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수프와 인간의 사물화

프렌치 수프와 인간의 사물화

작성자 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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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수프와 인간의 사물화

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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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_n7525onp1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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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19일에 개봉한 트란 안 홍 감독의 <프렌치 수프>는 수려하고 낭만적인 미식 영화이다. 프랑스 미식과 로맨스의 만남이라는 듣기만 해도 화려한 소재를 가진 이 작품을 관람하면서 먹을 것에 진심인 한 명의 한국인은 당연히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콩소메, 포토푀, 오믈레트 노르베지언, 오르틀랑 등 러닝 타임 내내 정말 끊임없이 정성스러운 미식의 향연이 이어지는데 개중 클라이맥스를 차지한 요리를 뽑아야 한다면, 역시 미식가인 ‘도댕’이 그의 요리사이자 사랑하는 여인인 ‘외제니’에게 마음을 고백하며 함께 등장한 디저트일 테다.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그 디저트는 조롱박처럼 허리가 잘록하고 밑이 둥글게 부풀어 오른 서양배를 메인으로 사용한다. 두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면서 이 배는 곧 뒤돌아 누운 외제니의 나신과 꼭 닮게 오버랩되며 도댕이 외제니에게 품은 사랑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장치가 된다. 영화의 원제가 ㅣ<La Passion De Dodin Bouffant> 즉, 도댕의 열정임을 생각한다면 그의 열정이 미식과 함께 외제니에게 향해 있었음을 의미하는 낭만성의 극을 달리는 연출이리라 추측한다. 그런데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전혀 다른 감상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물화란 간략하게 정의하자면, 행위 또는 존재 자체가 자율성이나 주체성을 박탈당한 채 비인간적인 존재나 물질처럼 취급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문학비평용어사전 참고) 인간의 사물화, 신체의 사물화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자아와 주체성을 가진 상대에게서 자아와 주체성을 빼앗아 타인을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게 되는 인간이 윤리적으로 다양한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사물화의 극단적인 예시에는 역사 속 노예 제도가 있고 여성과 남성의 음부를 어패류, 채소 등으로 비유하는 표현 또한 사물화의 예시이다. 이렇듯 인간의 몸을 인간의 몸으로 바라보지 않는 사물화를 필자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미학의 탈을 쓴 인간의 사물화가 주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서이다.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예술가인 요시다 유니는 지난해 한국에서 큰 호평을 받은 전시는 물론, 최근 국립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연극 ‘맥베스’의 포스터 제작에 참여하며 다시금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등과 가슴 부분이 파인 드레스를 입은 여성의 몸으로 맥베스의 상징물들을 드러내는 작품은 일상적인 사물과 인간의 몸을 배치해 CG 없는 사진 만으로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를 감각적이면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요시다 유니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기발하고 독창적인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소중한 작가이지만, 그와 동시에 여성의 몸을 사물로 이용한 맥베스 포스터와 같이 미학의 탈을 씌운 인간의 사물화를 대중에게 저항감 없이 스미도록 하는 아름다운 작품들을 많이 제작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실제로 2019년 요시다 유니가 디렉팅 한 슈에무라 화보는 여성의 신체를 부각하고 이용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포르노적이라는 논란을 받은 바 있다.

타인에 대한 비인간화는 어떤 폭력을 야기하는가, 특정 성별의 신체를 우리는 왜 미학적으로 받아들이는가, 그러한 수용이 과연 옳은가, 포르노와 예술의 차이는 무엇인가 등 신체의 사물화에서 유래되는 2차적인 철학, 윤리, 예술계의 논의는 미뤄두더라도 프렌치 수프와 요시다 유니 각각 영화와 사진으로 표현된 아름다운 장면 속에 신체의 사물화가 존재함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학의 관점에서 삶에서 이루어지는 신체의 사물화의 경계심 없는 침투를 주의해야 하지 않을까.

프렌치 수프 예고편 :: https://naver.me/F7ydJib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