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지 않아도 헤어지는 '결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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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지 않아도 헤어지는 '결혼 이야기'

뉴니커
@user_u2oeivdv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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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는 이혼을 다루지만, 흔한 법정 공방이나 감정적 복수극이 아니다. 대신 이혼이라는 과정을 통해 관계의 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담아낸다. 영화는 이별을 극적인 파국이 아니라, 관계가 서서히 닫히고 마침내 서로 다른 길을 걷기로 결정하는 과정으로 그린다.

감정의 폭발, 나를 알아가는 과정

부부가 서로의 좋은 점을 나열하는 인트로가 마무리되어 갈 때 쯤 상담실에서 니콜이 격한 반응을 보이는 장면에 처음으로 놀랐다. 어색하거나 겸연쩍은 정도가 아니라, 마치 오랫동안 눌러왔던 감정을 터뜨리듯 욕설을 섞어가며 감정을 강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완전히 망가진 상태로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했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둘의 이혼이 단순한 파탄이 아니라 관계를 끝내는 방식임을 점점 깨닫게 된다. 니콜이 화가 난 건, 찰리에 대한 애정을 잃어서가 아니라, 그의 좋은 면모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이 감내했던 희생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미움 없이 싸워도 끝을 내야 했다

이들의 이혼 과정에서 법정 소송은 중요한 장치이다. 처음엔 나쁜 감정 없이 원만하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변호사들이 개입하며 예상보다 더 복잡한 싸움으로 변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직접 공격하지 않기 위해 변호사들을 내세운 과정이 오히려 둘을 더 멀어지게 만든다. 서로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이 과정 자체에 지쳐가면서 말이다.

소송에서 대리인들이 상대를 공격하는 장면에서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래야 끝이 나는 현실에 몸을 맡긴 듯 보였다. 처음에는 원만한 합의를 기대했지만, 결국 법적 절차를 거치며 나와 상대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그렇게 서로를 정말 놓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찰리는 뉴욕에서는 흔들림 없는 연출가지만, LA에서는 니콜 없이 어쩔 줄 몰라 한다. 이혼 조정 장면에서 점심을 시킬 때조차도 스스로 주문하지 못하고 니콜이 대신 해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니콜이 그의 신발끈을 묶어주는 장면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클리셰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찰리가 여전히 니콜의 도움이 필요하더라도 그 관계는 끝났음을 보여주는 씁쓸한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전히 서로의 도움이 지속될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니콜 역시 찰리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집의 문이 잘 닫히지 않아 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니콜은 아들 헨리를 데리고 집 안에 남고 찰리는 문을 닫으며 떠난다. 둘의 표정을 비추는 카메라는 그 망가진 문을 안 팎에서 같이 닫으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천천히 닫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같이 끝내지만, 받아들이는 속도는 다르다

넷플릭스 코리아

니콜과 찰리가 이혼을 앞두고도 익숙하게 함께 있는 모습을 본 베이비시터가 "두 분은 정말 멋진 커플이에요"라고 한 장면도 흥미롭다. 립서비스였겠지만, 이 후 애매하게 니콜이 방으로 들어가고 찰리는 거실에 남는 장면은 이 단순한 칭찬이 함축한 모순과 씁쓸함을 보여주며 두 사람이 더 이상 한 공간에 자연스럽게 머무는 게 어색하다는 걸 강조한다. 그 칭찬을 들은 니콜이 어색하게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 니콜은 이미 '멋진 커플' 연기를 할 수 없는 상태인 것 같다.

초반에 니콜의 감정씬이 두어번 나오고 후반부에는 찰리의 감정을 보이는 장면들이 나온다. 니콜은 결혼 속에서의 자신을 먼저 깨닫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며 소송 전에 감정을 좀 정리한 반면, 찰리는 수동적으로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 변화를 더디고 간접적으로 받아들인다. 혼자 피나 흘리던 찰리가 직접적으로 입 밖으로 감정을 내뱉는 건 니콜과의 대면 장면 뿐인데, 영화 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둘이 같이 폭발하지만 그 순간을 먼저 경험한 니콜은 찰리를 안아준다.

먼저 외로웠던 니콜, 점점 외로워지는 찰리

니콜은 가족들 앞에서 엄마, 언니와 함께 밝은 노래를 부르며 점점 더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찰리는 동료들 앞에서 혼자 노래를 부른다. Being Alive를 부르는 찰리의 모습은 영화 전체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초반에는 주변 대사들과 겹쳐지면서 가사가 온전히 전달되지 않지만, 점점 노래가 완전한 형태로 울려 퍼진다.

누군가 너무 가까이 다가와 나를 붙잡고,
누군가 나를 깊이 아프게 하고,
누군가 내 의자를 차지하고 내 잠을 망치게 하고...

처음에는 관계의 번거로움과 고통을 나열하는데 노래가 진행될수록 함께하는 그것이 결국 삶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이 노래를 부르면서 찰리는 처음에는 감정을 눌러 담은 채 읊조리지만, "혼자는, 그냥 혼자일 뿐, 살아있는 게 아니다."며 점차 감정을 터뜨리며 절규하듯 부른다. 그가 마침내 외로움을 직면하며 관계가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결국 타인과 함께하는 게 '살아있음 being alive'의 증거라는 깨달음에 이른 게 아닐까.

너와 나, 다시 각자의 길에서

결혼 이야기는 이혼이라는 관계의 파국을 다루면서도 그 끝이 반드시 증오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혼을 통해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성장하지만, 둘이 다시 함께하는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서로를 다른 사람이 대체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이별은 완전한 단절이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을 인정하면서도 각자의 길을 가는 과정에 가깝다. 이처럼 '결혼 이야기'는 이별이 곧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관계와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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