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없이 ‘야생’과 ‘로봇’이  바로 마주 본다면

인간 없이 ‘야생’과 ‘로봇’이 바로 마주 본다면

작성자 주간미래소년

주간 미래소년

인간 없이 ‘야생’과 ‘로봇’이 바로 마주 본다면

주간미래소년
주간미래소년
@futureboy
읽음 1,567
이 뉴니커를 응원하고 싶다면?
앱에서 응원 카드 보내기

영화 와일드 로봇(The Wild Robot, 2024) 리뷰


1. 야생에 불시착한 로봇

야생에 불시착한 로봇이 있다. 문명의 힘이 전혀 미치지 않았던 야생에 로봇은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눈총을 줘도 로봇이 느낄 리 없다. 오히려 로봇은 동물들을 붙잡고 끈질기게 캐묻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무엇인지를.

눈치 없는 로봇에게도 사연은 있다. 임무는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다. 이유를 찾지 못하면 로봇은 존재의미가 없다. 감정 없는 로봇마저 낙심할만한 사정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로봇은 포기를 모른다. 결국 운명 같은 사고를 겪고 자신의 임무를 찾아낸다.

로봇의 임무는 새끼 기러기를 완연한 기러기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새끼를 수천 킬로미터 비행할 수 있는 성체로 만들어야 한다. 추위가 닥치기 전까지.


2. 시련 속에서 찾은 신념

여기에 문제가 있다. 사실, 임무를 찾을게 아니라 돌아가야 한다. 야생을 떠나 자신을 창조한 곳이며 동시에 필요로 하는 곳(문명)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따라서 임무를 수행하려면 결정부터 내려야 한다. 설정된 프로그래밍에 따라 구조신호를 보내고 문명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임무를 위해 복귀 프로그래밍을 수정할지. 로봇은 두 기로에 놓이게 된다.

로봇에게 프로그래밍은 내면의 목소리와 같다. 부딪히고 깨져도 버리지 말고 지켜내야 할 신념이다. 때때로 이 목소리는 내가 아닌 타인이 심어주기도 한다. 누가 심었든 처음 프로그래밍된 명령은 거부하기가 어렵다. 거부는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이미 몸부터 명령에 반응하고 있다.

불시착한 야생은 로봇이 벗어나야 할 시련이다. 그러나 로봇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목적을 찾았으며 주저 없이 완수하려 한다. 시련 속에서 찾은 내면의 목소리는 기존의 신념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 오히려 더 강렬하다. 진흙 속에서 찾은 연꽃이 깨끗하고 맑은 향기를 품은 것처럼.


3. 인간 없이 ‘야생’과 ‘로봇’이 바로 마주 본다면

영화에서 인간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인간을 창조한 야생(자연)’ 그리고 ‘인간이 창조한 로봇’이 만나는 지점에서 탄생한 서사다. 매개자 위치에 있어야 할 인간이 없고, 전혀 다른 세계관 속 개체끼리 마주한다. 마치 친구의 친구를 친구 없이 만나는 자리처럼 어색함마저 느껴진다.

왜 인간은 등장하지 않을까. 어딘가 방해가 된 것일까. 추측컨대, 영화 서사 안에서 인간은 이미 완벽에 가까운 세계를 구현해 냈다. 기후위기·식량문제 등 현실세계가 직면한 온갖 재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자연을 길들이고 기술을 개발하여 마침내 부족함 없는 완전함에 도달했다.

반면 야생과 로봇은 완전함과 거리가 멀다. 야생도 완벽한 생태계가 자생하고 있는 것 같지만 한파·화재처럼 외부의 재난에 취약하다. 로봇도 완벽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명령 없이는 사고하고 행동할 수 없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태생적 한계를 가진 두 세계가 마주하면서 공존의 길을 개척한다.


4. 공존의 가능성

각자의 세계관 속에서 지켜야 할 순리가 극명히 드러나며 갈등의 계기가 된다. 야생의 순리는 방종이고 로봇의 순리는 복종이다. 야생은 임무를 찾아 헤매는 로봇을 이해할 수 없으며, 로봇도 서로 죽이거나 죽도록 내버려 두는 야생을 이해할 수 없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함께 지내야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변화가 생긴다. 야생은 로봇의 임무를 보완해 주고 로봇은 야생을 보호해 준다. 이 과정에서 공존의 가능성을 목도한다. 이미 혼자서 완전한 인간은 필요 없다. 야생과 로봇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면 될 테니.

다리를 다친 로봇이 누군가 두고 간 나무의족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장면이 있다. 관객으로서 마음속에 무언가 꿈틀거림을 느낀 대목이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로봇의 눈 속에도 밝게 빛나는 무언가 보이는 듯했다.


주간 미래소년의 네 번째 콘텐츠였습니다.
꾸준히 발행할 예정이니 관심과 애정을 갖고 팔로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음엔 더욱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오겠습니다.

배너 이미지 출처 : Universail Pictures(UK) - Wild Robot
영상 출처 : Could Use a Bo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