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다고? 자기인생 자기가 사는 거니 잘 살아라, 나는 아프다
작성자 나나
엄마를 이해하지만, 사랑할 순 없어
결혼한다고? 자기인생 자기가 사는 거니 잘 살아라, 나는 아프다
[속보] 어제 아빠 전화옴
따끈따끈한 어제(10/31)자 일이다. 남편이랑 밥 맛있게 먹고, 카페 가서 빵도 야무지게 먹고 집으로 출발하기 전 잠시 휴대폰을 봤다. 저장 안 된 번호로 문자가 와있다.
모자이크한 건 내 이름이다.
엥? 카톡도 와있다. 누구지? 고돌이? 고씨의 누군가인가? 전화번호를 저장해보니 문자 보낸 사람=카톡 보낸 사람이었다. 처음엔 내가 이전 시리즈에서 언급한, 내가 잃어버린 18년지기 친구인가 했다. 그 친구는 고씨는 아닌데, 그 18년지기 친구와 나의 겹치는 친구가 고씨여서 그 친구한테 전해듣고, 그 친구 카톡으로 나한테 연락을 한 건가 했다.(애초에 그 고씨 친구는 내 카톡에 저장돼 있어서 고돌이로 뜰 일도 없지만)
말이 너무 날서있고, 무섭고? 누구야, 이 사람은. 근데 내가 인생에서 내 결혼소식을 남을 통해 들으면서, 그 소식에 이렇게 이상하고 기분 나쁜 축하의 말을 전할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나는 아프다? 내가 아프게 했단 거야, 뭐야.
나는 불도저 같은 성격이다. 내가 이런 기분 나쁘고 찜찜한 축하의 말을, 모르는 사람한테서 듣고 싶지 않고, ‘누구세요?’ 따위의 문자를 하며 답장을 기다리며 초조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남편과 함께 문자를 1분쯤 들여다보며 정체를 추측하다가 나는 다짜고짜 전화를 했다. 남편은 당황한 눈치였다.
나-여보세요
상대방-여보세요
나-여보세요? 문자 남기셔서 전화했는데요?
상대방-여보세요? 내가 누군지 알고 전화하나?
뭐야 이 사람? 미친 놈인가?
상대방- XXX(내 이름) 아닌가요?
나- 맞는데요?
상대방- 내가 느그 아빠다
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에서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남편에게, ‘아빠래’라고 말했다. 남편이 더 당황한 눈치였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처음, 아빠랑 제대로 말이란 걸 해봤다. 대화에는 알맹이가 없었다. 전화가 끝나고 남편에게 대화 내용을 얘기해 줘야 되는데, 결국은 통화 녹음한 걸 들려줬다. 아빠란 인간은 참 말재주가 없었다.
다짜고짜 말을 놓는 이 남성에게, 처음에는 존댓말을 하다가 나도 그냥 말을 깠다. 무례에는 무례로 대응한다. 완전 깐 건 아니고, 존댓말 반, 반말 반.
나- 아, 잘 지내셨어요?
상대방- 뭐, 그냥 지냈지. 인생이 그런 거 아니가.
나- 그렇지.
상대방- 결혼한다고. 니가 부모를 원망한다고, 매일 울며 지냈다고 문자를 받아서 내가 문자를 해봤다.
나- 나 부모 원망한다고 한 적 없는데? 누가?
상대방- 니 엄마가 그렇게 문자를 해서, 내가 어쨌든 연락을 했다.
나- 원망도 기억이 나야 하지.
음…? 나는 부모를 원망한 적도 없고, 매일 울며 지낸 적도 없다. 엄마는 왜 아빠에게 연락을 한 걸까? 나에게 아빠는 없는 존재고, 엄마는 이제 무관심의 영역이다. 그걸 원망이라 받아들인 걸까? 울며 지낸 적은 더욱 없다. 왜 굳이 내 번호를 아빠라는 사람에게 알려주고, 나한텐 말도 없는지? 당연히 아빠와 나의 회복을 바란 건 아닐 거고, 엄마 본인이 이제 나와 관계가 틀어졌으니, 아빠에게 원망의 화살을 돌리고 싶었던 걸까? 일단 황당했다.
상대방- 상견례는 했겠네?
나- 했지.
상대방- 아빠는 죽었다 했나? 이혼했다 했나?
