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주와 브로맨스
작성자 해류
유익한 지적허영심
탈주와 브로맨스
2024년 여름에 개봉한 <탈주>는 이제훈(임규남 역)과 구교환(리현상 역) 두 배우를 중심으로 제작된 이종필 감독님의 장편 액션 영화이다. 휴전선 최전선에서 근무하는 주인공 '임규남'은 남조선(대한민국)으로의 탈주를 꿈꾸며 비밀리 준비하고 있었으나 그의 계획이 꼬이면서 과거의 인연이자 현재 북한군 간부인 '리현상'에게 쫓기게 된다는 내용이 영화의 전체적인 시놉시스이다. 두 주연 배우의 설득력 있는 연기력과 끊임없이 반전되는 긴장감 있는 각본, 그리고 '스스로 선택하고 실패할 자유'를 위해 탈주를 원하는 주인공 임규남의 강한 의지이자 작품의 주제까지. 의미도 있고 기본기도 탄탄한 완성도 덕분에 입소문을 탄 영화였다.
브로맨스bromance는 남성형제, 남성 간 가족처럼 친밀한 관계를 일컫는 영어 단어 브라더brother와 낭만적인 사랑, 연애 감정, 사건 혹은 그러한 관계를 일컫는 영어 단어 로맨스romance를 합성한 단어이다. 브로맨스는 남성 간의 친밀하고 깊은 우정을 이르는 말로 해석되며 우정이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다시피 로맨스라는 단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성애적인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의미를 갖는다. 작품에서 두 남성 인물 간의 관계가 연인도 아니고 성적인 관계도 맺지 않지만 애틋하고 아련해 가족이나 친구 이상의 연애와 유사한 감정을 갖고 있다고 비춰질 경우 브로맨스 작품이라는 키워드를 붙여 설명한다.
그리고 나는 이 단어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동성 간의 사랑 즉, 퀴어를 지우기 위해 더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브로맨스라는 단어 때문에 퀴어적인 해석이 가능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현 한국 영화계와 영화 홍보사는 오히려 퀴어를 드러내지 않고 남성 캐릭터 두 명의 관계를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브로맨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대중매체에서 동성애가 용납될 수 없을 때, 사람들의 '호불호'와 퀴어 혐오 세력의 공격을 받을 수 있을 때. 동성애를 가리고 배제하기 위해 사용되는 일면이 더 강한 것이다. 브로맨스이기 때문에, 동성애는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퀴어와 다양성은 등장시키고 싶지 않으나 그로 인한 흥행몰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영화 <탈주>를 검색하면 따라붙는 연관 검색어가 있다 '탈주 게이'. 영화가 스크린에서 거의 내려간 현재까지도 상단에서 확인 가능한 연관 검색어이다. <탈주>역시 브로맨스를 사용해 홍보된 작품이다. 이제훈 배우가 연기한 임규남, 구교환 배우가 연기한 리현상, 그리고 송강 배우가 연기한 선우민. 이 세 사람의 관계는 '해석에 여지가 있는' 관계이다. 서로의 과거에 깊이 관여해 있으며 리현상이 임규남에게 보이는 집착과 과거의 인연, 송강이 리현상에게 보이는 과거에 대한 미련 등. 우정만으로 해석하기에는 깊고 질척하고 묘한 감정선과 관계도 그리고 소품들이 등장한다. 사실 이러한 캐릭터 설정과 각본은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해당 설정의 깊이에 비해 그 설정을 통째로 도려내어도 탈주의 주제와 스토리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으며 <탈주>에 대한 이종필 감독의 '퀴어코드를 의도하지 않았다'라는 인터뷰처럼 영화가 선을 긋는다는 데에 있다.
작품은 딱 그 의미심장한 뉘앙스를 풍기지만,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는 '브로맨스' 작품의 선을 지킨다. 로맨틱한 감정이나 그에 준하는 감정이 아니고서야 설명할 수 없는 장면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지만을 남기지 직접적인 언급이나 단서는 흘리지 않는다. 로맨스이지만 '브'가 붙어 결코 로맨스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근래의 브로맨스 작품들에서 곧잘 목격할 수 있는 흐름이다. 만일 <탈주>에서 퀴어코드를 수긍했더라면 오히려 각 캐릭터의 매력과 작품의 주제, 선천적인 개인의 성향과 사랑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폐쇄적인 사회를 비판하는 장치가 되었을 것이다. 혹은 <탈주>에서 브로맨스로 볼 수 있는 모든 감정선과 관계를 도려냈더라면 액션과 잔혹성, 그리고 자유라는 주제를 더욱 강조할 수 배경이 되었을 테다. 여타 브로맨스 작품들 역시 그와 유사한 흐름의 문제점을 갖고 있다. 즉, 근래 브로맨스를 표방한 한국 영화에서 관측 가능한 브로맨스는 성소수자에 대한 기만일 뿐 아니라 각본이 의도한 주제를 흐리면서 작품의 전체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작품 속 '브로맨스'에 대한 해석은 사실 대부분 관객에게 달렸다. 그러나 대다수의 관객이 작품을 관람하고 같은 감상을 느꼈다면 더는 감독이 의도하지 않은, 관객만의 감상이 될 수 없을 테다. 브로맨스 작품이라는 키워드만으로 흥행하고 흥행몰이를 하는 영화계의 행태는 <탈주> 이전에도 유구하게 있었고 계속되고 있다. 한국 영화계에서 영화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브로맨스만을 셀링 포인트로 잡은 작품들이 끊임없이 소비되며 흥행하는 것 역시 문제지만, 브로맨스가 퀴어 기만적이고, 배제적인 현실에서 이러한 '브로맨스' 작품들을 인지하는 데에 관객들에게 즐거움 이상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탈주 예고편 :: https://naver.me/xZGFwz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