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접시가 없으면 밥 못 먹는 사람
작성자 나나
나는 식이장애 환자(였)다
앞접시가 없으면 밥 못 먹는 사람
식이장애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되게 여러 가지 정보를 찾아봤다. 병원을 가면 제일 좋았겠지만, 나는 병원에 간다는 게 두려웠다. 앞서 말했듯이 뭔가 돈을 쓰기 싫기도 했다. 대부분 병원에 가면 링거 같은 걸로 긴급하게 영양을 공급한다고 했는데, 나는 그 와중에도 먹을 것에 대한 집착(?) 때문에 내가 먹고 싶은 거 맘껏 먹어서 살을 찌우고 싶었다. 물론 뭐, 초반에는 잘 먹진 못했지만.
상담 선생님은 건강하게 삼시세끼 챙겨 먹으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식이장애 치료를 할 때 하루 세 끼에 간식 두 번 먹는 걸 권장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의 식사 감을 찾아간다고. 나는 사실 원래도 아침을 안 먹었는데, 그럼 끼니 수가 늘어나는 건가 걱정도 했다. 또, 나는 배가 고프다가 안 고프다가 했다. 부르다가 안 부르다가 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배고픔과 배부름의 감각을 잊었다. 베트남 여행을 가서 조식을 먹었을 때, 분명 먹고 나서는 배가 불렀다. 엄청 불렀다. 근데 그러고 15분 걸으니까 배가 엄청 고파서 슬펐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좀 지나니 다시 포만감이 밀려왔다. 뭔가 싶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너무 오랫동안 잘 먹지 않아서 배고픔과 배부름의 감각을 잃었고, 그게 지극히 당연한 거라 했다.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웠다. 배고픈 건 괜찮고, 익숙하긴 했다. 그치만 내가 배고플 만큼 적게 먹지 않았는데 배고프다고 착각해서 더 먹을까봐 무서웠다. 나의 배부름만 믿었다. 그러다 보니 적게 먹게 됐다. 이걸 이겨 내기 위해서 나는 식사를 할 때 앞접시를 썼다. 남편과 밥을 먹을 때, 남편과 내 몸무게가 거의 2배 차이났는데, 사실 살을 찌우려면 더 먹어야 맞지만 그게 일단 무서웠고, 배고픔과 적정 배부름의 감이라도 찾기 위해 식사량을 정확히 2:1로 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그 비율도 이상하지만, 그 전엔 아무 것도 먹지 않던 데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고기가 있으면 2덩이를 남편에게 덜고, 1덩이를 나에게 던다. 이 과정을 쭉 반복한다. 야채나 파스타 등도 마찬가지다. 사실 2:1 조금 넘게 남편에게 줬다. 무서웠다. 그래도 그나마 이렇게라도 먹게 된 게 다행이었다. 이 전에는 그냥 한 조각만, 한 입만 먹었으니까. 조금 많이 이상하지만 그래도 나아져갔다. 이제는 2:1까지는 아니고, 적절한 비율로 잘 나눠 먹는다. 그치만 여전히 앞접시가 없으면 밥을 못 먹는다. 언제 앞접시 없이 밥을 먹을 수 있을까?
남들이랑 먹을 때도 이러지는 않는다. 대신 눈치를 봤다. 나랑 제일 키가 비슷한 사람이 얼마 정도 먹는지 본다. 그럼 따라 먹는다. 근데 사실 이러고 나면 식사가 되게 불만족스럽다. 음식이 아니라 ‘양’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남들이랑 먹을 때는 이제 그렇게까지 눈치 보진 않는다. 오히려 남편이랑 있을 때는 통제가 된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앞접시를 못 떼는 것 같다. 앞접시 덕에 밥을 먹기 시작했지만, 앞접시가 이렇게 또 발목을 잡는다. 그치만 당장 이걸 떼기는 무섭다. 앞접시는 목발 같은 거다. 목발이 있어야 걸을 수 있는데, 이젠 뗄 때도 됐다. 근데 아직은 무서운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