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에이터2>: 리들리 스콧과 전쟁 영화론

<글래디에이터2>: 리들리 스콧과 전쟁 영화론

작성자 더셀룰로이드

시네마의 미학

<글래디에이터2>: 리들리 스콧과 전쟁 영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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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셀룰로이드 4호

<글래디에이터 2> 특집: 리들리 스콧의 전쟁 영화론

Are you not entertained?

근 25년 전을 기억하시는가.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는 20세기 마지막 해에 개봉하여 할리우드 과거의 전통에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한 도전적인 야심을 품어낸 작품이었다. 현대적 디지털 효과와 고전적 촬영 기법을 융합함으로써 이룩한 그 장대한 스펙터클은 상업적 성공을 넘어 진정한 문화적 지배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고전 멜로드라마의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웅장한 서사를 펼쳐냈고, 무엇보다도 러셀 크로우의 진정성 넘치는 스타성 있는 연기가 이 작품을 받쳐주었다. 크로우가 연기한 맥시무스는 거칠면서도 영혼을 지닌 전사로, 그의 존재 없이는 <글래디에이터>가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글래디에이터>는 정치적 깊이나 역사적 정확성, 심지어는 시각적 화려함에서도 부족한 면이 있을 수 있지만, 군중을 매료시키는 진정한 오락물로서의 가치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그 전통적 드라마적 원칙에 헌신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2024년, 리들리 스콧은 <글래디에이터2>를 통해 다시 고대 로마로 돌아왔다.


리들리 스콧의 영화적 작업은 많은 면에서 스펙터클과 내면성 간의 지속적인 변증법적 대화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두 요소 간의 긴장은 특히 스케일이 큰 '대규모 전쟁 영화'에서 절정에 달하며, 그는 전쟁의 웅장함과 인간 정신의 섬세한 나약함을 모두 다루고 있다. 비주얼 스타일리스트로서의 그의 상당한 명성이 앞서 알려져 있지만, 스콧의 전쟁 영화는 그의 필모그래피 내에서 독특한 하위 집합을 형성하며 기술적 역량, 역사적 재현, 그리고 깊은 인문적 철학적 탐구 간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낸다.

그의 전쟁 영화 주요 작품들, 즉 <글래디에이터 (2000)>, <킹덤 오브 헤븐 (2005)>, 그리고 <블랙 호크 다운 (2001)>을 상세히 분석함으로써, 스콧이 전쟁의 시각적 언어를 권력, 도덕성, 그리고 순환적 허무함에 대한 세밀하고 때로는 논쟁적인 명상과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다.

리들리 스콧과 전쟁 영화

역사적 스펙터클 - 진정성 역설

리들리 스콧의 전쟁 영화는 종종 역사적 진정성과 영화적 스펙터클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는다. 이를테면 <글래디에이터>는 '로마의 신화'라는 개념을 다루며, 고대의 미학과 현대 관객이 요구하는 감정적 즉시성을 모두 이끌어내기 위해 준-역사적 내러티브 구조를 사용한다. 유명한 "즐겁지 않습니까? - Are you not entertained?" 장면은 스콧의 영화 자체가 스펙터클을 추구하는 본성을 메타적으로 언급하며, 동시에 로마 문화에 대한 논평을 제공한다. 검투사 전투라는 모티프 자체가 고대와 현대의 관객들이 폭력의 장면에서 추구하는 본능적 스릴을 문자 그대로와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인간이 지속적으로 스펙터클적 카타르시스를 갈망하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스펙터클에 대한 헌신에도 불구하고, 스콧의 영화는 인간적 요소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킹덤 오브 헤븐>의 경우, 역사적 재현은 철저히 연구되었지만 교조적인 정확성의 제약에서 벗어나 더 넓은 윤리적 주제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이 맥락에서 "네오-중세주의"의 개념을 떠올리게 된다. 중세 역사는 현대적 소비를 위해 재구성되며, 고대 세계를 묘사하는 동시에 현대의 가치를 반영한다. 광대한 십자군의 군대와 거대한 공성탑의 건설을 담은 장대한 파노라마 샷은 주인공 발리앙의 개인적인 성찰과 대조된다. 그의 동기는 구원, 이상주의, 그리고 십자군 전쟁의 역사적 맥락에 내재된 가혹한 도덕적 모호성 사이에서 흔들린다. 따라서 스콧의 이러한 역사적 재료의 다루기는 내러티브적 유희를 넘어선다. 그것은 포스트모던 관객의 인식론적 필요와 더 잘 맞는 고도로 매개된 역사를 구성하며, 실증주의적 사실 전달과는 거리가 멀다.

