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인터뷰 1️⃣: ‘판타스틱 우울백서’ 서귤님 “우리 평균수명까지 늙어서 같이 살아요”

우울증 인터뷰 1️⃣: ‘판타스틱 우울백서’ 서귤님 “우리 평균수명까지 늙어서 같이 살아요”

작성자 뉴닉

데일리 뉴스

우울증 인터뷰 1️⃣: ‘판타스틱 우울백서’ 서귤님 “우리 평균수명까지 늙어서 같이 살아요”

뉴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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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n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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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우울백서' 책 표지 그림.

나의 정신질환 경험에 대하여

서귤 님의 정신질환 경험에 대해 대략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우울삽화*는 꾸준히 있었던 것 같은데요. 2017년 2월부터 정신건강의학과(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어요. 어느날 평범하게 집에 돌아가는 길인데, 정류장에서 버스가 저를 놔두고 가버린 거예요. 누구나 짜증이 날 수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저는 그 순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슬프고 화가 났어요. 주저앉아 엉엉 울면서 ‘내가 보통 상태는 아니구나’ 싶었고요. 내 감정이 일상생활에 불편을 줄 정도라는 판단이 들어서 병원에 가기로 결정했어요. 그렇게 2022년 4월까지 약을 먹다가 단약**하고, 상담은 계속 했는데요. 2023년부터는 PMS(월경전증후군)*** 기간에 특히 우울감이 심해져서 약을 다시 먹고 있어요. 

* 우울삽화: 기분이 가라앉는 등 우울증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를 말해요. 
** 단약: ‘약을 끊는다’는 뜻으로, 주치의와 상담 후 결정해요.
*** 월경전증후군: 월경 전에 반복되는 우울·불안 등 정서적 증상, 통증·소화장애 등 신체적 증상을 말해요.

책에 “우울할 이유가 없으니 우울할 자격도 없다”, “나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왜 우울한 걸까?” 같은 생각으로 고민했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우울증 관련 드라마나 만화, 영화에 나오는 우울증 환자에게는 꼭 무슨 사건이 있어요. 물론 내재적으로 증상을 갖고 있던 사람에게 외부의 충격이 가해질 때 정신질환이 심해지는 건 맞는데요. 충격적인 사건이 꼭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태생적으로 잘 우울해지는 사람도 있어요. 뇌가 스트레스에 취약한 뇌인 거예요. 우울하다고 하면 “너보다 힘든 사람 많아” 라고들 하지만, 그렇게 힘든 상황이 아니어도 힘들다고 느낄 수 있는 거예요. 우울함의 인과관계가 다른 거죠. 

우울감과 우울증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교과서적인 답부터 말하면, ‘지속 기간, 우울함의 정도, 일상생활이 불편한 정도에 따라 다르다’는 거예요. 보통 2주 이상 지속되고, 저처럼 버스가 떠난다고 울어버릴 정도로 일상생활에 불편이 생기면 우울증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기분장애****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죽고 싶지만 떡볶이도 먹고 싶어’라는 책에 나오는 것처럼 기분부전장애라고, 우울증보다 약한 강도의 우울한 상태가 계속되는 경우도 있어요. 일률적으로 ‘이 정도가 우울증이야, 기분장애야’라고 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우울증이란 건 객관적인 기준을 세우기가 쉽지 않아요. 스스로의 판단이 중요해요.

**** 기분장애: 기분 조절을 통제할 수 없는 장애를 말해요. 일반적으로 주요우울장애, 양극성장애, 기분부전증, 기분순환장애 등이 포함돼요.

기분장애에 대해 더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기분장애 중에 대표적인 것이 흔히 우울증이라고 하는 주요우울장애와, 조울증이라고 하는 양극성장애인데요. 주요우울장애는 평균보다 매우 낮은, 매우 우울한 상태가 계속되는 거예요. 반면 양극성장애는 1형과 2형으로 나뉘는데요. 1형은 우울증과 기분이 고양되는 조증 상태가 왔다갔다 하는 거고, 2형은 울증과 약한 조증이 왔다갔다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우울한 상태만 보고서는 내가 주요우울장애인지, 양극성장애 1형인지 2형인지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저도 책에 제 병을 기분장애라고만 썼어요. 그때까지는 기분장애 중에 어떤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었거든요.

내지 컷 일부. "어쩌면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요? 난 비정상이 아니다. 난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그러하듯 그냥 '다른 사람'일 뿐이다." "보라고, 이렇게 평범하지 않냐고." "보통의 존재이지 않냐고."

‘정병’과 ‘정상’이라는 기준

책에 ‘정병(정신병)’이라는 표현에 대한 얘기도 있었어요. ‘정병’이라는 말이 정신질환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고요. 이에 관해 해주실 얘기가 있을까요?

‘약 먹을 시간 지났냐’, ‘병원 가 봐라’를 놀리는 말로 썼던 것처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신병은 희화화의 대상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요즘은 ‘정병’ 같은 말도 함부로 쓰지 않는 분위기가 생긴 것 같아요. ‘암 걸리겠다’ 같은 말도 암환자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이라고 해서 안 쓰는 것처럼요. 누구나 정신질환에 걸릴 수 있고, ‘정병’이 내 친구 얘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도 한몫했다고 봐요. ‘정신병의 나라에서 왔습니다’ 같은 책처럼, 정신질환 당사자가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아졌고요. 

책에는 ‘우울증이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이들이 겪는 질병이 아니라는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는데요. 어떤 뜻인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우울증을 가진 사람이 ‘비정상’이 아니라는 거예요. 더 깊게는 매드 프라이드 운동과도 관련 있어요. 매드 프라이드 운동은 정신질환이나 광기를 ‘이상한 것’, 또는 질병으로만 보지 말고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건데요. 해외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202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퍼지고 있어요. 

