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 스피릿으로 날카롭게 베어낸 혐오사회의 민낯

펑크 스피릿으로 날카롭게 베어낸 혐오사회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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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책수다

펑크 스피릿으로 날카롭게 베어낸 혐오사회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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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_usj73co6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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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은 불편하지만 무지를 없애는 힘이 있다."

혐오와 차별로 얼룩진 지금, 세상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SNS와 뉴스는 갈등과 대립으로 가득하고, 서로 다른 의견은 '옳고 그름'의 이분법으로 단순화됩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냉철한 현실 인식과 함께, 다양성이 만들어내는 갈등을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공존의 가능성을 찾는 지혜가 아닐까요.

브래디 미카코의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는 바로 그런 청량제 같은 책입니다. 날카로운 펑크 정신으로 영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면서도, 아이들의 순수한 지혜를 통해 희망의 단초를 제시합니다.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대신, '엠퍼시(empathy)'라는 지적 상상력으로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알려주는 귀중한 안내서입니다.

작가와의 만남: 반항적 펑크 정신으로 기득권의 가면을 벗기다

브래디 미카코 / 출처: https://www.asahi.com/and/article/20190917/400879629/

일본 후쿠오카 출신의 보육사이자 작가 브래디 미카코. 그녀는 1965년 빈곤 가정에서 태어나 펑크 음악에 심취하며 성장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의 일본계 기업에서 근무하다 보육사 자격증을 취득해 빈민가 탁아소에서 일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죠. 현재는 영국 브라이턴에 거주하며 다문화와 계급 문제를 중심으로 논픽션과 에세이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미카코의 문체는 펑크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직설적이고 유머러스한 스타일입니다. 일본 아사히신문 논설위원 후지오 교코는 그녀를 "썩은 정치를 겨누는 직구와 유머·섬세함을 뒤섞는 변화구를 넘나드는 투수"라고 평가했습니다. 날카로운 비판 속에서도 따뜻한 인간미를 잃지 않는 균형 감각이 그녀 글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책의 배경: 정체성의 스펙트럼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는 일본인 엄마(미카코)와 영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들의 중학교 생활을 중심으로 다문화 사회에서의 정체성, 차별, 다양성, 그리고 성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출처: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980963

책의 제목에서 "옐로"는 동양인(일본), "화이트"는 백인(영국)을 상징하고, "약간 블루"는 정체성 혼란과 불안을 나타냅니다. 이 제목은 단순한 인종적 정체성을 넘어 현대인이 느끼는 소속감과 이방인 의식 사이의 복잡한 감정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전개: 예상치 못한 선택과 마주침

이야기는 명문 가톨릭 초등학교를 졸업한 저자의 아들이 뜻밖에도 '밑바닥 중학교'로 불리던 지역 공립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시작됩니다. 이 학교는 주로 백인 노동자 계급 자녀들이 다니는 곳으로, 계층적 격차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공간입니다.

영국에서는 학교 랭킹이 공개되어 부모들이 이를 기준으로 자녀의 진학을 결정하고, 인기 학교 근처 집값이 상승해 부자와 빈자의 거주지가 분리되는 '소셜 아파르트헤이트' 현상이 발생합니다. 미카코는 아시아계 혼혈인 아들이 백인 학생이 다수인 학교에서 인종차별이나 폭력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현실은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게 전개됩니다.

다양성의 다양한 층위: 단순한 이분법을 넘어서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인종차별이나 다문화 문제를 단순한 이분법으로 접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별은 백인과 유색인종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민자 집단 간에도 발생하며, 경제적 배경, 성적 지향, 가족 구성 등 다양한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백인에게 인종차별을 당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다른 이주민 아이와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처럼 책은 다양성이 단순히 '옳은 것'이 아니라, 불편하고 복잡한 현실임을 솔직하게 보여줍니다.

계급의 민낯: 수영장 풀사이드의 두 세계

미카코는 계급 격차가 일상에서 얼마나 가시적으로 드러나는지 생생하게 포착합니다. 중학교 수영대회 장면에서 수영장 가장자리의 이쪽과 저쪽이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한쪽에는 서민들이 몸을 움츠리고 서 있고, 다른 쪽에는 특권층 아이들이 여유롭게 준비운동을 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계층에 따라 학생들이 분리된 현실을 보여줍니다.

또한 책은 마약 거래를 통한 '부의 재분배' 현상을 언급하며, "밑바닥의 재분배는 피로 얼룩져 있으며, 이 풀뿌리 재분배에서 피를 흘리는 쪽은 항상 가난한 청년과 아이들"이라고 지적합니다. 해안가 클럽에서 마약을 소비하는 중산층 젊은이들은 공영주택지 아이들이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 약을 조달하는지 모른다는 것이죠.

