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타로 탄생 게게게의 수수께끼와 쇼와 시대

키타로 탄생 게게게의 수수께끼와 쇼와 시대

작성자 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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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로 탄생 게게게의 수수께끼와 쇼와 시대

해류
해류
@user_n7525onp1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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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타로 탄생 게게게의 수수께끼>는 일본 만화 역사에서 큰 획을 그은 ‘게게게의 키타로’ 시리즈의 6기 극장판이자, 원작자 미즈키 시게루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한국에는 낯설지도 모르지만, ‘게게게의 키타로’(직역하면 ‘히히히의 귀신동자’ ゲゲゲの鬼太郎)는 1965년부터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현재 대중들이 만날 수 있는 모든 일본 요괴, 일본 오컬트 분야의 이미지들을 정립한 일본 요괴 만화의 시작점과도 같은 중요한 작품이다. 이번 극장판은 키타로 시리즈의 주인공인 ‘키타로’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기존 키타로 시리즈를 몰라도 관람할 수 있는 스토리, 수준 높은 작화와 연출, 그리고 매력적인 주연 캐릭터들로 일본에서 인기몰이를 한 작품답게 필자 역시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찝찝한 감상을 동시에 느꼈다.

(하단부터 작품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일본은 일왕의 재위 기간을 기준으로 시대를 나누는데 히로히토 일왕이 재위하던 1926년부터 1989년까지를 쇼와 시대로 구분한다. 그리고 연도에서 바로 짐작할 수 있듯이 쇼와 시대는 한국의 일제강점기,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전쟁 등의 역사적인 사건들과 시기가 겹친다. 일본에게 쇼와 시대는 일본이 부흥한 영광의 시대인 동시에 전쟁과 패배, 원자 폭탄 등의 사건을 겪은 전쟁과 폐허의 시대이며 이후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다시금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한 시대이기도 하다. 이중 <키타로 탄생 게게게의 수수께끼>의 시점은 1956년 쇼와 31년으로 이제 막 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나 고도의 경제 성장기에 접어들던 무렵이다.

작품의 서술자 역할을 하는 주인공 ‘미즈키’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던 상이군인이다. 그리고 미즈키의 관점을 빌려서 작품은 당시의 과거 일본 사회와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작품은 국가를 위해 국민을 소모품처럼 사용하던 군국주의, 제국주의 사상을 비난하고 국가에 의해 희생된 피지배, 소시민 계층의 자국민들을 대변한다. 작중 사건의 공간적인 배경이 되는 ‘나구라 마을’은 당시 일본을 비유하는 축소판이며 그곳에서 과거부터 자행되어온 그릇된 관습과 권력을 주인공들이 폭력적으로 파괴하는 데에 성공하고 앞으로의 시대를 살아갈 미래 세대인 ‘키타로’를 구해내는 행적은 영화가 담고자 한 주제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일본에서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그릇된 연쇄를 비난하며 끊어내는 부모 세대의 희생인 것이다.

분명 좋은 주제이지만, 이 작품을 관람하던 필자는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작품의 시점은 쇼와 시대이며 필자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쟁 시대라고 하면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이다. 작중 미즈키가 참전했던 태평양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제가 일으킨 전쟁이며 많은 수의 한국인 그리고 당시 일본에게 식민 지배를 당했던 모든 국가의 국민들이 착취당하고 희생당한 전쟁이기도 하다. 그러한 전쟁에 대해 언급하면서 작품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일본 자국민에게 머물러있다. 영화는 국가와 일본인들이 자국민 외의 사람들에게 범한 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또한, 사죄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작중 나구라 마을 밖에서 잡혀와 희생된 외지인들에 대한 언급이 그를 대신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영화는 그에 대해 깊이 다루지도 않으며 작품의 주제는 결국 부모 세대의 희생과 앞으로 일본에서 살아갈 아이들의 미래에 맞춰져 있다. 엔딩에서 마지막으로 성불한 캐릭터가 류가 가문의 막내아들이었음을 생각해 본다면 작품의 주제가 더욱 일본인들의 자기 연민에 그쳐있음을 짐작하게끔 한다.

일본에서 일본과 일본 자국민의 상처만을 다루고 회복하는 작품이 제작됨은 어떻게 본다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당시의 제국주의 정신을 찬양하고 찬미하려는 작품보다는 훨씬 더 도덕적으로 나은 작품임에도 맞다. 그렇지만, 타국에게 범한 상처와 범죄는 언급조차 하지 않으면서 자국의 상처만을 연민적으로 보듬어 회복하고 나아가려는 작품에게 한국인이 분노와 불편함을 느낌 역시 정당하고 필요한 감상이 아닐까.

키타로 탄생 게게게의 수수께끼 예고편 :: https://naver.me/xFo6gxO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