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 구석에서 팝업스토어 한가운데로, '가챠'의 급성장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문방구 구석에서 팝업스토어 한가운데로, '가챠'의 급성장 🎁

며칠 전 오랜만에 홍대거리를 들렀다가 깜짝 놀랐어요. 흔히 가챠, 랜덤 뽑기라고 부르는 캡슐토이 가게들이 정말 많이 보였거든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들도 있었고요. 장난감 종류도 되게 다양했어요. 유명 애니메이션 캐릭터부터 공중 전화기 미니어처, 누르면 불이 들어오는 버스 하차 벨 모형까지, ‘이런 것도 있네?’ 싶을 정도로 각양각색의 장난감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이렇게 수집한 캡슐 토이들로 나만의 공간을 꾸밀 수 있는 가구까지 팔더라고요.
40~50년 전에 등장한 캡슐토이는 오랫동안 어린이 문화로 취급됐어요. 하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하나의 산업으로 대우받고 있죠. 캡슐토이의 원조인 일본에서는 2023년 기준 시장 규모가 약 610억 엔(5,700억 원)에 달해요. 한국 업계 관계자들도 올해 캡슐토이 시장이 400억 원대로 성장할 거라고 보고요. 왜 캡슐토이는 최근 들어 특히 가파르게 성장하는 걸까요?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내고 캡슐을 뽑는 이유는 뭘까요?
훑어보기 👀: 100년도 훌쩍 넘은 가챠의 역사
1907년 미국, 어린이들이 순식간에 마음을 뺏긴 무인 장난감이 나타났어요. 동전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맛있는 풍선껌이 나오는 검볼(gumball) 자판기였죠. 처음엔 껌만 들어있었지만, 반응이 좋자 작은 장난감을 넣어 팔기도 했는데요. 떼쓰는 아이도 절로 조용해진다고 해서 ‘셧업 토이(shutup toy)’라고도 불렸어요. 여기에 들어가는 장난감을 납품하던 일본 회사들이 상업적 가능성을 보고, 1960년대에 기계를 수입하기 시작했죠.
지금 같은 캡슐토이 기계는 1965년 등장했어요. 페니 상회(ペニイ商会)라는 회사가 단돈 10엔에 과자나 장난감 등을 판매했죠. 1977년에는 프라모델로 유명한 ‘반다이(BANDAI)’가 장난감 크기를 키워 100엔에 팔기 시작했는데요. 동전을 넣고 찰칵찰칵(가샤) 손잡이를 돌리면, 퐁(폰)~ 하고 장난감이 나온다는 뜻을 담아 ‘가샤폰(ガシャポン)’이라는 상표를 등록했어요. 또 다른 완구 산업계 강자인 ‘타카라토미(タカラトミー)’도 같은 시기에 ‘가챠(ガチャ)’라는 브랜드로 캡슐토이를 내놨고요. 이후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소재로 한 수많은 장난감이 히트하면서 산업이 커지고, 1985년엔 우리나라에도 수입됐어요.
90년대 들어 휴대용 게임기의 등장으로 잠시 가라앉기도 했지만, 캡슐토이 산업 자체는 꾸준히 유지됐어요. 디즈니 캐릭터 등을 활용한 장난감들이 등장하면서 여성층을 중심으로 인기가 지속됐거든요. 2000년대 초반에는 하나에 200~400엔으로 비싸지만, 그만큼 퀄리티 좋은 ‘프리미엄 가챠’도 등장해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캡슐토이 자판기만 수십 대 모여있는 전문점, 가챠 완구만 만드는 회사도 이때 생겨났는데요. 2010년대 들어서는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시장이 다시 성장세로 돌아섰어요. 특히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더 열광했어요. 납작 엎드려 절하는 만화 캐릭터들, 처절한 표정의 고양이 그립톡 같은 장난감들이 인증샷을 남기기에 딱 좋았거든요.
2020년대 들어 캡슐토이 시장은 신드롬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커졌어요. 1달마다 300개 넘는 신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2023년 일본에서는 성인 여성 절반 이상이 캡슐토이를 구매한 적 있다는 설문조사도 나왔죠. 우리나라의 캡슐토이 시장도 급성장 중이에요. 원하는 피규어가 나올 때까지 도전하는 아이돌의 모습 같은 콘텐츠 등을 계기로 빠르게 트렌드가 퍼졌거든요. 용산구에 문을 연 가챠파크는 오픈 한 달 만에 방문객 4만 명을 기록하기도 했어요. 캡슐토이가 정말로 하나의 문화가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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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슐토이 성장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해요. 우선 사람들이 예측 불가능한 즐거움만 찾으려 한다며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죠. 살면서 성취감을 느낄 기회가 적어지다 보니, 적은 노력으로도 무언가 해냈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몰린다는 거죠. 실제로 1997년 IMF 위기,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인형 뽑기방이 때아닌 호황을 맞기도 했고요.
최근 인구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들의 전략이라는 얘기도 나와요. 어린이 인구가 급감하면서 캡슐토이 브랜드들이 젊은 세대로 눈을 돌린 거죠. 실제로 일본에서 가장 활발하게 가챠 제품을 소비하는 고객들은 2030 여성들이에요. 한국에서도 유사한 고객층을 겨냥한 대규모 캡슐토이 매장들이 생겨나고 있고요. 최근 에이블리가 선보인 ‘뷰티 가챠’도 반응이 좋았어요. 이처럼 ‘가격 대비 도파민’ 성능이 좋은 매체로 캡슐토이가 각광받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에요.
하지만 저는 캡슐토이 유행이 무엇보다도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경기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사람들은 모두 ‘부담 없는 신선함’을 느끼고 싶어 하니까요.
사실 지금은 마음이 팍팍해질 수밖에 없는 시대에요. SNS와 유튜브 피드에는 자극적이거나 성공해야만 한다는 걸 강요하는 콘텐츠들이 가득하죠.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부터가 전쟁 같아서, 시간을 내서 여유를 가지는 것도 부담이 되고요. 그런 사람들에게 캡슐토이는 누군가에게는 어릴 적 추억을, 또 다른 사람에게는 ‘꼭 잘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으로 얻을 수 있는 작고 소중한 즐거움을 전해줘요. 꽝이 나올 걱정 없이 손잡이를 돌리기만 하면 되거든요.
최근 뉴니커는 어떤 가챠에 도전해 봤나요? 그렇게 뽑은 장난감이 뉴니커의 일상에는 어떤 힘을 주고 있나요? 2020년대 들어 더 다양하게 진화 중인 캡슐토이에 대한 뉴니커의 생각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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