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 옆에 있던 걔 누구야?

초승달 옆에 있던 걔 누구야?

작성자 우주애호박

우주가 궁금한 당신에게

초승달 옆에 있던 걔 누구야?

우주애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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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zucch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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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초승달을 보셨나요? 올해 가장 큰 슈퍼문이 뜬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달이 지고 또다시 초승달이 떴습니다. 그럼 초승달 옆에 뜬 밝은 점도 보셨나요? 비행기인가 싶을 정도로 밝고 노르스름한 이 점 말이죠.

2024년 11월 5일 초승달과 금성(촬영자: 석양의 우주 매거진)

유난히 밝은 이 천체의 정체는 별이 아니라 태양계 두 번째 행성, 금성입니다. 몇 달 전부터 해가 지고 난 뒤 서쪽 지평선에서 겨우 그 모습을 찾을 수 있었는데요, 이제는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금성의 고도가 점점 높아졌어요(내년 초까지 계속 높아질 거예요). 그래서인지 어제는 초승달과 금성이 뜬 사진을 찍어 SNS에 공유한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2024년 11월 5일 초승달과 금성(촬영자: 아스트로캠프 김화인)

하늘에 뜬 금성은 어느 보석보다도 영롱히 빛납니다. 과연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또는 비너스)에 비유할만 하죠. 하지만 그것이 금성의 전부일까요?

금성의 변신은 무죄

망원경으로 금성을 관찰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신시아가 사랑의 어머니 모습을 닮았다”라는 의미심장한 문장을 남겼습니다. 여기서 신시아는 달을, 사랑의 어머니는 금성을 가리켜요. 그래도 무슨 말인지 아리송하죠. 갈릴레오가 활동하던 당시, 세상의 중심은 지구였어요. 행성들은 지구 주위를 돈다고 생각했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금성은 항상 초승달이나 그믐달 모양이어야 해요. 그런데 갈릴레이가 본 망원경 속 금성은 달처럼 차고 이지러졌던 겁니다. 지구중심설에 위배되는 내용이었죠. 당장 이 현상을 발표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었던 갈릴레오는 비밀 메시지로 발견을 대신한 건데, 이 문장의 철자를 바꾸면 ‘이것을 읽어내기에는 현재 나는 너무도 일천하다’라는 문장이 된대요.(사이먼 싱의 빅뱅, 79페이지) 망원경으로 봐야만 알 수 있는 금성의 비밀이죠.

금성위성변화이미지

베일을 뒤집어 쓴 핫한 행성

1974년 탐사선 마리너 10호가 촬영한 금성 이미지에선 깃털처럼 부드러운 대기가 눈에 띄죠. 금성은 매우 두꺼운 이산화탄소 대기층이 표면을 감싸고 있어요. 이 두꺼운 대기층이 비닐하우스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열기가 쉽게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금성은 그래서 태양계에서 가장 뜨거운 행성은 수성이 아니라 금성이에요. 기온이 무려 500도나 됩니다. 기압이 워낙 높아서(95기압) 탐사선이 착륙하기도 어려운데요, 굳이 지옥 속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레이더를 이용하면 금성 표면을 가늠할 수 있어요. 배가 레이더를 이용해 바다 속 지형이나 고기떼를 파악하는 것처럼요. 

이게 바로 진짜 금성입니다. 노릇노릇 잘 익은 감자처럼 보이지 않나요? 화산과 무언가가 흐른 흔적이 가득해요. 갈릴레오가 이 모습을 보았어도 사랑의 어머니라 불렀을 지 궁금해지는 군요.

그녀들의 이름이 남아있는 곳

금성 지형은 모두 여성의 이름을 따서 지어요. 달이나 수성과 마찬가지로 금성에도 여러 크레이터가 있는데, 클레오파트라 크레이터,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이름을 딴 디킨슨 크레이터, 마리 퀴리의 딸이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졸리오퀴리 크레이터 등이 있어요. 우리나라 여성의 이름도 있답니다! 직경 30.2km의 황진이 크레이터와 25.9km의 신사임당 크레이터가 있고 윤옥(Yonok)과 윤숙(Yonsuk)이라는 소형 크레이터도 있어요. 크레이터 외에도 마고할미, 삼신, 세오녀, 설문대 등 설화 속 인물의 이름을 딴 지형도 있고요.  

https://planetarynames.wr.usgs.gov/SearchResults

금성은 우리나라와 가장 가깝고, 크기와 질량 면에서 지구와 닮은 행성이지만 생명체가 거주할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어요. 하지만 NASA는 2029년에 금성 탐사선을 보낼 예정이고, 우리나라 또한 2026년에 금성 관측용 탑재체를 지구 바깥에 띄워서 금성을 관찰할 거래요. 두꺼운 베일 뒤에서 그녀는 우리에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요? 일단 오늘 저녁에 서쪽 하늘에서 그녀를 발견해보세요. 그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누구보다도 밝고 눈에 띄는 신비한 존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