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장애 깨부수기(1) 내가 식이장애임을 인정하기

식이장애 깨부수기(1) 내가 식이장애임을 인정하기

작성자 나나

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식이장애 깨부수기(1) 내가 식이장애임을 인정하기

나나
나나
@naneunn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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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도 1년 전의 내 모습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될 정도로 많이 달라졌다. 몸무게도 그렇고, 먹는 것도, 운동도 그렇다. 누군가는 식이장애는 완치가 없는 병이라고도 했다. 재발률도 높다. 결국 식이장애를 어떻게 잘 관리하면서 살아갈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과거의 나를 위해,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그냥 나는 어떻게 관리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공유해 보려 한다. 이건 정답도 아니다.

사실 나는 ‘극복할 수 있다’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되도록이면 많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극복하는데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그러니 본격적으로 내 치료기를 공유하기 전에, 이건 정답이 아니며, 대신 누구든 이 식이장애를 슬기롭게 관리할 수 있다는 응원의 말을 보내며 글을 시작한다.

가장 도움이 되는 건 결국 주변에 이야기하는 거였다. 물론 내 마음이 허락하는 사람들에게만 하면 된다. 이건 크게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 번째는 내가 가진 식이장애를 ‘인정한다’는 거고, 두 번째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거다.

사실 이 ‘인정한다’가 제일 중요하다. 나는 내가 식이장애인 걸 인정하기 힘들었다. ‘이렇게 해도 토는 안 하니까 식이장애 아니겠지’, ‘소식좌도 많으니까 나도 그냥 적게 먹는 거지’, ‘남들도 운동 열심히 하는데, 나 정도 하는 사람 있으니까 괜찮겠지’ 등등, 많은 핑계가 있었다. 나는 원래 엄청 잘 먹는다. 운동은 건강 때문에 해야 되는 건 맞지만, 몸이 아파도, 다리가 망가져서 버피(쪼그려 앉은 상태에서 발을 뒤로 뻗어 점프하는 것)를 못해 바닥에 자꾸 넘어져도 운동을 했다. 사람들마다 식사량도, 운동량도 다르고, 절대적으로 뭐가 좋다 나쁘다도 없다. 결국 식이장애는 이게 ‘강박적’으로 나타날 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강박’을 판단하는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가장 큰 기준은 ‘말이 길어지는가?’다. 이게 뭐냐면, ‘XX니까 괜찮겠지’ 등등 본인의 행동에 자꾸 합리화를 하게 된다는 거다. ‘만보기 채우려고 짠테크하려고 걷는 거니까’, ‘남들도 운동 많이 하니까’, ‘건강하려면 샐러드 먹는 게 좋으니까’, ‘저탄고지 많이들 하니까’ 등등… 근데 이렇게 자꾸 이유를 만들고 말을 붙인다는 건 본인 기준에 말이 안 된다는 거다. 또, 이 말들 앞에는 중요한 본인의 속 마음이 숨겨져 있다. ‘다리 아프고, 안 걷고 싶다. 그치만 만보기 채우려고 짠테크하려고 걷는 거니까 걷는 거다.’ ‘사실 고기도, 라면도 먹고 싶은데.. 그치만 건강하려면 샐러드 먹는 게 좋으니까’ 등등. 물론 이거 다 맞는 말이긴 한데, 자꾸 이유를 붙이게 된다는 건, 비정상적으로 본인의 행동을 정당화할 만한 이유와 말들을 만들어 낸다는 건 강박이다. 어차피 샐러드밖에 못 먹으면서 ‘소화가 안 되니까’, 어차피 어떤 상황이어도 운동할 거면서 ‘날씨가 좋으니까’ 등, 해야 되는데 이유만 자꾸 찾는 건 강박일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나는,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은 그랬다.

그래서 인정이 중요하다. 나도 은정이와 대화하며, 상담을 시작하며 내가 식이장애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면 식이장애에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고, 강박도 조금씩이나마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내가 식이장애임을 외면하고, 운동과 식사에 대해 내 강박을 정당화할 수 있는 사유를 찾았다면, 이제는 내가 강박인 걸 아니까 최대한 그런 합리화를 줄일 수 있다. 식이장애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꾸 이유를 찾게 되는데, 인정하고 나면 이유를 찾다가도 한 발 물러나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인정한다는 건 객관성을 되찾아간다는 거다.

이렇게 내 식이장애를 인정하고,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내가 폭식하려고 할 때 말려준 친구 등등.. 그리고 꼭 이런 직접적인 도움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일단 응원을 해준다. 그 응원 자체가 도움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해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 마음 자체가 내 식이장애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 

엄청 직접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 사실 나에게는 식사량이라는 게 너무 어려웠다. 식사량이 어려워서 사람들을 보니, 체구가 비슷한 사람들도 먹는 양이 전부 달랐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게, 나는 그 사람들의 수많은 끼니 중 한 끼만 보기 때문이다. 그 전 끼니를 많이 먹어서 배가 안 고픈 때도 있을 수 있고, 며칠간 업무 때문에 바빠서 제대로 식사하는 게 오랜만일 수도 있다. 나와 함께하는 한 끼니가 그 사람의 평균 식사량이 아닐 수도 있는 거다. 그럼 나는 어떻게 먹어야 하지? 고민했을 때 한 친구는 본인이 생각하는 적정 식사량을 알려 주고, 식단 관리를 위해 본인이 짰던 식단표를 나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그 식단대로 먹진 않았지만, 충분히 참고할 수 있었고 내게 힘이 됐다.

사실은 그 친구의 그 따뜻한 마음이 도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