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그딴 거 하라고 내가 돈 버는 줄 아나?

니 그딴 거 하라고 내가 돈 버는 줄 아나?

작성자 나나

엄마를 이해하지만, 사랑할 순 없어

니 그딴 거 하라고 내가 돈 버는 줄 아나?

나나
나나
@naneunn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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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때 피아노를 꽤 잘 쳤다. 소위 말하는 예체능 3종, 음악/미술/체육 중 체육에는 영 재능이 없었고, 음악은 확실히 잘했다. 노래도 잘하고, 악기도 잘 다뤘다. 재밌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콩쿨에 나가서 상을 받기도 했다. 80점부터 은상이었는데, 79점을 받아서 되게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음악이 하고 싶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일기장에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썼다. 5살 때부터 내가 ‘장래희망 칸에 적는 꿈’은 항상 의학 박사였다. 의학 박사가 뭔지도 모르고, 엄마랑 외할머니가 의학 박사가 돼야 한다고 해서 늘 그렇게 썼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피아노가 하고 싶다고 어딘가에 써 본거다. 담임 선생님이 상담하다가 그걸 엄마한테 말했나보다. 나는 엄청 혼났다. 음악가가 얼마나 돈 벌기 힘든지 아냐고. 당시 외가쪽 친척이었나, 바이올린을 전공한 분이 계셨는데, 돈을 실컷 들였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너도 음악 같은 거 하지 말라고 했다.

꿈은 그런다고 접히는 게 아니다. 사실은 가수가 하고 싶었는데, 그런 걸 말하면 진짜 죽어라 혼날 것 같았다. 나름대로 우회한 게(?) 작곡가였다. 친구랑 얘기하다 보니, 작곡가가 되려면 음악 공부도 하고, 프로그램도 배우고 뭐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 엄마에게 작곡가가 되겠다고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문자메시지를 했다. 엄마는 가게 일을 하느라 바빴다. 내가 전화를 해도 손님이 있다며 끊고, 1시간 후에나 전화하는 게 일상이었다. 이게 고착화되자 나는 엄마에게 전화하는 게 상처였다.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손님이 있어야 엄마도 돈을 버는 거고, 손님이 가자마자 나에게 전화할 순 없으니까. 뭔가 엄마도 일이 있었겠지. 하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그 상황이 반복되면, 나도 엄마한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려던 게 하나씩 사라진다. 엄마에게 할 말이 많던, 조잘조잘하고 싶던 나의 기대감이 상처로 바뀌지 않으려면 기대를 버리고, 말을 줄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걸어오는 전화도 받지 않기도 했다. 점점 대화는 줄어갔고, 엄마랑 주말에 보내는 시간에, 엄마는 출근 준비를 하고 나는 수학 문제집을 풀고, 성적에 관한 이야기만 주로 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뭔가 새로운 걸 말한다는 게 두려웠다.

문자메시지, 그 당시에는 카톡이 없었으니까, MMS로 전환될 정도로 엄청 긴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는 전화가 와서 불같이 화냈다.

“니 그딴 거 하라고 내가 돈 버는 줄 아나?”

한 마디로 정리됐다. 내가 하고 싶은 건 그딴 거다.

엄마랑 있었던 수많은 일들이 있지만, 사실 이게 나에게 가장 큰 상처가 됐다. 나는 엄마에게 어떤 존재일까?

엄마도 날 사랑했겠지, 아빠 없이 키워도 성공시켰다고 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그걸 이해하기에 중학교 2학년은 너무 어렸고, 그 전에 받은 상처도 너무 많았다. 그 뒤에도 이걸 치유할 방법도 없었다. 그 날 내 마음의 문이 쾅하고 닫혀버렸다.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