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 복종하는 뇌, 저항하는 뇌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 복종하는 뇌, 저항하는 뇌

작성자 말로

알책수다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 복종하는 뇌, 저항하는 뇌

말로
말로
@user_usj73co68g
읽음 363
이 뉴니커를 응원하고 싶다면?
앱에서 응원 카드 보내기

3.1절이 되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내가 만약에 일제 강점기에 살았다면, 과연 부역자로서 살아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무려 35년이라는 세월 동안...'

일본군이 총칼을 들이대며 동포를 고발하라고 명령한다면, 과연 거부할 수 있었을까요? 위험을 무릅쓰고 저항할 수 있었을까요? 왠지 자신 있게 '아니요'라고 말하기 힘들것 같습니다. 부귀영화는 아니더라도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명령에 따르며,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독립운동가 분들의 삶이 얼마나 가치가 있고, 존경을 받아야 마땅한지 새삼 깨닫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에밀리 A. 캐스파의 『명령에 따랐을 뿐!?』 (원제: JUST FOLLOWING ORDERS)은 이런 불편한 질문을 던지며 시작합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학살과 잔혹 행위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 하에 이루어졌는데요. 저자는 "왜 사람들은 명령에 복종하는가?"라는 질문을 파고들며, 인간 심리의 어두운 구석을 탐색합니다.

이 책, 어떤 내용일까요?

  • 저자 에밀리 A. 캐스파 : 벨기에 겐트대학교 실험심리학과 부교수로, 현재 '도덕 및 사회적 뇌 연구실'을 이끌고 있어요. 그녀의 박사 논문 「강압은 인간 뇌의 주체의식을 변화시킨다」는 발표 후 심리학계와 과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죠. 권위와 복종에 관한 인지신경과학적 연구로 벨기에왕립아카데미 심리학상, 윌리엄제임스상 등을 수상했어요. 단순한 이론가가 아닌, 인간이 명령에 복종하는 심리적·신경학적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전문가입니다.

    에밀리 A. 캐스파 (출처: https://x.com/casparemilie)
  • 명령과 복종의 심리 : 밀그램의 복종 실험부터 현대 심리학 연구까지, 인간이 권위에 복종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합니다. 특히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잔혹한 행위에 가담하게 되는지 그 심리적 과정을 파헤쳐요.

  • 역사적 사례 분석 : 홀로코스트, 르완다 학살, 캄보디아 학살 등 다양한 집단학살 사례를 통해 명령과 복종의 역학 관계를 분석해요. 이런 비극이 반복되는 패턴과 그것을 막을 방법을 모색합니다.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내용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라고 말하는 이유는?

캐스파는 사람들이 명령에 복종하는 이유를 다양한 심리적, 사회적 요인으로 설명합니다.

권위에 대한 존중과 두려움
"선생님 말씀은 무조건 들어야지!" 어릴 때부터 부모, 교사, 상관 등 권위자의 말을 따르도록 교육받아요. 이런 권위에 대한 복종은 자연스럽게 체화되어, 나중에 부당한 명령이라도 의심 없이 따르게 됩니다. 권위자가 흰 가운을 입은 의사나 제복을 입은 경찰이라면 그 효과는 더 강력해져요.

책임 회피의 심리
"저는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를 수행했을 뿐입니다." 이런 말, 회사에서도 자주 듣지 않나요?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회피할 수 있어요. 책임은 명령을 내린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그저 '수행하는 도구'로 여깁니다.

집단 동조와 사회적 압력
"다들 이렇게 하는데 나만 튀고 싶진 않아..." 다른 사람들도 모두 따르고 있다면, 나만 다르게 행동하기 어렵죠. 동료의 시선, 배제에 대한 두려움, 소속감은 강력한 복종의 동기가 됩니다. 특히 한국처럼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사회에서는 이런 압력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어요.

점진적 순응
"처음엔 작은 거짓말이었는데..." 처음에는 작은 일에 복종하다가 점차 더 심각한 행위에도 무감각해지는 현상이에요. 한 번에 큰 악행을 요구받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경계를 넘게 됩니다. 홀로코스트도 하루아침에 일어난 게 아니라, 유대인 상점 불매운동부터 시작해 점점 더 극단적인 조치로 나아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명령하는 자 vs 따르는 자, 진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캐스파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과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명령자의 책임
"위에서 그렇게 하라고 해서..." 이런 변명, 정말 통할까요? 명령자는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타인에게 해로운 행위를 시키는 직접적 책임이 있어요. 특히 명령자가 복종자의 심리적 취약성을 이용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면 책임은 더 무거워집니다. 캐스파는 이런 명령자들이 종종 '나는 직접 손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논리로 자신을 방어한다고 지적해요.

