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장애 깨부수기(3) 강박의 역이용
작성자 나나
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식이장애 깨부수기(3) 강박의 역이용
사실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누구나 조금씩 강박이 있을 거다. 나에게 병적으로 발현된 ‘식이장애’를 개선하기 위해, 다른 강박을 역이용하기로 했다. 내게는 미친듯이 칼로리를 계산하고, 외우고, 그대로 먹는 강박이 있었다. 하루에 1,000kcal 미만으로 먹기.
이제 그게 말이 안 되는 걸 아니까, 조금씩 바꿔보기로 했다. 바로 1,000kcal 이상으로 갈 순 없었다. 어차피 내가 칼로리를 계산하는 강박이 있다면, 이걸 역이용해서 일정 칼로리 이상은 무조건 먹도록 계산했다.
내게 거식은 흔히 혼자 모든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날 일어났다. 그래서 그런 날에는 1,000kcal 미만으로 먹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아예 안 먹거나, 식빵 한 쪽만 먹는 정도로 살아갔다. 그래서 그런 날은 무조건 하루에 500kcal 이상 먹기로 결정했다. 이것조차 내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건강에는 안 좋을 수도 있지만, 일부러 칼로리가 표시된 완제품 위주로만 먹었다. 감자 한 알, 소스 #g 등을 계산하면 더 밑도 끝도 없으니까. 편의점에서 파는 빵이든 과자든, 무조건 칼로리가 표시된 걸로 먹었다.
사실 이것도 내게는 어려웠다. 500kcal에 가까우니까라는 핑계로 496kcal 정도만 먹는 날도 많았다. 특히 칼로리를 외우니까, 일정한 메뉴를 정해놓고 그렇게만 먹었다. 거의 편의점 과자나 빵이었다. 양도 적고, 건강에도 안 좋았다.
그치만 진짜 웃기게도, 이게 예전에 비해서는 몇 배나 많이 먹는 거였다. 건강이고 뭐고, ‘안 먹는 습관’을 ‘먹는 습관’으로 바꾼 것 자체가 내게는 큰 일이었다.
사실 병원이나 상담에 가면 건강하게 나아지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지만, 나는 심리적인 거부감 없이,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나아지는 게 필요했다. 강박이 있다면 그 강박을 역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어차피 칼로리를 계산한다면 그냥 내 규칙을 정하고, 조금이라도 먹는 것. 당장은 안 좋을 수 있지만 내게는 너무나 컸다. 특히 나는 내가 정한 규칙은 꼭 지키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내게는 딱 맞는 극복 방식이었다. ‘이거 먹으면 살 찌는 거 아니야?’ 생각하면서도 내가 정한 규칙이니까. 남들이 보기엔 이상해 보여도 그게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됐다.
단기적으로 이상하건, 건강하지 않건 뭐든 상관 없었다. 기본값이 ‘안 먹음’에서 ‘먹음’으로 바뀐 게 중요했다. 그걸 위해선 뭐든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