이론이 먹히지 않습니다. '지극한 각자의 정의로움'이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했듯 "누구나 자신만의 지옥이 있다"면, 반대로 "누구나 자신만의 천국이 있다"고나 할까요('극도로 배타적인 천국'을 과연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긴 합니다만).

인간이 컴퓨터도 아닌데 서로 이진법으로만 대화할 수 없는 노릇 아닙니까. 너는 0이니까 틀렸고, 나는 1이니까 맞다? 이럴 수 없는 거잖아요. 근데 왜 다들 '단순한 컴퓨터적 사고'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0과 1로만 구성된 디지털이 아닙니다. 2,3,4,5,6,7,8,9,10부터 0.1, 0.21, 0.324, 0.4678까지. 1 뒤에도 무한대만큼의 숫자가, 0과 1 사이에도 무한대만큼의 숫자가 있습니다. 왜 끝도 없는 그 무한대를 보지는 못할까요.

💡 양자역학이 필요한 시대

제게 손 쉬운 해결책을 요구하진 마십시오. 간단한 해결책이 있었으면 제가 노벨평화상을 받았어야 합니다. 단순한 해결책이 있었으면 집단 양극화는 일찍이 해결됐을 겁니다.

그럼에도,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면, 저는 해결책으로 '양자역학'을 내놓을 것 같습니다. 중첩을 통해서 이진법을 무너뜨리니까요(20250114 CBS發 <[인터뷰] 궤도의 한방정리 “양자 컴퓨터... 젠슨황 말 맞나?”>).

0과 1을 중첩시키듯 우리 사회에 흩뿌려진 좌우의 생각들을 중첩시켜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날을 '양자컴퓨터가 필요한 시대'라고 합니다. 유용성과 과학기술 측면에서 놀라운 변화가 예고되니까요.

그 양자컴퓨터 원리가 다방면에 활용됐으면 좋겠습니다. 양자역학이 필요한 곳은 멀리 있지 않으니까요.

글에 대한 질문은 답글로 작성해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