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소설) :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가 1942년에 발표한 소설. 소설 도입부의 첫 구절이 유명하다. Aujourd'hui, maman est morte. Ou peut-être hier, je ne sais pas.(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그게 어제였나. 잘 모르겠다.) 이 장편 하나로 카뮈는 1957년, 4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주인공의 이름은 '뫼르소(Meursault)'로 살인(meurtre)과 태양(soleil)을 의미하는 단어의 앞부분을 따 조합했다. 알제리에 사는 평범한 월급쟁이 뫼르소는 모친 장례일의 이튿날 해수욕장에 가고 영화를 보고 웃으며 여자친구와 밤을 지낸다. 다음 일요일에 친구인 레몽과 그의 정부 간의 분쟁에 휩쓸려 해안에서 정부의 복수를 하러 온 오빠의 패거리 중 한 명을 총으로 쏴 죽인다. 재판에 회부되어 범행 동기를 물을 때 "모두가 태양 때문이다"라고 대답하고 사형을 선고 받는다. 독방에서 형의 집행을 기다리는 뫼르소는 사제가 권하는 속죄의 기도도 거절하고 자기는 과거에나 현재에나 행복하다고 느낀다. 모든 기성의 가치와 습관에 무관심하게 되어 인생에는 어떠한 의미도 없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그 부조리의 의식을 최후까지 굳게 지켜나간다. 뫼르소의 무감수성은 현대인의 모습을 잘 반영한 실존주의 문학의 면모라고 볼 수 있다. 장폴 사르트르의 해석을 보면 이방인은 부조리에 관한 소설이며 이 부조리라는 주제는 프랑스 17세기 고전적 회의주의에서부터 줄곧 고민되어오던 주제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카뮈가 파스칼적이며 프랑스 계몽주의자들과 니체, 프랑스 인식론의 맥락에서 쓰여졌다고 말한다. 사르트르는 이방인은 뫼르소를 말한다고 보면서 이방인이란 순진함을 가지고 현재에만 사는 일종의 '백치'라고 말한다.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사회에 이변을 일으키는 저 기가 막힌 순진한 자라고 말한다. 사르트르는 이 소설이 설명, 증명을 하지 않으며 그저 '묘사'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유는 서양 철학에서 이성의 무용성을 보여주고 오직 감각적으로 나타난 이미지 만으로 표현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뫼르소는 무감정한 사람인가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하며 현재의 감각에 온통 쏠려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뫼르소가 감각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곧 감정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된다. 뫼르소가 무감정하게 보이는 이유는 사르트르는 관념화를 전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서양철학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관념화된 결과물. 때문에 '사랑'이라는 단어도 관념에 불과하지 우리가 몸으로 느끼는 것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뫼르소가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출처 : 나무위키+위키백과)
★기사 참고 :
1.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들까? - 연극 이방인
2. 가장 멀어짐으로써 가장 가까워지려 한 이방인 - 이방인
★동영상 참고 : https://www.youtube.com/watch?v=Z7LWcIB8X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