복종자의 책임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은 뉘른베르크 재판에서도 인정되지 않았어요. 전범들의 이 변명은 '슈페리어 오더스(superior orders)' 항변이라고 불리는데, 국제법에서는 이것이 범죄 행위를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어요. 인간에게는 명백히 비도덕적인 명령을 거부할 도덕적 의무가 있습니다. 캐스파는 "나는 나의 행동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해요.

공동 책임의 원칙
"그냥 지켜만 봤을 뿐인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책은 잔혹 행위가 발생할 때 명령자와 복종자, 그리고 방관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저지르거나, 실행하거나, 막지 않음으로써 비극에 기여했기 때문이죠.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유명한 말을 기억하세요. "그들이 공산주의자들을 잡아갈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복종하지 않은 사람들의 특징은?

역사적으로 부당한 명령에 저항한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강한 도덕적 나침반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 자신만의 확고한 도덕적 기준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외부 권위보다 우선시돼요. 종교적 신념이나 철학적 원칙이 이런 도덕적 나침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홀로코스트 당시 나치의 명령을 거부하고 유대인을 숨겨준 사람들 중 상당수가 깊은 종교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공감 능력
"저 사람도 나와 같은 인간이야" 피해자를 추상적 대상이 아닌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보는 능력이 있어요. 피해자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는 사람일수록 잔혹한 명령에 저항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학살과 같은 집단 폭력이 가능해지는 첫 단계는 종종 피해자 집단을 '비인간화'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독립적 사고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해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할래" 집단 사고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상황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권위자의 말이라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판단합니다. 이런 독립적 사고는 특히 권위주의적인 사회에서 더 중요하지만, 동시에 더 위험할 수도 있어요.

소외를 감내하는 용기
"혼자가 되더라도 이건 아니라고 말할래" 저항은 종종 고립, 처벌, 심지어 죽음의 위험을 감수해야 해요. 이런 위험과 소외를 견딜 수 있는 심리적 강인함이 필요합니다. 독일의 비밀경찰 장교였던 빌헬름 폰 고틀리프 쉐퍼는 나치의 학살 명령을 거부했다가 처형당했어요. 처형 직전 그는 "내 양심은 깨끗하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101628

이것만은 기억해요.

캐스파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 우리에게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명령에 대한 맹목적 복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비극들의 원인이었다
    홀로코스트부터 현대의 집단학살까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 뒤에는 셀 수 없는 희생자들이 있어요.

  2. 누구나 부당한 명령에 복종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악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밀그램 실험이 보여주듯, 평범한 사람들도 상황과 조건에 따라 잔혹한 행위에 가담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결코 명령에 복종한 사람들에게 면죄부가 될 수는 없어요.

  3. 저항할 수 있는 도덕적 용기를 키워야 한다
    비판적 사고, 강한 도덕적 원칙,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것이 미래의 비극을 막는 열쇠입니다.

  4. "나는 다르다"는 안일한 생각을 경계하라
    "나는 그런 상황에서 절대 복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한 자만일 수 있어요.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경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솔직히 아쉬운 점은 있어요.

  • 실험실 공간에서만 증명되었던 내용을 현실 속 사건 관련자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확장하는 시도는 좋았으나, 자기방어와 법적 문제로 인터뷰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 평범한 사람들이 부도덕함에 맞서 싸우는 '친사회적 불복종'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점이 아쉬워요.

  • 복종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논리 전개에 있어 몰입도가 다소 아쉬워요.


오늘날 우리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지 않더라도, 직장에서, 인간관계에서, 온라인에서 끊임없이 '복종'의 상황에 직면합니다. 내가 따르는 지시나 사회적 압력이 옳은 것인지 늘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습관이 필요해요. 집단적 광기를 막는 것은 결국 개인의 양심과 저항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지금 여기 살아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은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명령에 복종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평생 마주해야 할 질문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부도덕한 명령을 거부했고, 그 결정으로 인한
결과를 감수하면서도
자신의 선택을 지킨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