물론 어려운 논의예요. 정신질환은 한 사람의 삶이나 그의 사회성을 해칠 수 있는 것이기도 해서, 단순히 ‘정체성’이라는 말로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있거든요. 저도 아직 고민하고 있는 주제예요. 이와 관련해서는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라는 책을 추천해요.

정신과 치료 과정에 대하여

정신과 치료는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는지 대략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처음 방문하면 사람에 따라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진료를 받는데요. 첫 진료는 40분 정도로 비교적 길어요. 그 사람이 정신과에 온 이유, 그 사람의 이야기를 쭉 알아봐야 하니까요. 이후에는 15분 정도로 시간이 짧아지고요. 단약 후에는 상담 위주로 치료를 진행했어요. 진료랑 상담은 달라요. 의사에게 받는 건 진료, 상담심리사에게 받는 건 상담이에요. 그런데 정신과 진료에는 상담의 성격도 섞여 있어요. 요즘 기분은 어떤지, 약 먹고 부작용은 없는지 상태를 체크해주거든요.

참고로 약 부작용은 사람마다 엄청나게 달라요. 변비, 아토피, 식욕이 떨어지거나 반대로 너무 넘치기도 하고요. 저는 맞는 약을 찾느라 처음 6개월 동안은 약의 용량이나 종류가 계속 바뀌었어요. 하지만 기분장애를 만성질환이라고 생각하면, 평생에 걸쳐 관리하는 거니까 6개월이 긴 시간은 아니에요.

정신과에 대해 여러 가지 오해가 있잖아요. 비용이나 기록에 관한 걱정이 대표적일 텐데요. 공유해주실 만한 있는 정보가 있나요?

비용 문제부터 얘기하면, 진료는 첫날이 가장 비싸고 나머지는 생각보다 비싸지 않아요. 첫날의 경우 무슨 검사를 하느냐에 따라 다른데, 15만 원 이상 나오기도 해요. 그 후에는 진료비와 약값이 다 의료보험 적용 대상이라 비싸지 않아요. 저는 2주에 1번 병원을 가면 2만 원 정도 나왔어요. 하지만 상담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거라 1시간에 1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하고요. 상담이 어렵다면 진료 시간을 활용하는 걸 추천해요. 의사와의 15분으로도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어요.

원칙적으로 내 정신과 진료 기록은 아무도 볼 수 없어요. 부모님은 물론, 보험사도, 사기업도, 공기업도 절대 볼 수 없어요. 딱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법원 영장이 나오는 경우예요. 그러니까 범죄를 안 저지르면 상관 없어요. 하지만 보험에 가입할 때나 직장에 들어갈 때 내 건강 상태에 대해 그쪽에서 물어볼 순 있는데요. 보험사에 거짓말을 하면 나중에 보험금 받을 때 불리할 수 있어요. 공무원 결격 사유에는 ‘업무수행에 큰 지장이 있는 정신질환’이 있고요. 하지만 잘 치료받고 있어서 지장이 없다면 여기 해당하지 않아요. 밝히지 않아도 거짓말이 아니고요. 

심지어 이런 것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이라고 보고 시정할 것을 권고했어요. 경중을 가리지 않고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보험 가입을 거부하거나, 채용에서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약은 나를 바닥에서 건져 올려줄 뿐”

진료나 상담 과정에서 기억 나는 순간이나 대화 등이 있나요?

상담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이 기억에 남아요. 약은 바닥에서 건져 올려주는 거지, 그 위로 올라오는 건 스스로 해야 한다는 거예요. 약은 최악의 상태를 막아줄 뿐이고, 결국 인생을 의미 있게 사는 건 제 스스로의 몫이에요. 

이런 대화도 있었어요. 제가 부모님께 정신과 다니는 걸 말할까 말까 고민하던 때였는데요. ‘부모님이 죄책감을 가지거나, 슬퍼할까 봐 걱정된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어요. “누군가 ‘서귤 씨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할 거야’ 단정하면 불쾌하지 않겠어요? 부모님께 어떤 자극이 주어졌을 때 반응하는 건 부모님의 몫이고, 서귤 씨는 그걸 존중해주면 돼요.” 이 말을 듣고 타인의 반응을 내가 멋대로 예상해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후에는 사람들의 반응을 지레짐작해서 나쁜 감정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할 수 있었어요.

고양이 둘이 대화하는 컷. "우린 늘 스스로 칭찬만 하는데." "쟨 아니었대." "늘 자기를 비난하고 공격하기만 했대." "으휴 고구마."

마지막으로, 정신과 방문에 관한 팁이나 정신질환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먼저 약을 먹고 진료만 받고 싶은지, 상담을 병행하고 싶은지 결정하면 좋을 것 같아요. 내 얘기를 할 정도로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면 약 처방 중심으로 진료하는 곳을 찾으면 되고요. 내 얘기를 좀 하고 싶다면 상담과 치료를 병행하는 곳으로 가면 되는데요.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는 책도 있을 만큼 정보가 잘 없긴 해요. 하지만 인터넷에서 병원이나 주치의 측이 쓴 글을 보면 분위기나 시그널이 보여요. 아니면 그냥 병원에 전화해서 물어봐도 되고요. 정신과를 가려고 결심했다면, 이왕 힘을 냈으니까 꼭 끝까지 해보시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저는 감히 이렇게 말해요.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의 최대 업적은 평균수명까지 사는 것”이라고요. 우리는 살아 있는 것만 해도 훌륭한 사람들이에요. 칭찬해 드리고 싶어요. 그러니까 우리, 평균수명까지 늙어서 같이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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