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메일이 너에게 닿기를

내 메일이 너에게 닿기를

작성자 펭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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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메일이 너에게 닿기를

펭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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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ginst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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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인턴은 오늘 조금 화가 났습니다. 지난주에 분명, 어제까지 신제품 '고추기름 립 플럼퍼'의 상세 스펙을 공유해달라는 메일을 제품개발팀 판다주임한테 보냈는데, 오늘 아침 출근했는데도 연락이 없지 뭡니까. 사전에 가타부타 말도 없이 요청 기한을 지키지 않다니. 메시지를 보내야겠어요.

세상에. 어떻게 저런 뻔뻔한 사람이 다 있을까요? 자료는 그럼 아직 시작도 안됐겠네요. 화가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키보드를 두드려봅니다.

아니 어쩜 이런 경우 없는 경우가 다 있죠? 펭대리님한테 오늘까지 드려야하는 자료인데, 난감해진 귤인턴. 마침 펭대리가 다가와 신제품 상세 스펙을 달라고 하네요. 귤인턴은 억울함을 토로하듯 펭대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뭔가 묘해지는 표정의 펭대리. 이야기를 다 듣더니 귤인턴에게 묻습니다.

또 다시 묘해지는 표정의 펭대리. 이번에는 판다주임에게 보낸 메일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수신자에 판다주임만이 설정돼있는 메일. 아하, 오늘 귤인턴에게 이야기할 내용의 주제가 정해졌군요. 바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가 아니라, '자료를 원하거든 소통을 준비하라'입니다.

📑포인트: 내 메일이 너에게 닿기를

우리나라 민법에 '도달주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상대방 있는 의사표시는 그 통지가 상대방에게 도달한 때로부터 효력이 생긴다'는 내용인데요, 예를 들어 원룸에 세들어 살고 있는 귤인턴이 전세 계약을 갱신하고 싶다면, 그 의사를 집주인에게 표시해야겠죠? 아무리 자기 마음속으로 전세 연장해야지 라고 염불을 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진짜 전세를 연장하고 싶다면 집주인에게 의사를 명확하게 표시하고, 집주인도 귤인턴에게 그런 의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이번 귤인턴의 일도 비슷합니다. 이 경우 귤인턴의 의사는 '신제품의 상세 스펙을 달라'는 것이죠. 의사 표시는 메일로 했습니다. 귤인턴의 말처럼, 회사에서의 공적인 소통 창구는 메일이니 메일로 요청을 한 건 당연한 겁니다. 다만 그 메일이 진짜 상대방에게 닿았는지, 즉 '도달'했는지는, 정말 필요한 경우에는 따로 확인을 해야 합니다.

이 경우 도달률(?)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는 크게 두 개가 있습니다. ①📞전화/메신저로 메일 수신 여부 확인하기 ②👪참조자 추가하기 입니다.

사실 요청하는 자료가 정말 급하거나 중요한 거라면 ①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내가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메일 보냈는데 너 확인했니? 라는 내용을 전화/메신저로 물어보고, 확인 여부를 알았다면 그럼 언제까지 될 것 같니? 까지 물어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 메일로 보냈으면 됐지 저렇게까지 해야되나 싶냐고요? 메일이라는 건 사실 가장 공적이지만 개인 대 개인의 소통이라면 가장 소심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수신 확인 여부를 카카오톡의 '읽음' 문구가 없어지는 것처럼 편리하게 알 수 있지도 않고, 전화처럼 육성으로 바로 소통할 수도 없죠. 업무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는 내가 보낸 메일은 상대방의 그득하게 쌓인 메일함에 그저 one of them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 나한테 진짜 필요한 내용이라면 내 요청 사항이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닿았는지 확인하는 건 일도 아닐 겁니다. 너무 독촉하는 것 같아 민망하다면 다음과 쿠션어를 쓰는 것도 좋겠습니다. "업무로 바쁘시겠지만 000까지 가능하실까요? / 가능하실지 여쭙습니다 / 부탁드립니다" 등등입니다.

상대방에게 먼저 연락이 오는 확률을 높여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바로 ②번으로 소개한 참조자 추가하기. 수신자(TO)로는 실무 담당자를 설정하고, 참조자(CC)로 해당 실무 담당자의 상급자 또는 팀 전체 메일을 걸어버리는 방법입니다. 조직마다 문화가 조금 다를 수는 있습니다만, 참조자에 상급자를 추가하는 건 회사에서 그렇게 특이한 일은 아닙니다. 물론 대리한테 요청하는데 갑자기 그 팀의 제일 끝판왕 상급자인 본부장을 걸어버린다면 곤란할 수는 있겠죠. 추가할 상급자는 레벨을 보고 적당히 조정합시다. 이렇게 이 메일을 보고 있는 이해관계자를 늘리면 설령 본인이 놓쳤더라도 같은 팀에서 리마인드를 해줄 수 있고, 그 때 누구네 팀에서 메일 온 거 처리했냐는 상급자의 물음에 빠릿하게 대답하기 위해서라도 나에게 먼저 연락을 줄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까지 했으면 나의 요청이 상대방에게 '도달'했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겠죠. 정말 센스있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한발짝 더 나아가서, 서로 합의한 마감일의 하루 전날 정도에 메시지를 살짝 넣어둘 수도 있겠습니다. 말랑한 대화를 목표로 다음의 쿠션어를 넣기 위해서 메시지를 넣는 타이밍은 출근하고 30분 이내, 급하지 않다면 점심시간이 지난 후 30분 이내로 합시다. "좋은 아침입니다 or 맛점하셨는지요 :) 요청드린 00 자료, 내일까지 가능하실지 확인 차 여쭙습니다!"


🐧: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작은 소통만으로도 문제의 여지를 확실하게 줄일 수 있어요. 우리 모두 노비A, 아니 회사원A인 만큼, 불필요한 기싸움은 최대한 줄이고 담백하게, 마일드하게 일할 수 있도록 힘써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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