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 쇼핑이 힙한 취미가 된 이유 ✏️📓

문구 쇼핑이 힙한 취미가 된 이유 ✏️📓

작성자 고슴이의비트

비욘드 트렌드

문구 쇼핑이 힙한 취미가 된 이유 ✏️📓

고슴이의비트
고슴이의비트
@gosum_b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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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니커는 필기구에 어느 정도로 ‘진심’인가요? 모든 분야가 대개 그렇겠지만, 필기구야말로 필기구에 진심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차이가 크게 두드러지는 분야인 것 같아요. 펜 한 자루와 메모지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사람과, 색색깔의 펜과 마스킹테이프, 스티커, 용도별 다이어리 2-3개는 챙겨야 안심이 된다는 사람이 확실하게 나뉘니까요. 읽고 쓰는 게 직업인 에디터로서, 저 또한 필기구에 아주 진심이던 시기가 있었는데요. 각종 빈티지 만년필 모델과 거기에 맞는 잉크, 또 거기에 맞는 종이를 찾기 위해 밤새워 인터넷을 뒤지던 때의 기억이 있어요 ☺️.

문구에 관심 좀 있는 뉴니커라면 알겠지만, 최근 문구류를 둘러싼 유행은 심상치 않아요. 몇몇 유명 문구 브랜드를 중심으로 팬덤이 만들어지고, 인스타그램 피드에 ‘감성 문구 추천’ 같은 콘텐츠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가 싶더니, 이런 흐름이 좀 더 확실한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거든요.

오늘 비욘드 트렌드는 최근 본격화되고 있는 ‘문구 유행’을 다뤄볼게요 ✏️📓.


훑어보기 👀: 문구 페어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린다고?

이미지 출처: 인벤타리오 문구페어(왼쪽), POINT OF VIEW(오른쪽)

혹시 그 소식 들었나요? 온라인 플랫폼 29cm와 프리미엄 문구 전문 편집숍 ‘포인트 오브 뷰’가 공동 개최하는 문구 페어, ‘인벤타리오’ 얼리버드 티켓이 오픈 3일 만에 모두 매진됐다는 소식. 소소문구·흑심·오이뮤 등 두터운 팬층을 가진 작은 브랜드는 물론, 한국파이롯트·파버카스텔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전통적인 문구류 기업까지 참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벤타리오는 행사 공개 때부터 큰 관심을 모았는데요.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문구 문화 전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몰리면서 화제가 된 거예요.

“문구 페어의 인기가 이 정도라고 👀?” 라며 놀라는 사람도 많았지만, 사실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에요. 예쁘고 질 좋은 문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거든요. 29cm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2월 12일까지의 문구·사무용품 거래액은 작년에 비해 75%나 늘었어요. 이중 다이어리·플래너 상품이 64%, 노트류는 43%나 늘었고, 고급 만년필·볼펜·연필 등 필기구 거래액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2.4배나 늘었다고. 툴박스·북스탠드 등 데스크테리어를 할 때 사용하는 제품들의 거래액도 2배로 뛰었고요.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 등 스몰 브랜드·개인 작가들의 제품을 만나볼 수 있는 행사의 인기도 덩달아 함께 높아지고 있어요.

이미지 출처: 오이뮤(왼쪽), TOOLS to LIVEBY(가운데), Blackwing(오른쪽)

전문가들은 최근의 ‘텍스트힙(Text Hip)’ 유행이 문구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해요.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일을 좋아하는 걸 넘어서, 직접 텍스트를 쓰고 공유하는 걸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텍스트힙 유행이 ‘라이팅힙(Writing Hip)’으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건데요. 

최근의 ‘필사’ 유행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어요. 좋아하는 책의 구절을 옮겨 적거나, 노래 가사·인생 명언 등을 따라 적는 필사는 애독가들 사이에서는 아주 오래된 취미인데요. 최근 몇 년 사이 인스타그램·틱톡·블로그 등 2030세대가 많이 사용하는 채널을 통해 ‘필사 인증’을 올리는 사람들이 늘면서, 대중적인 인기가 엄청 커졌어요. 교보문고의 지난해 필사집 판매율은 전년 대비 7배 가까이 성장했고, 출간한 책의 종수도 57권에서 81권으로 40% 넘게 늘었다고. 이에 따라 출판사가 책을 출간할 때 필사집을 함께 내거나, 유명 도서의 필사 노트를 출시하는 등 ‘필사 마케팅’을 하는 경우도 많아졌고요.

