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하니까 디저트 좀 먹겠습니다
작성자 나나
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살아야 하니까 디저트 좀 먹겠습니다
지금은 해결됐지만, 고민되는 건 또 있었다. 생각해보면 식사로 이렇게까지 고민을 할 필욘 없을 것 같은데, 식이장애 환자의 최대 관심사는 식사니까. 애초에 상담 선생님은 내가 먹을 걸 너무 좋아해서 식이장애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식이장애 환자는 하루 종일 먹을 것만 생각한다는 거다. 맞다.
낫는 과정에서 했던 중요한 고민은, ‘먹고 싶은 거 많이 먹어라’와 ‘건강하게 먹어라’ 사이였다. 상담선생님은 당연히 건강하게 먹으라고 했다. 탄단지 고루고루 먹고, 내가 당 섭취가 너무 많으니 줄이라고 했다. 케이크 이런 거 그만 먹으랬다. 정신과도 짧게 다녔는데, 정신과 선생님은 큰 코멘트가 없었다. 사실 정신과 선생님은 애초에 동네 정신과를 다닐 게 아니라, 내 몸은 대학병원 가서 협진해야 되는 상태랬다. 그래서 약도 쓸 수 없댔으니, 식사에 대해서도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지켜봐줄 뿐이었다. 어쨌든, 사실 그럼 상담 선생님 말을 들으면 되는데, 뭔가 힘들게 뺀 살을 건강한 맛으로만 찌우기 싫었다. 내가 좋아하는 빵과 케이크나 실컷 먹고 찌우면 덜 억울할 것 같았다. 인터넷을 찾아 보면 생각보다 이런 식이장애 얘기가 좀 있다. 엽떡이 땡기면 엽떡 먹어라, 그게 네 몸에 필요하다는 뜻이다 등등. 원하는 대로 먹어야지 제어하면 안 된다는 거다.
사실 무슨 말이 맞는진 모르겠다. 이론적으로는 건강하게 먹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사실 식이장애 환자의 입장에서, 그게 참 어렵다. 음식을 먹는 것도 어려운데, 뭔가 효용이 없다고 생각하면 더 먹기가 싫었다. 좋아하는 거라도 먹고 싶었다. 이런 고민을 얘기하면 주변은 거의 반반으로 갈렸다. 그래도 건강하게 먹어야 한다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네 몸 상태가 이런데 뭐라도 먹어야되지 않겠냐는 사람들. 정답은 모르겠지만 나는 후자를 택했다. 애초에 후자를 원하고, 답은 정해져 있고, 후자의 답을 원하며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디저트 집착은 시작됐다. 밥을 먹으면 무조건 디저트를 먹었다. 케이크나 빵을 무조건 2개씩 시켰다. 밥을 배부르게 먹어도 그렇게 먹어야 했다. 아예 밥 대신 디저트를 먹는 경우도 많았다. 디저트를 못 먹으면 억울했고, 남편과 밥을 먹으면 남편이 밥을 너무 잘 먹어 디저트를 못 먹을까봐 불안해 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 덕에 살은 잘 쪘다. 조금씩 조금씩 무게가 올랐다. 그래도 30kg 중반대까지 올라오고, 결국 디저트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하고는 3주만에 6kg가 찌기도 했고, 디저트 덕에 최종적으로는 최저 무게를 기준으로 16kg를 찌웠다. 솔직히 디저트를 너무 먹으니 피부가 좀 안 좋아지기도 하고, 몸이 무겁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후회가 없다. 디저트가 없었으면 나는 죽었을지도?
아마 식이장애 때문에 나랑 비슷한 식단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냥 먹고 싶은 거 맘껏 먹는 것도 괜찮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탄단지, 야채 중요한데.. 일단 식이장애는 뭐라도 먹어야 살 거 아니에요…? 그래야 생존하니까. 당뇨가 걸려도, 일단 살아야 될 거 아니에요?
디저트는 집착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나한테는 생존 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