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너머 창밖으로,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커튼 너머 창밖으로,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작성자 감자칩

감자칩의 겸사겸사

커튼 너머 창밖으로,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감자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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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yxxxyxxx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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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 밀러는 자신에게 찾아온 혼돈에 흔들리고 있을 때 생물학자인 데이비드를 알게 됩니다. 그는 데이비드가 끈질김 혹은 계속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데이비드의 생애와 업적을 파헤칩니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지도를 그리고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에 마음을 씁니다. 시간이 흘러서는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어떤 지위로 정해져 있는지 탐구하기 위해 생물들의 배를 갈라 그 안쪽을, 신이 숨겨두었을 어떤 메시지를 찾으려 애씁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은 지진으로 인해 모두 박살 나고 맙니다. 자신이 발견하고 이름 지었던 것들이 실험실 바닥에 이름을 잃은 채, 유리 파편과 에탄올에 뒤섞여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데이비드는 좌절하지 않고 바늘과 실을 들고 자신의 표본 살갗에 곧바로 이름표를 꿰맵니다. 그리고 이를 보관하기 위한 새 에탄올이 올 때까지, 실험실이 마르지 않도록 계속해서 물을 뿌립니다. 이러한 파괴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는 이후에 더 많은 표본을 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모습은 마치 열정적이고 주저하지 않는 긍정적인 과학자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데이비드는 자신을 학장으로 만들어 준 제인 스탠퍼드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인류의 지배자 인종을 선별하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의 집단을 말살시키는 우생학을 옹호합니다.

하지만 1980년대 분류학자들은 생물의 범주로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정의합니다. 분류학자들이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정의를 내리기까지, 데이비드가 직접 수집하고 이름을 지었던 수 많은 물고기들을 살폈을 것입니다. 데이비드 스스로 물고기를 없애버린 것입니다.

저자인 룰루 밀러는 자신의 곱슬머리 연인에게 해변에서 만났던 금발 소녀와의 일에 대해 말합니다. 이후 연인과 헤어지지만 저자는 자신이 더 뉘우친다면 그가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몇 년 동안 편지를 쓰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이런 자신의 상황과 데이비드의 상황을 비교합니다. 결코 승리하지 못할 거라는 그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로 하여금 혼돈을 향해 바늘을 찔러 넣도록 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안다면 자신의 연인이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저자는 데이비드의 생애와 업적을 따라가지만 그는 저자가 바라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성도 도덕도 무시하고 타인의 아우성을 무시해 버린 악당이었습니다. 이후 저자는 데이비드에 대한 탐구를 멈추고 머물던 친구의 아파트를 떠납니다. 그리고 몇 달 뒤 한 여자를 만납니다. 자신의 '짝'의 기준에는 맞지 않았지만 그 여자에게 키스를 하고 그가 없는 인생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데이비드는 ‘물고기’라는 커튼으로, 저자는 ‘타인에게서 자신의 혼돈을 타계할 방법’이라는 커튼을 치고 진실의 햇볕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커튼은 결국 걷어지고 맙니다. 데이비드의 커튼은 이후의 분류학자들에 의해, 저자의 커튼은 공원에서 만난 붕붕거리는 생명체들에 의해. 그렇게 걷어진 커튼 너머엔 이전엔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이 있었습니다.

위의 두 인간처럼 저 역시 많은 커튼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장 최근에 없어진 커튼은 바로 동물에 관한 것입니다. 동물 보호소에 청소를 하게 되며 케이지에 갇힌 강아지들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습니다. 직접 만지거나 말을 거는 경우도 없이 그저 배변판 닦고 밥그릇과 물그릇을 닦는 일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제가 몰랐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강아지 한 마리 한 마리마다 표정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춥고 좁은 그 케이지 안에서도 제가 가까이 가면 뭐가 그리 좋은지 꼬리를 흔드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저를 피해 구석으로 몸을 숨기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제가 치고 있던 커튼을 걷고 창밖을 보자 그 친구들이 가진 눈과 귀, 코와 혓바닥으로 드러내 보이는 표정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개가 다 똑같다고, 잘 구별하지도 못했던 저였지만 언젠가부터 그 친구들의 다양한 표정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 친구들도 깨끗하고 따뜻하고 폭신한 것을 좋아하고 더럽고 큰소리를 싫어하고 고통을 느낀다는 것도 함께 알게 되었습니다. 십 년 넘게 고기를 먹던 저였지만 현재는 고기도 잘 먹지 않게 되었고 비인간 동물들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저의 커튼을 하나 없애고 나니 또 다른 커튼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제가 어둠 속에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너무나 당연하게 치고 있을 커튼에 대해. 그리고 그 커튼을 제거하고 창문 밖의 풍경을, 또 다른 밝은 햇살을 마주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도덕적, 정신적 상태에 관한 여러 척도들을 의심하며 더 열린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약간의 긍정적 환상과 희망과 절망의 혼돈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단어들을 신중하게 다룰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