라이팅힙 얘기를 할 때 ‘다꾸’ 유행도 빼놓을 수 없어요. 다꾸, 즉 다이어리 꾸미기 역시 최근 부상한 2030세대, 특히 여성들의 대표적인 취미 중 하나이기 때문. 다꾸를 하려면 다이어리 외에도 색색깔의 예쁘고 질 좋은 펜과 종류별 마스킹테이프, 스티커 등 다양한 부자재가 필요하잖아요. 새로운 ‘다꾸템’을 계속해서 발굴하고, 사진과 후기를 공유하는 것 역시 다꾸의 핵심적인 요소고요. 다꾸 유행은 곧 더 다양한, 좋은 퀄리티의 문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자세히 보기 🔎: 우리는 왜 쓰는 것을 힙하게 여길까

이미지 출처: 창비(왼쪽), 책발전소(오른쪽)

전문가들은 텍스트힙에 이어 라이팅힙이 유행하고, 문구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이런 상황을 ‘아날로그한 것’에 대한 열망이 커져가고 있는 사회 분위기와 연관 지어 해석해요. 틱톡·쇼츠·릴스 등 짧으면 30초, 길면 1분 남짓인 ‘도파민 터지는’ 콘텐츠에 지친 사람들이 점점 아날로그 텍스트의 세계로 되돌아오고 있다는 거예요. 

무언가를 쓰는 행위에 필수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책상 앞 의자에 앉아 노트를 펴고, 필기구를 꺼내고, 문장을 적기 전 잠시 펜 끝을 깨물며 생각에 잠기는 시간 같은 것 말이죠. 그런 시간들이 가져다주는 여백이나 평온함, 잠시간의 여유 같은 것들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

최근 ‘프리미엄 문구’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우리나라 문구 시장 상황도 영향을 미쳤어요. 일부 ‘문구 덕후’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국산 저가형 문구를 쓰던 과거와 달리,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좋은 품질, 특별한 감성을 강조하는 프리미엄 문구 브랜드들이 유행하면서 판도도 바뀌기 시작한 것. 실제로 올해 포인트 오브 뷰의 29cm 내 거래액은 지난해에 비해 무려 7.6배, 즉 7배가 넘게 뛰었다고. 싸고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문구 대신, 값은 좀 비싸더라도 퀄리티 높고 디자인도 예쁜 문구를 찾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나고 있는 거예요.

포인트 오브 뷰나 교보문고의 ‘문보장’처럼, 프리미엄 문구류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편집숍이 등장한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에요. 좋은 품질과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는 의류 브랜드를 모아 놓은 의류 편집숍처럼, ‘무언가를 쓰는 것’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갖춘 문구 브랜드를 모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채널이 등장한 건데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문구를 사려면 매장을 직접 찾아가거나 인터넷 주문을 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예쁘게 꾸며 놓은 매장에 들러 여러 브랜드의 문구를 구경하고, 나도 몰랐던 새로운 취향을 발견할 수 있게 된 것.

이미지 출처: 오이뮤 인스타그램(왼쪽), 문보장(오른쪽)

매일 새로운 종류의 예쁜 문구들이 쏟아져나오는 걸 지켜보는 건 그 자체로도 즐거운 일이지만, 각각의 브랜드들이 ‘쓰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를 보다 보면 또 다른 재미를 얻을 수 있어요. 쓰는 사람, 즉 스스로 선택한 터인 지면을 곁에 두고 다양한 생각의 씨앗을 심는 사람을 위한 문구를 만든다는 소소문구, 어느새 우리 곁에서 사라져 버린 연필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고 재해석한다는 흑심처럼, ‘쓰는 것’에 진심인 브랜드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새로운 영감이 되어 주거든요.

오늘 비욘드 트렌드는 문구류 유행 현상을 살펴봤는데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통해 글을 쓰는 게 너무나 당연해진 세상에서 한 자 한 자 글을 써 내려가는 일이 여전히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진다는 것, 나아가 멋지고 힙한 일로 여겨진다는 건 참 신기한 것 같아요. 아마 화면을 통해 이 글을 읽고 있을 뉴니커의 생각은 어떤가요? 혹시 이 글을 읽고 나서 ‘나도 오랜만에 문구 쇼핑이나 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면 아주 기쁘겠어요 ☺️.


[비욘드 트렌드] 에디터의 관점을 담아 지금 우리의 심장을 뛰게하는 트렌드를 소개해요. 나와 가까운 트렌드부터 낯선 분야의 흥미로운 이야기까지. 비욘드 트렌드에서 트렌드 너머의 세상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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