스콧의 전쟁 영화에서 역사적 진정성의 개념 자체는 더 깊은 검토를 요구한다. <글래디에이터>에서 스콧은 로마 제국을 낭만화하는 동시에 그 도덕적 부패를 비판하는 내러티브를 사용한다. 이러한 이중성은 역사적 이야기의 구성된 본질을 말해주며, 과거가 현재의 이데올로기적 성향을 반영하도록 끊임없이 재해석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스콧의 로마는 웅장함과 타락의 장소로, 객관적인 역사적 재현의 가능성을 의문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블랙 코미디적 주제의식의 맥락은, 이번 <글래디에이터 2>에서도 여전히, 어쩌면 더욱 크게 발현된다.

<킹덤 오브 헤븐>에서는 진정성-역설이 더욱 두드러진다. 서구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시기 중 하나인 십자군 전쟁에 대한 영화의 묘사는 종종 이러한 묘사와 관련된 승리주의적 서사를 피한다. 대신 스콧은 갈등에 대한 더 모호하고 윤리적으로 복잡한 비전을 제시한다. 푸코에 따르면 역사적 서사는 무엇이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하는 권력 구조에 의해 형성된다. 기독교도와 무슬림을 비교적 균형 있게 묘사함으로써, 스콧은 오랫동안 십자군 전쟁의 묘사를 지배해온 전통적인 유로중심적 역사 서술에 도전한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 자체는 역사적 상대주의의 한계와 그러한 이데올로기적으로 충전된 사건을 묘사할 때 중립성을 추구하는 것이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적 위치 설정인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글래디에이터>

시각적 미학과 재현의 정치학

스콧의 전쟁 영화의 촬영 미학—블랙 호크 다운의 탈색되고 혼란스러운 프레임에서 킹덤 오브 헤븐의 거의 회화적인 구도까지—은 전쟁의 스펙터클을 특정 이데올로기적 틀 안에 위치시키는 시각적 스토리텔링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나타낸다. 그가 추구하는 하이퍼리얼리즘적 미학은 고증의 진실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비판의 도구로도 작용한다. 특히 <블랙 호크 다운>에서는 핸드헬드의 즉각성을 통해 관객을 도시 전쟁의 혼란 속으로 몰입시키는 동시에 군사 개입의 윤리적 모호성에 그들을 은밀히 연루시키는 영리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블랙 호크 다운>의 윤리적 담론은 의도적으로 미묘하게 표현되며, 명시적인 대화보다는 형식적 긴장 속에서 더 많이 존재한다. 스콧은 명백한 정치화를 피하고, 대신 관객을 전쟁의 현상학—먼지, 피, 모가디슈의 혼란스러운 폐쇄감—속에 담아낸다. 명백한 정치적 논평에서 벗어난 이러한 접근은 약점—연출자의 주관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으로 이해될 수도 있고, 혹은 강점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이 영화는 이데올로기적 초구조에 독립된 병사들의 경험을 감각적으로 탐구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는다.  

