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보면 현대 건축 흐름을 알 수 있다? 🏢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보면 현대 건축 흐름을 알 수 있다?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보면 현대 건축 흐름을 알 수 있다? 🏢

고슴이의비트
고슴이의비트
@gosum_b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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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3월이 되면 전 세계 건축계는 마음 졸이며 희망 회로를 돌려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릴 정도로 건축가에게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꼽히는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 이하 프리츠커상)의 향방 때문이죠. 지난 3월 4일, 2025년 프리츠커상의 결과가 발표됐는데요. 올해 수상자는 중국 건축가 류자쿤(刘家琨)입니다. 지난 2012년에 상을 받은 왕수(王澍) 이후로 중국 국적으로는 두 번째 수상자예요. 작년에 일본의 야마모토 리켄(山本理顯)이 타면서, 2년 연속 아시아 건축가가 프리츠커상을 빛낸 건데요. 그래서인지 (역시나) 올해도 빠지지 않고 ‘대한민국은 왜 프리츠커상을 타지 못하는가?’ 한탄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프리츠커상이 대체 뭐길래 이리들 난리일까요?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상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 있는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

프리츠커상은 1979년 하얏트재단(Hyatt Foundation)에서 발족한 건축상이에요. 하얏트재단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글로벌 호텔 체인 하얏트의 그 ‘하얏트’가 맞습니다. 하얏트호텔의 창업자인 제이 프리츠커(Jay A. Pritzker)와 부인 신디 프리츠커(Cindy Pritzker)가 1979년 가문의 이름을 따서 제정했어요. ‘하얏트랑 건축이랑 무슨 상관이지?’ 싶겠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연관이 깊어요. 프리츠커 가문의 본거지가 미국 시카고거든요. 1871년 대화재 이후 도심을 통째로 재건하며 근대 건축의 실험장이 된 시카고에서 나고 자란 제이 프리츠커에게 건축은 공기 같은 것이었어요. 1967년 현 하얏트 리젠시 애틀랜타 호텔을 열 때 선보인 장대한 아트리움이 호텔 성공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자, 건축의 도시에 자리 잡은 가문이 건축계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는데요. 이후 한 지인이 ‘건축계의 노벨상’ 같은 걸 만들면 어떠냐고 제안하면서, 프리츠커상이 탄생하게 되었어요.

프리츠커상은 의도했든, 아니든 노벨상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일단 상을 받는 주체가 사람이에요. ‘재능, 비전, 의지를 바탕으로 건축이라는 예술을 통해 인류와 건축 분야에 지속적으로 지대하게 공헌한 살아있는 건축가’에게 상이 돌아갑니다. 안타깝게도 죽으면 상을 못 받는 게 노벨상과 똑 닮았죠. 요즘 노벨상은 협업 연구가 보편화됐기 때문에, 공동 수상자가 속출하는데요. 예술 영역에 속하는 문학상은 단 한 명에게 돌아갑니다. 프리츠커상도 비슷해요. 1988년을 제외하곤 공동 수상이 없었어요. 대신 2~3명이 팀으로 일할 때는 개인 각자에게 모두 수여합니다. 심사 과정이 철저히 비공개에다, 발표날까지 보안을 유지하는 면도 같아요. 일단 상을 받으면 세계적으로 명성이 치솟고, 강연료가 급상승하죠. 자기가 몸담은 분야에서 최고의 영예로 꼽히기 때문에 모든 이가 흠모하고, 올림픽 금메달처럼 국위선양으로 해석한다는 점도 독특합니다. 국가별로 누적 수상자를 따지는 상은 세상에 정말 흔치 않거든요.


이 시대의 건축을 선언하는 상

2022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디베도 프란시스 케레의 작업물

프리츠커상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위대한 거장들이 지금까지 수상자 리스트를 독차지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현대 건축이 겪은 변화의 흐름이 보이거든요. 첫 10년은 영미권 주류 건축의 입맛에 맞는 대가들에게 헌정하는 의미가 강했어요. 하지만 특정 협회나 기관이 아닌 민간 재단에서 주도하는 글로벌 건축상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매우) 유연하게 ‘지금 이 시대의 건축’을 선언하는 예언자 같은 역할을 맡기 시작했어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 안도 다다오(安藤忠雄),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 디베도 프란시스 케레(Diébédo Francis Kéré) 등입니다.

