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르는 아저씨한테 사진을 왜 보내야 되는데?

내가 모르는 아저씨한테 사진을 왜 보내야 되는데?

작성자 나나

엄마를 이해하지만, 사랑할 순 없어

내가 모르는 아저씨한테 사진을 왜 보내야 되는데?

나나
나나
@naneunna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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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 말한 통화가 끝난 후, 다음 날 아빠라는 인간에게서 카톡이 왔다. 화장 안 한 사진을 보내라고. 내가 왜…? 심지어 내가 답을 하기도 전에 북치고 장구 치고 난리다. 그 전 날 통화로 왜 뒷모습만 프로필 사진에 올려 놓냐며, 사진 보내라는 얘기를 돌려하는 거라고 했는데 내가 카톡으로 사진을 쏘지 않아서 저런 걸까? 뭐 좋다고 내가 본인이랑 통화 후 굳이 카톡으로 내 사진을 보낼까?

대충 그냥, 나는 사진 안 찍는다고 답하고 말았다. 그는 뭐 공감능력이 없는지, 나랑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알 수 없지만, 나를 만난 적 있는 작은 고모가 ‘오빠 닮아 목이 짧다 함 우리 집안 종특임’이라고 했단 말을 전했다. 살면서 목이 길단 얘기를 한 번 들은 적은 있는데, 짧단 얘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 그러더니 그는 ‘사진은 뭐 그래라’고 답이 왔다.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가 사진 보내라며 외모 평가질인데, 굳이 대화를 더 이어갈 이유가 없다. 읽고 씹었다.

그러고 나니 그는 끈질기게 또 카톡을 보냈다. 너는 핏줄이란 이유로 받아야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자기도 그 이유로 사진 보자는 게 안 되냐고. 아침부터 기분 잡치는 카톡이었다. 심지어 나는 그에게 뭘 달라고 한 적이 없다. 짜증나서 씹을까 하다가 ‘내가 뭘 달라고 했냐’고 물어봤다. 난 그에게 아무 것도 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미친 걸까? 그는 그에 대한 답은 안 하고 ‘사진하나 보내라는 부탁을 안들어주는데 이야기가 되나’라고 답했다. 더 이상 톡 안하는 게 낫겠다는 이어지는 카톡. 나도 같은 생각이다. 이 톡을 씹고, 더 이상은 톡이 오지 않았다.

애초에 이 인간의 말부터가 틀렸다. ‘사진 하나 보내라는 부탁’-> ‘보내라’는 부탁이 아니다. 보내 달라가 부탁이지. 본인은 나에게 해준 게 없으면서 나한테 부탁을 하고, 안 들어준다고 저런 식으로 생물학적 인연이니 뭐니 하는 게 더 말이 안 된다. 더구나 나는 뭔가 받아야 한다고, 받겠다고 한 적이 없다.

역시 모르고 살았어야 했다. 굳이 이런 인간에게 내 번호를 말도 없이 알려준 엄마에게 다시 한 번 화가 났다. 그러고 있는데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통화 되냐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빠 연락 왔냐고. 자기는 아빠라는 사람도 이제 60이 넘었으니 바뀌었을 줄 알았고, 그래서 결혼하니까 축하도 해주고 사과도 하라고 아빠에게 내 번호를 넘겼다고 했다. 그런데 그 뒤로 자기에게 문자 오는 거 보니(아빠란 인간이 나에게 카톡하고, 엄마에게도 뭐라 했나보다) 안 바뀐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가만히 듣다가 왜 나한테 묻지도 않고 번호 알려줬냐고 따져 물었다. 미안하다고 했다.

미안할 거 알면 하지 말지. 아빠도 이제 60이 넘었지만, 엄마도 60이다. 엄마는 왜 이게 나를 위한 거라고 생각할까? 상견례 때 아빠를 부르자는 것도 내가 싫다고 했는데, 필요하면 내가 얘기했겠지. 적어도 아빠에게 내 번호까지 넘기려면 나의 동의를 구했어야 했다.

전화를 끊고, 엄마는 ‘계속 연락 오면 아빠 번호를 차단하라’고 카톡이 왔다. 아니, 그럴 거면 알려주지 말지.

어릴 때 엄마가 나를 떼놓고 엄마의 부모님과 함께 사는 삶을 택한 것도, 내가 공부를 잘해야 엄마를 욕먹이지 않는 것도, 그래서 내가 하고팠던 음악이 ‘그딴 거’가 되고, 영재 학원이나 경시대회에 밀어넣을 때 가지 않겠다고 하면 그 무서운 눈초리와 화를 견뎌내야 했던 것도, 엄마와 그 흔한 여행 한 번 제대로 못가본 것도, 내가 첫 취업한 회사가 대기업이 아닌 대기업의 ‘자회사’라서 ‘XX도 아니고 XX 자회사라고?’라고 한 것도, 엄마가 당시 아빠에게 연락하기 싫어서 국가장학금 신청 동의도 못 받고, 근데 딱히 등록금 지원도 해주지 않아서 내가 4년 내내 등록금 100%를 다 낸 것도, 보증금 없는 방만 구하라고 해서 창문 없는 방, 바퀴벌레 나오는 방을 전전한 것도.

엄마도 힘들었을 테니까, 엄마가 지금 내 나이에 나를 낳았으니까, 아빠가 집을 나간 때, 엄마도 겨우 30대 초반이었으니까 다 이해하려고 했다. 나도 상처 받았지만, 적어도 엄마를 버릴 수 없었고, 그래서 엄마에게 모질게 대했지만 엄마의 연락을 완전 끊을 수는 없었다. 카톡에 단답하면서도 어쨌든 답장을 했던 이유는 엄마에 대한 일종의 연민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겪으며, 아빠는 원래도 무관심의 영역이었으나, 이런 결정을 하고, 내가 3일간 아빠라는 인간의 이상한 연락을 받게 만든 게, 엄마가 내 동의 없이 아빠에게 연락하고, 내 번호를 넘긴 거란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아마 엄마가 ‘내가 부모를 원망하고’ 등등 이상한 이야기를 했으니, 그걸 보고 아빠가 받아야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한 걸까. 물론 여기서 제일 이상한 건 아빠라는 아저씨지만, 그는 원래 내 관심 영역에 있지 않았으니 스트레스만 받았을 뿐 크게 상처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일말의 기대라도 있었으니, 엄마 말대로 하면 엄마도 곧 60인데, 왜 엄마는 아직도 나에게 똑같이 상처 주는 행동을 하는 걸까? 본인이 본인의 남편에 대해 가진 원망을, 내가 가진 원망이라 투영하며 아빠에게 연락한 것 같기도 하다.

아빠가 나쁜 건 맞지만, 나에게 상처를 준 건 엄마다.

이번 주에는 혼주 한복을 맞추러 가야 한다. 엄마를 봐야 하는데, 나는 엄마랑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