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등급제가 없어진 (진짜) 이유
작성자 새벽노래
시선에도 색이 있어요
장애 등급제가 없어진 (진짜) 이유
5년 전, 2019년 7월에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었습니다. 지금은 "급수"가 아닌 "심한" / '심하지 않은"이라는 구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더 나아진게 맞나 싶습니다) 장애등급제를 폐지하는 것은 장애계의 오랜 숙원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등급 폐지]가 아닌 [등급]이 주는 불합리성 때문이었습니다. 아쉬운 것은 등급제가 폐지된 지 5년이 되었지만 그 "불합리성"은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티클은 지금까지 아티클과 달리 장애에 대한 인식 영역에서 잠시 벗어나 장애 정책 중 가장 기본인 이 이야기를 해 볼까합니다.
원하는 건 단지 "폐지"가 아니라고요
장애인은 왜 등급제를 폐지하고 싶어 했을까요? 이 질문이 정책의 방향이자 오늘의 핵심입니다. 단순히 사람에 대해 1급, 2급, 3급 이런 식으로 나누는 표기가 비인간적이라고 느껴서였을까요? 물론 그런 부분도 있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획일화]입니다. 왜 등급게가 획일화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등급제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장애인의 삶으로 한 발 더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질문이 중요해요. 수업이든, 면접이든, 정책이든.
"장애인의 삶에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 질문에 대한 우리나라의 답은 등급제였습니다. 장애인의 장애 유형과 정도를 판단하여, 등급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에 대해 파악하여 이미 정해진 등급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판정합니다. 그렇게 판정된 등급에 따라, 지원, 감면 등을 하는 것이 장애등급제입니다. 그리고 등급은 폐지되었으나, "심한" / '심하지 않은"에 따라 여전히 지원, 감면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용어말고는 바뀐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건 "장애인이 왜 등급제를 폐지하고 싶어 했는지"에 대해 전혀 잘못 생각한(혹은 단정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장애인은 왜 등급을 폐지하고 싶어 했을까요?"라는 질문부터 틀렸습니다.
장애인이 등급제를 폐지해달라는 요구는 "장애인의 삶에는 무엇이 필요할까요?"라는 질문이 틀렸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당신의 삶에는 무엇이 필요할까요?"라는 질문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여기서 [장애]라는 단서가 있을 뿐입니다. 극단적인 예로 애플의 팀 쿡이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라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할까요?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 필요할까요? 장애를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개인 = 장애], 아니라고요
장애인의 삶의 중심에 장애를 놓고 판단하면 [개인의 삶]은 사라집니다. 개인의 꿈도 목표도 잊혀집니다. "당신은 발달장애인이니 (당연히) 이런 지원이 필요하죠? 그러니 받아가세요."가 아니라 "당신은 IT 전문가가 되고 싶은데, 당신은 발달장애를 갖고 있죠. 그렇다면 이러한 지원이 필요하겠군요."라고 물어야하죠. 내가 뭘 하려고 하는데, 내가 내 삶을 주도하려고 하는데, 그 제약이 바로 장애 때문이라면 그 벽을 허물어 주는 것이 정부와 지역사회의 지원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내 이름 앞에 00장애인을 떼어주세요.
장애등급제 폐지의 본질은 장애가 아닌 "나"에게 집중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우리의 정책과 제도는) 여전히 "장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 걸음의 발전이었다고 생각해봅니다. 그 두번째 걸음, 혹은 휠씬 큰 보폭의 걸음이 "개인예산제"입니다. 이번 정부의 공약으로 2026년 시행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다음에는(바로 다음은 아닐지도 몰라요) "개인예산제"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장애등급제 폐지의 원래 목적도 달성이 되지 않아서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