나- 집 나갔고, 연락 안 한다고 했지?
상대방- 사돈될 사람한테 ㅋㅋㅋㅋ 씩씩하게 컸네.
그는 대화 중 계속 나에게 씩씩하다, 선머슴같다고 했다.
상대방- 튼튼하게 잘 컸네. 뭐 어쨌든 나는 니가 자꾸 부모를 원망한다 카니까 미안해갖고. 뭐 많이는 안 미안하지만.
나- 많이는 안 미안하다고? 웃기네. 겉으로라도 미안하다고 해야지?
상대방- 내가 빈 말은 못해서.
상대방- 남편될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고?
나- 변호산데?
상대방- 그래, 결혼은 어디서 하는데?
나- 서울
상대방- XX(고향)서 안 하고? 특이하네. 서울은 어디? 서울 전체가 니 집은 아니잖아
나- XX(결혼식장 동네)
상대방- 그래. 그럼 자취하나? 프사 보니까 폼이 딱 서울이드만.
나- 어. 자취 아니고 남편이랑 같이 사는데?
상대방- 결혼도 전에 동거를 하나?
나- 혼인신고 했는데?
상대방- 그럼 결혼식 날짜를 왜 그래 잡았노?
나- 집이 먼저니까? 결혼은 다 돈이잖아
상대방- 아이고, 그래 말하는 거 보니까 고생을 했는갑네. 니네 엄마 벌이로 생활이 되나?
나- 어, 고생했지. 고생한 줄 알았으면 돈이라도 좀 보내지 그랬노?
상대방- 뭐 니 연락처도 모르니까.
내가 다시 복기하면서도 얼탱이 없는 말 투성이다.
솔직히 어제자 일이라서 좀 얼떨떨하다. 재회라고 하긴 뭣하지만, 드라마에서 말하는 이런 신파적인 가족의 재회보다, 내 재회는 꽤 고요했다. 울지도 않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내 할 말을 했을 뿐.
그는 쓸데 없는 말을 많이 했다. 니네 고모가 술을 잘 마시고, 우리 집안은 술을 잘 마신다는 둥(나는 술을 안 먹는다고 했다), 프사가 뒷모습인데 통통해 보이던데, 당뇨와 고혈압이 집안력이라 조심해야된다는 둥, 앞모습을 찍어 보내라는둥, 자기가 이제 다시 공부를 하고 싶어서 전문대에 입학하려 한다는 둥.
그렇게 장장 21분 35초를 통화했다.
사실 아빠가 궁금해서, 그의 치과를 찾아본 적이 있다. 치과는 전화번호가 나와 있으니 전화 할까 말까 고민한 적도 있다. 처음 알아본 게 2018년이었는데, 6년만에 통화를 했다.
남편은 앞에서, 내가 통화가 끝나면 나를 안아줘야 되나 고민했다고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었다. 생각보다 나는 덤덤했다. 아빠는 심심하면 카톡이나 전화하라고 했다. 등신. 내가 심심하다고 지한테 카톡을 하거나 전화할 일은 없다.
엄마는 무슨 생각으로 아빠한테 내 연락처를 알리고, 나에게는 말도 없었을까. 나는 부모를 원망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갈구하다가 이제 무관심의 영역으로 온 건데, 내가 매일 울며 지냈다는데 나는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 엄마랑 3일 이상 같이 지낸 적이 없는데 뭔 소리를 하는 걸까?(실제로 매일 울지도 않았다)
아빠랑 통화했지만, 엄마에 대한 알 수 없음만 깊어지는 하루였다.
결론은 어쨌든, 아빠라는 작자는 이상하고, 이제 내 시리즈의 제목과 달리 엄마도 조금은 이해할 수 없게 됐다.
*TMI 대파티
1) 카톡에서 삭제된 첫 메시지는, '통통하네'라고 쳤다고 했다. 그러다가 첫 인사로 할 말은 아니다 싶어서 지웠다고 했다. 나도 그래서 얘기했다 '그게 첫 인사로 할 말이가?'
2) '나는 아프다'는, 본인은 당뇨와 고혈압이 있다고 했다.
3) 참고로 이 사람은 자기 아빠(나의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연락 받고 장례식은 안 왔다. 그래서 얼굴 본 적도 없고, 참 독특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둘의 관계가 안 좋긴 했다는데, 참 특이하다.
4) 나는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