주제적으로 봤을 때 리들리 스콧은 종종 "영웅의 여정" 전형을 다루지만, 이를 전복된 방식으로 표현한다. <글래디에이터>의 막시무스는 단지 고전적 영웅일 뿐만 아니라, 체계적 부패에 저항하는 개인의 상징이기도 하다. 도덕적 부패 속에서도 스토아적 미덕을 구현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킹덤 오브 헤븐>의 발리앙은 정복의 여정이 아닌 내부적 화해의 여정을 겪는 반(反)영웅이다. 예루살렘 공성전은 그의 내면적 투쟁의 외적 표현으로 기능한다. 그의 주인공들이 직면한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딜레마에 대한 강조는 많은 주류 할리우드의 전쟁과 영웅주의에 대한 단순한 미화와는 대조적이다


<블랙 호크 다운>

영웅주의와 허무함의 변증법

많은 면에서 스콧의 전쟁 영화는 영웅주의와 허무함의 변증법적 탐구이다. 수천 명의 엑스트라와 복잡한 CGI 합성으로 정교하게 안무된 전투 장면의 웅장함은 화면에 묘사된 인간적 대가로 거의 즉시 반박된다. 이러한 긴장은 특히 <킹덤 오브 헤븐>에서 두드러지며, 사라센 군대와 십자군 간의 거대한 충돌이 시각적으로 장엄하게 묘사되는 한편, 인간의 고통과 도덕적 모호성의 장면과 지속적으로 대조된다—이는 브레히트적 소외 효과를 암시한다. 관객에게 문제 없는 승리의 안락함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스콧은 관객을 헤겔적 변증법을 연상시키는 도덕적 성찰의 공간에 위치시킨다. 군사적 웅장함의 명제가 개인적 상실의 반명제로 반박되고, 궁극적으로 전쟁의 본질적 가치를 의문시하는 종합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변증법은 <블랙 호크 다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영웅주의의 개념은 그 임무의 명백한 허무함으로 복잡해진다. 미군 병사들의 전술적 기량과 부인할 수 없는 용기에도 불구하고 그 임무의 전략적 성공 부족은 현대 군사 개입의 한계를 상기시키는 냉혹한 교훈을 제공한다. 여기서 스콧은 암묵적으로 탈식민주의 이론에 참여한다. 서구 군사력이 기술적 우월성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아의 복잡한 사회정치적 현실 앞에서 실패하는 광경을 보여준다. 빠른 편집과 끊임없는 사운드의 폭격은 감각적 경험에 기여하며 이는 혼란스럽고 몰입적인 동시에 병사들 자신이 직면한 인식론적 한계를 반영한다. 그들은 대체로 불투명한 도시 풍경 속에서 친구와 적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블랙 호크 다운>에서 합리적이고 기술관료적인 전쟁 접근법—첨단 군사 장비와 전략적 계획으로 상징되는—은 궁극적으로 인간 갈등의 비합리성과 예측 불가능성으로 무너진다. 이러한 합리적 질서의 붕괴는 진보와 인간 이성이 폭력을 통제하고 제압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근대주의적 신념에 대한 비판으로 작용한다. 말하자면 스콧의 묘사는 전쟁이 정치의 합리적 연장이 아니라 이성보다 원시적 본능과 전장의 우연성에 더 자주 굴복하는 무대임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글래디에이터 2>, 2024

<글래디에이터2>는 전작에 비해 예산, 캐스트, CGI 사용, 액션 시퀀스의 규모 등 모든 면에서 더 커졌지만, 정작 원작을 승화시켰던 고전적 마법은 사라진 듯하다. 전작이 위와 같이 영화 예술 자체의 본질에 대한 허를 찌르는 질문을 던지며 관객에게 도전적인 태도를 보였다면, 이번 속편에서는 그 질문조차 던져지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영화 자체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글래디에이터2>는 말하자면 새롭거나 흥미로운 방식으로 실망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역량을 충실히 갖추었으나 특별함이 없는, 너무도 익숙한 패턴의 슴슴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는 명망 있는 감독이 과거의 큰 성공에 다시 도전하면서 그 매력을 되살리지 못한 전형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단 <글래디에이터2>는 만족스러운 작품이다. 이 영화는 '새로운 맛'보다는 '아는 맛'을 정공법으로 선사한다.

