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사랑과 계약의 교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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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사랑과 계약의 교차점

결혼은 감정과 계약이 맞물리는 복잡한 제도다. 흔히 결혼을 사랑의 결실 그리고 이혼을 관계의 실패로 여기는데 이 단순한 이분법은 결혼과 가족이라는 제도의 본질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남남으로 살던 두 사람이 법적 가족이 되어 관계를 지속하는 과정은 단순히 감정적 요소 뿐 아니라 법적, 사회적, 경제적 요인이 얽혀 있으며, 결혼이라는 관계 속에서 사랑, 책임, 계약이라는 요소가 서로 교차하며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혼의 시작: 사랑의 완성 vs. 법적 계약
결혼을 사랑의 결실로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강하지만, 결혼은 동시에 법적인 계약이기도 하다. 법적으로 결혼은 민법상 혼인으로 규정되며 결혼과 동시에 부부 사이에는 법적 강제력이 작용한다. 하지만 결혼을 결심하면서 이러한 법적 요소를 철저히 고려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결혼을 계약으로 바라보는 접근은 다소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결혼은 재산 분배, 공동 생활, 사회적 인정 등의 요소를 포함하는 법적, 사회적, 도덕적 제도이다. 결혼할 때에는 누구나 영원을 꿈꾸지만, 법적으로 결혼은 언제든 종료할 수 있는 계약이다. 결혼은 단순히 사랑의 연장선일까, 아니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시스템일까?
그들이 사는 세상(최근작은 우리들의 블루스) 김규태 감독의 트렁크는 이러한 시각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일정 기간 동안 유지되는 계약 결혼을 설정하여 부부는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 묻는다.
사랑으로 시작한(혹은 하려던) 결혼은 가장 필요한 순간에 서로를 파괴하고,
계약으로 시작한 결혼은 매뉴얼에 따라 필요한 순간에 알아서 위로의 손을 건낸다.
계약 결혼은 감정 소모 없이 기능적으로 작동한다(행동의 동기를 묻는다면 또다른 논의가 되겠지만). 주인공들은 사랑의 감정으로 촉발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경험하며 감정으로 뒤틀렸던 기존의 가족을 되짚어보고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도 최선의 선택인지 되돌아본다. 시간이 지나면서 계약 부부는 감정과 계약 안에서 혼란을 겪고 감정이 커짐에 따라 계약을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 시리즈에서 계약으로 시작한 결혼이 사랑으로 발전하는 건 계약결혼이 사랑을 시작하는 또 하나의 도구가 되어 설정 자체에는 충실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인간을 구하는 건 인간의 관계라는 김규태 감독의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기에는 충분했지만.
결혼의 유지: 결혼하면 [누구의] 가족이 되는걸까?
가족이라는 집단은 때로는 서로를 보호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위기 속에서 구성원 중 한 사람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환장할 우리 가족에서는 남편의 암투병을 계기로 주변 사람들이 작가에게 이혼을 권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결혼이 단순히 두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외부 요인에 따라 유지되거나 해체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결혼 생활은 단순한 개인 간의 문제라기 보다 사회적 기대와 현실적 요구 사이에서 끊임없는 조율을 해나가는 과정이고, 그 안에서 서로 다른 가치관과 생활 방식이 충돌하며 사랑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갈등이 발생한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요소는 사랑 외에도 경제적 요인, 사회적 기대, 자녀 양육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부부는 사랑을 바탕으로 가족을 형성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관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점점 다양해진다. 전에는 경제적 이유로 결혼을 유지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감정적, 심리적 안정 또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제는 결혼이 사위나 며느리 등 혈육 가족을 확장하는 수단이라기보다, 배우자와의 연대를 통해 서로의 인생을 지탱하는 동반자 관계로 변화하고 있다.
결혼의 끝: 이혼은 실패인가, 새로운 시작인가
결혼을 유지하는 것이 항상 최선일까? 부부 관계가 갈등 속에서도 지속되는 것이 의미 있는가? 아니면 변화하는 관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더 건강한 선택일까?
노아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는 이혼의 과정 및 이혼 후에도 이어지는 가족 관계를 조명한다. 주인공들은 이혼의 결심과 과정에 힘들면서도 그들이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 만큼 그 과정 안에서 서로를 단절하지 않으며, 이혼이 관계의 끝이나 증오의 산물이 아니라는 걸 충분히 설명한다. 사회적으로 이혼은 실패와 단절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이혼 후에도 새로운 형태의 괜찮은 가족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단절이 아닌 관계의 재구성이랄까.
법적으로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선택이 될 수도 있으며, 이혼이 반드시 상처만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행복과 존중을 위해서 이혼이 필요할 때도 있고 오히려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가족의 법적 형태가 변한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종료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결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결혼이 사랑의 결실이라는 인식은 여전히 강하지만, 현실적으로 결혼은 법적·사회적·경제적 요소가 얽힌 복합적인 제도다. 그리고 그 제도가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할 때, 변화하거나 해체될 수도 있다.
과거에는 결혼이 가족의 완성이라 여겨졌고, 이혼은 실패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관계의 변화가 곧 단절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나은 형태로 재구성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법적 가족이든, 비혈연 공동체든, 중요한 것은 '틀'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행복과 지속 가능한 관계다.
결혼은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시스템이지만, 그 시스템에 맞추기 위해 개인이 희생될 필요는 없다. 사랑과 책임, 계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결혼이라는 관계 속에서, 우리는 더 유연한 시각을 통해 새로운 가족의 가능성을 탐색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보다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