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과 부재, 그리고 불가피한 공백으로의 틈입, 손보미의 <사랑의 꿈>

결핍과 부재, 그리고 불가피한 공백으로의 틈입, 손보미의 <사랑의 꿈>

작성자 감자칩

감자칩의 겸사겸사

결핍과 부재, 그리고 불가피한 공백으로의 틈입, 손보미의 <사랑의 꿈>

감자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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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yxxxyxxx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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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소설의 제목이자 같은 제목을 가진 리스트의 <사랑의 꿈>을 자주 들었습니다. 제목은 조금 생소했지만 곡을 들으니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인지 책을 읽을 때 외에도 출퇴근길 내내 반복해서 재생하게 되는 곡이었습니다. 곡은 따뜻한 온기를 발산하다가도 어느 때는 묵직한 외로움으로 저를 압도했습니다.

6개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화자들은 기존 가족 구조의 변화를 겪습니다. 부모의 이혼과 또 다른 결혼, 그리고 죽음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 구조의 종말임과 동시에 새로운 구조의 시작입니다. 이런 시작을 형성하는 인물은 남아 있던 가족 구성원 또는 그 구성원 밖에 존재하는 인물입니다. 갈 때마다 주스를 따라주는 ‘정신 나간 여자’, 밥을 먹으라는 메모를 남긴 ‘새엄마’, 함께 고양이를 묻는 ‘공주연’, 난봉꾼으로 불리는 ‘외삼촌’, 헤어진 여자 친구에 대해 말하는 ‘과외 선생님’, 보이지 않는 줄로 화자를 조종하는 ‘중학생 언니’. 이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화자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 화자들은 과거의 종결된 관계와 미래에 새로 시작될 관계 사이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두 거대한 관계이자 변화 중 어느 한 곳으로 향하거나 머물지 못하고 둘 사이의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자 두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결핍과 부재입니다. 비슷한 듯 한 두 단어지만 조금은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핍은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란다는 뜻이고 부재는 그곳에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화자에게는 가족, 넓게는 인간관계에서의 결핍이 존재합니다. 이는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부재는 조금 다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에, 목적에 대한 정의보다는 '있지 않다'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그냥 그곳에 없는 것. 이것을 부재라고 한다면 소설 속 화자들에게 (있어야 하진 않지만)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쩌면 결핍에 대한 해소, 해결책에 대한 부재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결핍에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물들이 이런 결핍을 대하는 방식은 거짓말 혹은 회피입니다. 이혼한 자신의 부모를 죽었다고 말하고 자신이 쓴 불이 아닌 다른 불에 대해 말하고 아이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숨기고 턱남에게 피어오르는 자신의 마음을 애써 부정하며 잃어버린 연필에 대해 말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거짓말과 회피는 안타깝게도 힘을 쓰지 못합니다. 순간적 임기응변으로는 적당하지만 그 이상의 효과 혹은 해결책으로는 부족합니다.

거짓말로 결핍을 맞서던 인물들은 거짓말의 무용에 대해 깨닫고 회피와 거짓말이 아닌 수용의 방식으로 부재를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수용은 어쩌면 무기력해 보이고 극적인 효과도 없는, 어쩌면 시시해 보이기도 합니다.

<사랑의 꿈>의 화자는 다른 소설들의 화자와 달리 아이를 둔 성인 여성입니다. 성인인 화자는 자신의 선택으로 또 다른 가족, 혹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존재입니다. 청소년인 다른 화자들보다 선택권과 기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인에게도 쉽지 않습니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고 타인과 가족을 이뤄 아이를 낳은 후에도 결핍과 부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화자는 리스트의 사랑의 꿈을 듣다가 외투를 챙겨 밖으로 나갑니다. 닫힌 문밖으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차로 향합니다. 거짓말로 자신의 결핍을 방어하던 화자는 스스로 그 방어를 포기합니다. 사실 임신을 했기 때문에 결혼을 한 것이라고 진실을 고백합니다. 이후 화자는 아이로부터 도망치려 하지만 이 역시 실패하고 맙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화자는 별다른 행동 없이 그저 샤워를 하고 잠이 들 준비를 합니다. 다가올 내일을, 변함없는 미래를 수용하는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이러한 수용은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이 시시하고 극적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우리의 시시하고도 사소하며 자잘한 하루하루, 그런 날들이 반복되는 인생에 대한 은유 같기도 합니다.

결핍은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없는 것이지만 부재는 그냥 없는 것입니다. 부재하는 대상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부재를 수용하는 것 역시 당연한 모습이자 유한한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방식입니다.

리스트의 사랑의 꿈에는 고요가 있습니다. 음표와 음표 사이에서 비롯된 공의 상태임과 동시에 곡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볼륨을 올려도 그 고요, 공백으로 다른 소리가 틈입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소리나 지나가는 차 소리, 또 다른 음악 소리 같은 것들. 그렇게 음표와 음표 사이에 틈입 된 소리는 제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인지하게 해줍니다. 길거리, 지하철, 식당 같은 곳에서 앉거나 서서 혹은 무언가를 먹으며 음악을 듣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합니다. 이러한 자각의 발생은 음표 사이에 또 다른 틈입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마음과 감정입니다. 청자를 둘러싼 환경과 청자의 감정이 음표와 음표 사이로 들어가게 되고 이는 곡이 주는 감상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곡을 들으며 따뜻한 온기를 느끼다가도 언젠가는 묵직한 외로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런 저와 달리 <사랑의 꿈>의 화자는 도대체 어떤 감정을 가지고 곡을 들었기에 아이로부터 도망치고자 했을까요? 누군가에겐 따스함과 외로움을, 누군가에겐 도망침과 회피의 촉발을 불러일으키는 이 곡의 스펙트럼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도 어쩌면 듣는 이의 마음가짐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지에 대한 태도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청취의 행위, 음표와 음표, 흑건과 백건 사이의 공백에 자신을 채워 넣는 행위는 독서와도 닮아 있습니다. 하얀 종이 위에 검은 잉크로 인쇄된 글을 읽는 독서 역시 리스트의 곡처럼 불가피한 공백이 존재합니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 이 공백 사이로 책을 읽는 독자 개별의 마음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문자 사이에 틈입하게 됩니다 같은 책을 읽고도 감상이 다르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부분이 다른 것은 어쩌면, 각자가 가진 다양한 마음이 틈입할 수밖에 없는 독서라는 행위의 특별함이 아닐까요. 또한 이렇게 서로 다른 감상을 공유하는 과정은 어쩌면 책을 이해하는 것과 동시에 문장과 문장 사이에 스며있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과정이 아닐까요.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