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자존감 탑 기생, 황진이의 MBTI는 무엇일까?
작성자 초희
MBTI로 보는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
조선의 자존감 탑 기생, 황진이의 MBTI는 무엇일까?
내 마음 같지 않은 인생 참 살기 힘들다고 여긴 적, 있지 않으신가요? 거센 운명의 파도에 이리저리 떠밀리면서 살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한없이 무기력해지곤 합니다. 여기 누구보다도 가혹한 운명을 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 조금 남다릅니다. 타고난 환경 때문에 주어진 인생의 선택지가 적고 적었지만 결코 절망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상황을 스스로의 기회로 뒤바꿔 버렸죠. 그러곤 남의 시선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제 길을 의연히 걸어갔습니다. 조선 시대 자존감 탑 기생, 황진이의 이야기입니다.
❤️조선 시대 자유연애의 대명사(E)
시원한 물줄기 사이로 큼지막한 바위들이 켜켜이 포개 있고, 폭포 아래 조그마한 정자가 웅장한 규모의 폭포와 대조를 이룹니다. 높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이 만들어내는 하얀 포말은, 보는 이의 마음속 시름과 걱정을 씻어주는 듯한 광경입니다.
북한 개성에 위치한 박연 폭포에는 한 편의 러브 스토리가 전해집니다. 바로 황진이와 서경덕 사이에 얽힌 신비로운 이야기이지요. 서경덕은 조선의 이름난 학자 중에는 드물게 스승 없이 혼자만의 노력으로 높은 학문의 경지에 오른 인물입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43세의 늦깎이 나이에 1차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조선의 최고 대학 성균관에 입학했지만, 어쩐 일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향인 개성에 돌아와 송악산 자락에 ‘화담’이라는 초막을 짓고 독서에만 열중했습니다.
서경덕의 비범함에 마음이 끌렸던 걸까요? 평소 시와 학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황진이는 몸소 서경덕을 찾아와 가르침을 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황진이는 느닷없이 서경덕에게 물었습니다. “개성에 삼절(세 개의 빼어난 것)이 있는데, 무엇인지 아느냐”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서경덕이 모른다고 답하자, 황진이는 “박연 폭포, 서경덕, 그리고 나”라며 황당무개한 답을 했습니다. 황진이의 대범함에 서경덕은 허허 웃고 말았지요.
그런데 예고했듯이, 이 둘은 평범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황진이가 서경덕을 그리며 남겼다는 시 한 편으로 확인해 볼 수 있지요.
가을바람에 낙엽이 지는 소리를 연인이 오는 발소리로 착각하고 귀를 기울인다는, 더없이 애틋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애절한 내용이 무색하게, 서경덕은 황진이의 유일한 연인이 아니었습니다. 황진이는 여성에게 한없이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서 ‘자유연애’의 상징으로 회고되곤 하지요.
😡내 맘 같지 않은 세상, 그렇다면 싸우자(N)
황진이, 하면 따라오는 수식어는 ‘기생’입니다. 기생은 신분으로 따지면 조선 시대 가장 낮은 계급인 천민이었지만 가무(춤)와 시, 그림 등 교양을 두루 갖춘 예능인이었기 때문에 지식인으로 높은 인정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황진이가 기생의 길을 걷게 된 사연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날 남아 있는 자료로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황진이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나름의 대담한 선택이었다는 이야기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황진이의 어머니는 노비 출신으로 양반가의 둘째 부인이 된 인물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양반가 남성은 정실부인이라고 불리는 첫째 부인 외에도 여러 명의 부인을 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째 부인이 아닌 부인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는 여러 사회적 차별을 받았습니다. 부인의 신분이 양인일 경우에는 서자, 천민일 경우에는 얼자라고 불렀지요.
황진이는 아들도 아니고 딸이었으니, 그에게 허락된 인생의 선택지는 어머니처럼 양반가의 둘째 부인이 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황진이는 온실 속 화초처럼 안정적이지만 갑갑한 생을 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황진이는 의연하게 자신의 운명을 뒤바꿀 선택을 합니다. 차라리 기생이 되어 타고난 예술적 재능을 마음껏 뽐내리라, 결심한 것이지요.
🤷♀️남의 시선 따위 노관심, 내가 알아서 함(T)
황진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스스로가 좋아 택한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당찬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그의 인물됨을 알 수 있는 여러 기록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자존감이 높아 하는 행동과 일마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을 보며 저도 모르게 동경하게 된 적, 없으신가요? 황진이에게는 바로 그런 매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은 흘러가는 대로(P)
황진이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성품뿐 아니라 외모도 빼어났던 황진이에게 당시 여러 남성이 마음을 빼앗겼지요.
속세를 등지고 승려의 길을 택했지만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 버렸다는 지족 선사, 황진이의 매력에 버선발로 뛰쳐나왔다는 개성의 관리 송공, 황진이와 한 달만 함께 지내고 오겠다며 친구들과 내기를 했지만 결국 황진이와 이별하지 못했다는 선비 소세양, 말을 타고 가다가 황진이가 읊은 시 몇 수에 감동해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는 벽계수 등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모두 황진이 본인의 입장에서 쓰이지 않았습니다. 남성의 입장에서만 회고된 이야기는 모두 ‘유혹의 서사’라는 외피를 입고 있지요. 그런데 만약 황진이가 이 이야기를 직접 보았다면,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요? 아마 많이 황당해 하지 않았을까요? 이처럼 당시 조선 사회는 그저 물 흐르듯 자연스레 여러 남성과 연을 맺어온 황진이의 자유연애라는 선택지를 결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황진이는 만나는 인연, 인연마다 항상 진심으로 임해왔습니다. 이는 그의 시를 통해 알 수 있지요.
기나긴 겨울 밤을 이불 속에 감춰 두었다가 연인과 만나는 날 꺼내서 함께하는 시간을 한없이 늘리고 싶다는 바람이 너무도 간절합니다. 이렇듯 황진이의 러브 스토리는 그저 ‘유혹의 서사’로 풀어내기엔 너무도 절절한 면이 있습니다.
조선 사회가 품을 수 없었던 자유로운 영혼, 황진이의 당당한 발자취는 그가 30여 년의 짧은 인생을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황진이는 당시 중국 사람들도 부러워했던 금강산 여행의 소원을 이루고자 높은 관리의 아들이었던 이생원을 동지 삼아 길을 떠나기도 하고, 자신의 음악적 성취를 위해 명창 이사종과 6년 동안 계약 동거를 하는 등 호쾌한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이후 생의 끝에 다다라 병으로 몸져누운 황진이는 “내가 죽으면 슬피 곡을 하지 말고, 내 관을 옮길 때는 음악과 함께할 수 있도록 하라.”는 유언을 전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짧게나마 황진이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많은 이들과 스스럼없이 연을 맺어 온 황진이(E), 엄혹한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꿈을 찾아 기생이라는 천한 신분을 택한 황진이(N),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의연히 제 길을 걸어간 황진이(T), 흘러가는 대로 담담히 주어진 운명을 당차게 살아 낸 황진이(P).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보아 황진이의 MBTI는 ENTP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 대표 이미지는 GPT에게 제 글을 보내주고 생성한 것입니다. 고증에 맞지 않아도 눈감아 주세요 😊어디까지나 재미로 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