<글래디에이터2>

영화는 맥시무스의 죽음 이후 수십 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루시우스는 루실라의 아들이자 한때 로마 제국의 후계자로, 현재는 아내와 함께 누미디아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은 동료들과 함께 로마의 식민지화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마커스 아카키우스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결국 침략당하고, 루시우스는 노예로 사로잡혀 로마로 끌려간다. 그는 곧 검투사가 되어 자유를 위해 싸우고, 아내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꿈꾸며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제국의 배경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마주하게 된다.

폴 메스칼이 연기한 루시우스는 원작에서 스펜서 트리트 클락이 연기했던 순진한 소년에서 성장한 모습으로, 비록 그가 "야만인"으로 묘사되지만, 그의 군인에서 노예, 다시 검투사로의 여정은 맥시무스의 여정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둘 다 복수를 원동력으로 삼으며, 그 복수는 결국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시민을 위한 제국의 꿈으로 이어진다. 원작에서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비열하고 편집증적인 코모두스 황제가 주요 악역으로 등장했다면, 이번 속편에서는 공동 황제 게타와 카라칼라, 그리고 전 노예 출신 사업가 마크리누스까지 세 명의 주요 안타고니스트로 나뉘어 있다.

속편이 전작과의 유사성에 발목 잡히는 경우는 흔하지만, 캐릭터화와 액션 시퀀스에서 이루어진 여러 표면적 수정들은 "더 크면 더 나을 것"이라는 잘못된 속편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원작에는 광기 어린 황제가 한 명 있었지만, 속편에는 두 명이 있다. 그것도 모자라 또 다른 광기 어린 기회주의자가 추가되었다. <글래디에이터>에는 호랑이가 있었지만, <글래디에이터 2>에는 원숭이와 코뿔소, 상어가 등장한다. 또한 원작에서 부족했던 수중 전투 장면도 이번 속편에서는 과하게 보충된다. 이러한 "더 크고, 더 많고, 더 화려하게"라는 접근이 당신에게 매혹적으로 보일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글래디에이터2>의 가장 큰 문제는 내러티브의 중심에서 벗어난 캐릭터와 서사적 비전의 결여에 있다. 폴 메스칼이 연기한 루시우스는 복수심에 불타는 검투사로서의 분노를 잘 표현하나 그의 캐릭터는 맥시무스와 비교했을 때 내적 갈등이나 복합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보인다. 이는 영화의 전반적인 서사가 루시우스를 단순한 역사적 톱니바퀴로 만들기 때문이다. 맥시무스는 말하자면 '정치적 음모와 얽혀 로마의 미래를 위해 싸우는 영웅'이었다. 단순한 검투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시우스는 복수를 꿈꾸지만, 그 복수의 대상인 마커스 아카키우스와의 대결은 대부분 영화의 후반부까지 유예된다. 이로 인해 관객은 영화 내내 루시우스의 감정적 여정이 표면적이고 단조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글래디에이터2>의 액션 시퀀스 역시 규모 면에서는 원작을 능가한다. 그러나 그 감정적 여운은 훨씬 덜하다. 원작의 전투 장면들은 단순한 스펙터클을 넘어 캐릭터의 감정적 절정과 맞물려 있었다. 맥시무스가 가족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으로 싸우는 장면들은 그의 내면적 갈등과 결합되어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속편의 전투 장면들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감정적 맥락이 현저히 부족했다.

전반적으로 기대만큼 약간은 아쉬움이 없을 수 없는 작품이었으나, 리들리 스콧이 <나폴레옹>에서 보여주었던 거대한 실패를 생각하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이 영화는 연출적 매력이 상당한 작품이다. 25년의 세월동안 변한 것은 시각 효과라는 듯이, 스콧이 선사하는 신선한 연출의 시퀀스 - 이를테면 몽환적인 꿈 시퀀스의 질감은 상당히 고혹적이다. 긴 러닝타임을 지탱해주는 것은 결국 리들리 스콧의 노련한 연출이었다.

<글래디에이터2>

#더 셀룰로이드 4호, 리들리 스콧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