지금이야 건축계 최고의 스타로 유명한 프랭크 게리는 1989년 프리츠커상을 받으면서 건축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어요. 실험적이고 해체주의적인 성향을 고수하던 그는 제대로 지은 건물이 거의 없었는데요. 자기 주택을 대상으로 기묘한 실험을 지속하고, 비트라(Vitra)에서 (이제는 꽤 유명한) 골판지 의자를 출시하는 등 예술가에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습니다. 그러나 프리츠커상을 받은 후 대형 클라이언트의 요청으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비롯해 수많은 대표작이 쏟아져 나왔죠. 물론 여기에는 건축 설계 기술의 발전이 큰 힘이 되었지만, 프리츠커상 타이틀이 아니었다면 그에게 선뜻 일을 맡기는 곳이 없었을 거예요. 게리 덕분에 프리츠커상 또한 새롭게 변신할 수 있었어요. 건축가가 그동안 쌓은 업적이 아니라, 건축 철학과 태도를 심사 기준에 포함하면서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될성부른 거장들을 발굴해 수상자 리스트에 넣을 수 있었죠. 렘 콜하스(Rem Koolhaas, 2000), 자하 하디드(Zaha Hadid, 2004) 등이 대표적이에요.

안도 다다오는 고졸 출신의 비전공자에 일본 오사카 지방에서 활동하던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인 건축가였는데요. 1995년 수상자로 결정되면서 그의 위상은 순식간에 올랐고, 프리츠커상은 보수적인 건축계의 분위기를 밀어내며 말 그대로 전 세계를 상대로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어요. 이후 우리가 잘 아는 스타 건축가들 ―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 렌초 피아노(Renzo Piano), 헤르조그와 드 뫼롱(Jacques Herzog & Pierre de Meuron),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gers), 장 누벨(Jean Nouvel) ― 이 상을 독점하다시피 하던 시기를 거쳤는데요. 2009년 스위스에 은둔하며 작업하던 페터 춤토르의 수상은 미디어에 노출하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조용한 건축가들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됐어요. 서민을 위한 주택을 지으며 참여 설계, 불완전한 구조, 공동체 중심의 공간을 실험하던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의 2016년 깜짝 수상은 사회적 건축과 공공성이 요즘 건축의 필수 덕목으로 떠오른 계기가 됐고요. 2022년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첫 수상한 디베도 프란시스 케레는 ‘제3세계’ 로컬 건축의 가능성을 북돋는 다양성의 상징이 되었어요.


수상 이후가 진짜 시작인 상

2021년 프리츠커상 수상자 안 라카통 & 장 필립 바살의 공공 주택 프로젝트

예전에는 프리츠커상을 받으면 건축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반대예요. 평균수명이 연장됐거든요. 특히 건축가는 장수하면서 죽을 때까지 작업하기로 유명한 직군이에요. 요즘 건축가의 부고 소식을 보면 80~90세가 대세입니다. 프리츠커상을 받은 이소자키 아라타(磯崎新)와 마키 후미히코(槇文彦)는 각각 91세, 95세에 별세했고요.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프랭크 게리는 현재 96세예요! 수많은 노장 또한 아직 쌩쌩하게 작업 중이죠. 그에 비해 프리츠커상 수상자의 평균 연령은 50~60대예요. 즉, 100세 시대가 일상이라면, 지금까지 활동한 세월만큼 앞으로 더 활동한다는 뜻입니다. 적어도 20~30년은 거뜬하죠. 그래서 ‘그동안 뭘 해왔냐?’보다 ‘앞으로 뭘 할 거냐?’가 화두가 됐어요.

지금은 멋진 건축물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건축가 고유의 건축 언어는 물론이고, 태도와 철학, 공공성과 사회 및 도시와의 관계까지 복합적으로 다 중요해요. 이런 상황에서 창작자가 나이를 먹고, 연륜이 쌓일수록 자연스럽게 꾀하는 변화와 진화가 프리츠커상 수상자에게 뜻하지 않은 고민을 안기고 있어요. 상을 받은 후 전 세계에서 밀려드는 각종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돈에 눈이 멀었다, 초심을 잃었다, 변심했다고 비난받기도 하고요. 건축 인생의 절반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기존의 태도를 고수하다가 오히려 퇴행하는 거 아닌가 하는 부담감도 생겼습니다. 대중의 목소리가 크고 높은 시대니, 건축가 또한 이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지요. 프리츠커상도 곤란한 건 마찬가지예요. 수상자가 명성 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권위가 실추되고, 극단적으로는 존재 가치를 잃을지도 몰라요. 결국 ‘이 시대의 건축’을 선언한 결과가 실패한 꼴이니까요.

건축은 건축가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지 않아요. 현실과 자본, 정치 사이를 끊임없이 조율하는 고도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쉽게 예측할 수 없고, 건축가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일도 불가능해요. 점점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이제 프리츠커상은 ‘누가 위대한 건축가인가?’, ‘누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인가?’를 넘어서 ‘앞으로 그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추적 관찰하는 역할도 병행해야 합니다. 이런 프리츠커상의 본질을 고민하지 않는 ‘한국인 수상자 타령’은 공염불이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눈에 보이는 국가 위상보다, 앞으로 가시화될 우리 미래가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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