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서 반갑다는 평범하고 어려운 인사

작성자 새벽노래

시선에도 색이 있어요

만나서 반갑다는 평범하고 어려운 인사

새벽노래
새벽노래
@user_hg9qfn9bzl
읽음 389
이 뉴니커를 응원하고 싶다면?
앱에서 응원 카드 보내기

힐링 모먼트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한 곳에서는 매주 금요일 오후가 되면, 장애인들과 DVD로(제가 좀 옛날 사람입니다만) 영화를 봤어요. 거실 의자에 앉거나, 바닥에 눕거나 가장 편한 자세로 팝콘 대신 과자를 까 먹으면서 영화를 보는 시간이 저에게도 발달 장애인들에게도 왠지 모르게 한 주를 마무리하는 힐링의 시간이었어요. 그 때 가장 많이 본 영화는 [슈렉], 겨울이면 [폴라 익스프레스]를 수도 없이 봤었죠. 언어 표현이 거의 되지 않은 발달장애인 10여명과 저는 그 시간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이 영화에 집중하고, 또 잠들기도 한 시간이었어요.

영화보다 털린 다리 혹은 무릎

이 시간을 아직까지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는 건 사실 영화때문이 아니에요. 여전히 그 고요하고 평온한 시간이 기억에 남아 있긴 하지만, 하나의 사건(?) 때문이에요. 그 날도 영화 [슈렉]을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전 바닥에 앉아서 두 다리를 쭉 펴고 보고 있었어요. 영화 중반 쯤에 한 쪽 구석에서 엎드려서 보던 아이가 있었는데, 졸음이 왔는지 고개가 왔다갔다 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번뜩 순간 정신이 들었는지 주위를 둘러보다가, 저를 보고(정확히는 제 다리를 보고) 일어나기도 귀찮았는지 데굴데굴 굴러와서 제 다리를 베더니 곧바로 잠이 들었어요. 언어 표현은 거의 전무하고, 수업은 거의 되지 않고, 의사 소통도 거의 되지 않는 발달장애인이었는, 더구나 다른 사람에 별다른 관심조차 없는데 다른 사람의 다리를 베고 자려고 온 것부터가 신기한 일이었어요. 깜짝 놀란 저와 달리 영화 중반에 머리를 올린 이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제 다리에 감각이 거의 없어질 때까지, 숙면을 하였죠.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그 때서야 저는 알게 됐어요. 말을 못해도, 눈도 마주치지 않아도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구나. 제대로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어도, 졸릴 때 무릎을 베기 위해 굴러가도 되는 관계라는 것을 알고 있구나. 들은 적이 있지만 긴가민가 했던, “발달 장애인은 발달에 장애가 있는 것이지, 감정에는 장애가 없다.”는 말을 실감한 순간이었어요.

눈치, 사춘기, 상황파악

복지관에 수업을 지원하기 위해 찾아오는 봉사자를 발달장애인에게 “이 사람은 오늘 함께 할 봉사자에요.”라고 소개하기도 전에 이미 장애인은 저 사람이 봉사자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발달 장애인의 삶을 한 번 생각해보면 되요. 어렸을 때부터, 어쩌면 학교보다 더 먼저 복지과, 치료실을 다니기 시작해요. 그 때 만나는 사람들은, 사회복지사, 특수교사, 그리고 자원봉사자에요. 그 때부터 숱하게 보아 온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에요. 게다가 우리도 중/고등학교 시절에 선생님과 친구들을 가장 먼저 파악하지 않나요? 그게 내 학교생활을 결정하니까요. 발달장애인도 마찬가지에요. 편한 선생님, 엄한 선생님, 봉사자를 빠르게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알죠. 그리고 충분히 그 파악은 가능해요. 그 파악은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파악이고, 이건 감정의 영역이고 발달 장애인은 감정에 장애는 없으니까요. 어쩌면 비장애인보다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파악할 수도 있어요.

사건 - 감정 - 표현

“그걸 말로 해야 알아?”라는 말이 있죠. 관계는 감정이니까요. 발달장애인이 감정에도 장애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오해를 사는 것은 표현 방식이 서툴거나, 혹은 아주 남다른 표현 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표현은 사회성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니까, 발달장애인 중에서도 자폐성 장애인이 그런 오해를 많이 받아요. 감정은 3단계라고 생각해요. 즐거울 때, 슬픈 일을 당했을 때, 그 “일”에 대한 “이해”와 이해를 기반으로 오는 “감정”과 그 감정에서 나오는 “표현”. 발달장애인은 3단계 중 감정에 장애는 없지만 “이해”와 “표현”의 영역에서 어느 한 쪽이, 또는 둘 다 통상적인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다보니, “감정”에도 장애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회복지사들은 사람마다 각각 다른 이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서 어떤 감정을 느낄 때 어떻게 “표현”하는지 알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들여서 관찰하고 분석해요. 자폐성 장애인이라고 다 같은 표현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개인별로 파악을 해야하죠.  때론, 그 시간이 1년, 2년이 걸리기도 하지만요.

“만나서 반가워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비장애인도 비슷해요. 사람마다 다 표현 방식이 다르잖아요. 발달장애인이 그 편차와 폭이 더 (아주) 넓을 뿐이지요. 중요한 건, 느끼는 것은 같다는 거에요. 장애인 영역에서 일하는 저로서는 어쩌면 더 진실한 곳에서 일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서 발달장애인은 어쩌면 아주 직설적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니 혹시 발달장애인을 만나게 되신다면, 잠깐 인사라도 나누게 되는 상황이 오면, 반가운 마음으로, 장애/비장애말고 그냥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는 감정을 잘 전달해주세요.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만드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 이런게 시작이니까요. 그저 ‘만나서 반가워요’라는 마음을 전해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