'엠퍼시(Empathy)'의 발견: 다름을 이해하는 지적 능력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개념 중 하나는 '엠퍼시(empathy)'입니다. 저자는 '심퍼시(sympathy)'와 '엠퍼시'를 구분합니다. 심퍼시는 가여운 사람이나 자신과 비슷한 의견을 지닌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인 반면, 엠퍼시는 자신과 이념이나 신념이 다른 사람, 또는 그다지 가엾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을 상상해보는 능력입니다.

출처: https://youtu.be/nHnt-5ZN_Cs?si=6LS64PBFvJDaOsEH

미카코의 아들은 이를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이라고 간단히 설명합니다. EU 탈퇴파와 잔류파, 이주민과 영국인, 계급의 상하, 빈부의 격차, 고령층과 청년층, 이주민 사이의 수많은 층위 등 온갖 분열과 대립이 심각해지는 영국에서 열한 살 아이들이 엠퍼시에 대해 배우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합니다.

아이들의 지혜: 순수함이 주는 통찰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복잡한 사회 문제에 직면한 아이들이 보여주는 뜻밖의 지혜와 용기입니다. 혐오 발언을 일삼는 친구에게 손을 내밀고, 가난한 친구를 자존심 상하지 않게 도우려 애쓰고,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친구에게 "시간을 들여 정하면 된다"고 격려하는 모습은 어른들에게도 큰 용기를 줍니다.

저자의 아들은 생각이 깊고 똑똑하며, 무엇이 불합리한지 알고 엠퍼시가 무엇인지 이해합니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친구에게 단호하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따돌림받는 친구를 보호할 줄도 알고, 잘못된 것을 옳은 방법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이런 성숙한 모습은 사춘기 소년의 평범한 고민과 자연스럽게 공존합니다.

현대 사회의 거울로서의 학교

미카코는 학교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말합니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대립, 이민자에 대한 이중적 태도, 하층 계급을 바라보는 중산층의 차가운 시선이 모두 아이들의 교실 안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책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이미 식상할 대로 식상한 말일지 모르지만, 미래는 저 아이들의 손에 달려 있다. 세상이 퇴행한다든가 세계가 끔찍한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이들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구절은 아이들의 가능성에 대한 저자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정체성의 변화 가능성: 블루에서 그린으로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는 마지막 부분에서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가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그린"으로 변화하는 순간을 묘사합니다. 이는 정체성의 일부는 변하지 않지만 다른 부분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성장하고 있으며, 상대에게 공감할 능력이 있고, 더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책은 인종, 계급, 성적 지향, 국적 등과 상관없이 모든 인간이 동등한 존엄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모두 다른 게 당연하잖아"라는 아이들의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통찰은, 복잡한 사회 문제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브래디 미카코의 다른 작품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가 마음에 들었다면, 브래디 미카코의 다른 작품들도 추천합니다:

  1. 『아이들의 계급투쟁』 - 미카코의 한국 첫 소개작으로, 영국 브라이턴의 최빈곤 지역 무료 탁아소에서 보육사로 일한 경험을 생생하게 기록한 책입니다.

  2.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2』 - '다양성 너머 심오한 세계'라는 부제의 후속작으로, 계속해서 아들의 학교생활과 영국 사회의 다양성 문제를 더 깊이 탐구합니다.

  3. 『양손에 토카레프』 - 미카코의 첫 소설 작품으로, 영국 빈민가에서 가난과 방치 속에 살아가는 소녀 미아와 100년 전 일본에서 부모에게 버림받고 학대당한 가네코 후미코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4.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 - '엠퍼시'라는 개념을 통해 혐오와 분열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작품입니다.

  5. 『꽃을 위한 미래는 없다』 - 미카코의 데뷔작으로, 일본의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영국으로 이주한 후에도 빈민가에서 살아온 저자의 경험이 담긴 책입니다.

    출처: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738205

마치며: 경계인의 시선이 주는 선물

브래디 미카코는 일본과 영국, 상류층과 하류층, 동양과 서양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경계인'으로서의 독특한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치에서 그녀는 양쪽 문화와 사회를 깊이 있게 관찰하고 비교할 수 있는 특권적 시선을 활용합니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는 다문화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냉정하게 관찰하면서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과 가능성을 포착합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다양성을 단순히 찬양하는 대신, 그것이 초래하는 불편함과 갈등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공존의 길을 모색하라고 제안합니다.

미카코는 "불확실한 시대이기에 모두가 올바른 답을 원합니다. 길을 잃거나 잘못된 길을 가거나 길을 벗어나게 될까 두려워하지요... 그러니 이런 시대야말로 '길을 잃어주자' 정도의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말합니다. 이는 기존의 답답한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라는 초대이자, 불완전함과 혼란 속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라는 격려의 메시지입니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그린... 일단 지금은.
색깔은 틀림없이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