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틈만 나면 태어나는 작은 생명들
작성자 낯선그리움
그림책 읽는 시간
작은 틈만 나면 태어나는 작은 생명들
잡초.
시골 작은 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어요. 학교 건물 뒤 작은 오솔길부터 뒷동산으로 오르는 골짜기에 학교 텃밭이 있었어요. 전교생이 서른 명 남짓한 아이들과 고추며 가지며 감자며 상추며 시골 장터에서 학교 주무관님이 사온 모종을 심었어요. 나 역시 초보 농사꾼이라 실과 교과서와 지도서를 보며 아이들과 함께 심었죠. 시골 아이들이라고 해도 요즘은 옛날처럼 부모님들 따라 농사짓는 걸 도우러 다니지 않아요. 대부분 기계를 사용하거나 특용작물을 심거든요. 그리고 아이들은 그냥 공부나 하지 밭에는 나오지 말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대부분 학교 텃밭에서 아이들도 처음 무언가 심고 키우는 경험을 해요.
그런데 심을 때는 재미있지만 곧 잡초와의 전쟁이 시작돼요. 6월쯤 되면 잡초가 무성해지고 여름방학을 지나고 오면 정말 말 그대로 정글이 되어 버려요. 그때그때 뽑지 못한 잡초들은 감당하기 어려워지거든요.
그런 추억을 함께 하고 이제는 다시 본가가 있는 도심의 큰 학교로 왔어요. 신도시에 새로 생긴 신설학교는 한 학년이 10반까지 있는 큰 학교였어요. 도시에서 살면서 만나는 잡초는 그때와 또 다른 느낌으로 만나게 돼요.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꼼꼼하게 채워진 회색빛 도시에서 작은 틈을 비집고 나타나 파릇파릇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이름모를 잡초를 만나는 건 반가운 일이에요. 그때부터는 잡초가 아니라 풀꽃이라고 불러도 될 것같아요.
이제는 반가운 마음도 들거든요.
그림책 <틈만 나면>은 그런 도심의 어느 한 켠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풀꽃들의 모습을 보여줘요.
'작은 틈만 나면' 태어나는 작은 생명들. '멋진 곳'이 아니라도 어디라도 틈만 있다면 활짝 피어나는 '여리지만 살아 있는' 풀꽃들의 모습.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도심 속에서 우리가 마주했을 만한 장소과 그 틈 속에 피어난 여러 풀꽃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담벼락 사이에서, 횡단보도 앞에서, 하수구 입구에서, 돌 틈에서, 깨진 아스팔트 주변에서..
누군가의 시선을 얻지도 못한 채 작은 틈만 있으면 태어나고 사라지는 풀들의 모습을 한 장 한 장 넘겨보고 나면 도심 속에서 만나는 풀들이 예전과 다르게 다가올 거에요.
작가는 이런 풀들을 보며 ' 사랑스럽고 애잔하고 때론 위로를 받는다'고 해요.
우리도 도심에서 이런 풀들을 보면
따뜻한 시선으로 멀리서 응원을 보내요.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
그러고나면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어 다시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