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쓸모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작성자 낯선그리움
그림책 읽는 시간
당신의 쓸모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쓸모를 생각하는 순간은 행복하고 즐거울 때가 아니라, 외롭고 쓸쓸하며 힘든 순간일 것입니다. 화려한 장식에 둘러싸여 있던 화병에 어느 날 작은 흠집이 생깁니다. 그 작은 흠집으로 인해 화병은 하루아침에 길가에 버려지고, 한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베란다의 화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방 안에서 주목받던 시절과는 달리, 퀴퀴한 흙냄새와 벌레들, 그리고 여러 가지 물건들로 어수선한 베란다에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전자, 와인잔, 항아리로 살던 새로운 화분들이 각자의 쓸모를 찾으며 살아가는 베란다에서, 화병도 자신만의 쓸모를 발견하게 됩니다.
표지에 보이는 화병의 표정부터 책장을 넘길 때마다 드러나는 감정의 변화가 아주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당혹, 놀람, 좌절, 속상함, 기대, 기쁨…
할머니의 베란다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다른 화분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권정생의 <강아지똥>이 가치없음과 하찮음이라는 편견 속에서 생명과 쓸모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나의 쓸모>는 도심 속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쓸모를 찾아가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 책은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자신의 쓸모를 찾아 증명해야 하는 젊은 세대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한때의 빛남과 화려함을 지나 새로운 쓸모를 고민하는 어른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격려입니다.
화병의 쓸모는 결국 무언가 담아내는 것에 있습니다. 쓸모의 무게를 나누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겠지만 겉보기에만 화려한 장식품을 담았던 화려한 과거보다는 생명을 담아내는 지금의 화병이 더 행복해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깨어지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었던 자신의 쓸모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