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역사상 최고의 단편 영화
작성자 더셀룰로이드
시네마의 미학
영화 역사상 최고의 단편 영화
크리스 마커의 1962년작 <방파제>는 28분의 러닝타임을 지닌 프랑스의 단편 영화이다. <방파제>는 파리의 오를리 공항에서 시작된다. 이 장면은 겉보기에는 흔한 영화의 도입부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정지된 사진 위로 서서히 줌아웃되는 시각적 착시 효과를 사용하고 있다. 이 영화는 "포토-로망(photo-roman)"이라는 자막과 함께 자신을 영화가 아닌 사진 소설로 소개한다. 이는 1950-60년대 유럽 잡지에서 유행하던 일종의 사진 연재물을 연상시키며, <방파제>는 정지된 이미지를 활용하여 영화와 사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두 매체 간의 밀접한 관계를 탐구한다.
영화의 서사는 전후 세계에서 시간과 기억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오를리 공항에서 목격한 강렬한 기억으로 인해 시간 여행 실험에 참가하게 된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그의 여정은 꿈속을 헤매는 듯한 초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커는 이 여정을 정지된 이미지들의 연속으로 표현함으로써, 영화가 본질적으로 정지된 이미지들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관객은 평소 영화가 연속된 움직임으로 구성된다고 인식하지만, <방파제>는 그 속에 숨겨진 '정지'의 순간들을 드러내며 영화적 장치의 본질을 인식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를 처음 접한 순간, 당신은 말하자면 영화가 아닌 '슬라이드 쇼'를 보고있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방파제>는 그 자체로 영화적 환영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정지된 이미지, 나레이션, 음악, 그리고 몽타주 기법을 통해 관객을 서사 속으로 끌어들이면서도, 동시에 영화가 가진 환영성을 자각하게 만든다. 영화는 관객에게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과거와 미래,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문다.
'미래를 기억한다'라는 문장, 상당히 역설적이다. <방파제>의 핵심이다. 우리는 과거의 기억에 의해 형성되지만, 동시에 미래의 가능성에 의해 동기화된다. 그러나 만약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고, 그 기억이 현재에 각인된다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 존재인가.
<방파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 바로 주인공과 여인이 박물관을 방문하는 장면이다. 이곳에는 박제된 동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이들은 마치 시간 속에 정지된 존재들처럼 보인다. 이 장면은 인간과 동물이 모두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고정된 상태에 놓여 있음을 상징한다. 살아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 시간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서 모든 존재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환기시키는 순간.
크리스 마커는 이 짧은 영화 안에 시간과 존재, 그리고 매체의 가능성에 대한 모든 질문을 담아냈다. <방파제>는, 어쩌면 영화 역사상 잊히지 않을, 가장 독창적인 단편 영화이자 예술적 실험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