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의 정치/사회 2편

아프가니스탄의 정치/사회 2편

작성자 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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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의 정치/사회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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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7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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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도 아프간으로 군대를 몰고 가서 새로운 친 영국 정부를 세우려면은 대뜸 영국이 간다고 아프간 국민들이 그걸 허락하지 않으니 옛날 왕을 해먹었던 사람을 데려가서 바지 사장으로 앉혀 놔야 먹히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은 영국령 인도 제국을 지키기 위해 아프간을 침공하게 됩니다.

1839~1842년 동안 진행된 1차 영국-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문제는 영국이 이긴 뒤 아프간에 남은 바지 사장이 왕이 되었지만 기본적인 아프간의 패시브인 외세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영국에 손을 잡고 있는 권력을 얻은 새로운 아프간 왕을 다시 쫓아 내기 위해 무장 단체를 또 설립하게 됩니다.여기서 국민들은 왕을 자리를 내릴려고 노력했지만 정치인들은 그 왕을 쳐낸 다음 본인이 그 자리에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국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각자 무장 단체를 만들었고 안 그래도 많은 무장 단체에 아프간 내부는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영국은 퇴각하게 되며 친 영국 왕 또한 자리에서 내려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어떤 스텐스 였을까요? 러시아는 영국이 이 짓거리를 하기 전부터 도

러시아: "아프간에서 함부로 왕을 갈아치우면 쿠테타 때문에 너무 힘든 지역이니 기존 왕을 그냥 두고 아주 천천히 아프간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아프간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2021년 8월에 미국이 아프간에서 철수했고 그보다 170년 먼저 들어갔다가 철수한 나라가 바로 영국입니다. 어쨌든 영국과 영국령 왕이 떠나자 러시아가 1877년까지 현재의 카자하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지역을 싹 다 먹게 됩니다. 1800년대 중후반이면 러시아는 영국과 러시아와 크림 반도에서 엄청나게 싸우고 있을 때였고 러시아가 크림 전쟁에서 패배한 뒤 노선을 바꿔서 중앙 아시아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렇게 현재의 우즈벡, 카자흐스탄을 먹은 러시아는 아프간과 국경을 맞닿게 된 건데 그때부터 러시아는 아프간에게 일방적으로 외교관을 보내기 시작합니다.

이 외교관 파견은 전세계 최초이며 그만큼 아프간은 러시아가 큰 나라라고 꼬리를 내리게 됩니다. 이때 영국은 러시아의 외교관 파견을 듣고는 다시 아프간에 가서 과거의 잘못을 시인하고 러시아와 똑같이 외교관을 보냈지만 아프간 왕은 바로 국경 톨게이트를 잠그고 영국 외교관을 쌩 깠습니다. 아프간 왕으로써는 위에서는 러시아가 밑에서는 영국이 들어오면 서로 본인 땅이라고 주장하면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어 아프간 왕 입장에선 엄청 피곤한 일이 생기니 영국 외교관을 쌩 까게 됩니다. 아프간 왕의 반응에 화난 영국은 2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2차 영국- 아프간 전쟁

영국이 이렇게 아프간을 집요하게 집착한 이유는 1877년에 영국령 인도 제국이 완성됐는데 위에 친 러시아의 아프간이 인도 제국과 국경이 맞닿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가 마음만 먹으면 영국령 인도 제국으로 내려오는게 진짜 시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영국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아프간을 친 러시아로 두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2차 영국- 아프가니스탄이 시작됐는데 결과는 영국이 또 이기게 됩니다. 영국은 1차 때처럼 실수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아프간을 설득하기 위해 일정 부분 돈을 매년 주겠다고 설득하면서 그 누구와도 외교를 하지 말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돈을 준다고 얘기한 뒤 1873년에 현재 아프간 영토가 확장하게 됩니다. 근데 아프간 동 쪽에 쥐 꼬리만한 땅이 있는데 이 땅의 이름이 와칸 회랑입니다. 1893년의 아프간 지도자인 압두르 라만 칸은 러시아가 원하는 것과 영국이 원하는 게 뭔지 다 알고 있는 유능한 사람이었다.

압두르: "우리가 잘 되기 위해서 러시아가 원하는 것, 영국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얘네들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덜 피곤해지면서 살아남을 수 있다."

당시 영국은 영국령 인도 제국에 러시아가 절대로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근데 영국이 와칸 회랑을 아프간 땅으로 만든 이유가 러시아와 싸우지 않는 중립 지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근데 러시아 또한 와칸 회랑같은 고산 지역이기에 공격을 안 한다고 와칸 회랑을 아프간 땅으로 합의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이란 쪽으로 나가서 중동 아랍을 먹고 싶지만 영국은 그런 러시아를 탐탁치 않은 상황이라 아프간 왕 입장에서도 내부 쿠테타도 막아야 하는데 영국과 러시아가 계속 들어오니가 빨리 둘 다 없어줬으면 해서 와칸 회랑랑 같은 국토도 확장 시킨 겁니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세계 1차 대전이 일어날 때쯤 독일이 아프간에 들어오게 됩니다.

독일:"아프간 너희 얼마나 영국과 러시아 때문에 고생이지. 이번에 우리가 엄청난 군수물자 지원 할 테니 영국령 인도 제국 공격해줘."

아프간: 음... 괜찮은데. 근데... 너희가 영국한테 지면 어쩔 건데?

그렇게 아프간은 영국령 인도 제국을 공격하지 않게 되는데 아프간 국민들은 또 왕이 영국 편이 아니냐는 음모로 소문이 퍼지게 되고 1919년 아프간 왕인 하비불라 칸이 알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다행히 아들이 왕위를 계승 받고 암살한 세력 또한 제거 시키며 세력을 키웠습니다. 근데! 하브불라의 아들은 세상 물정을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비불라 아들: 아빠가 암살된 건 다 영국 때문이야. 내가 영국이랑 안 친하다는 걸 국민에게 보여줘야겠다."

지금 내정할 때 영국이랑 친하다는 것 때문에 자기 아빠를 암살하려는 세력들과 반기들을 든 세력이 많아 그걸 잠재우기 위해 억지라도 영국이랑 친하게 지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야 했던 겁니다. 그렇게 아프간이 영국령 인도 제국으로 쳐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3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일어났고 영국 입장에서 이해가 안 된다는 생각으로 전쟁에 임하게 되며, 3차 전쟁 또한 영국이 이기게 됩니다. 영국은 아프간을 차지할 수 있지만 아프간에 땅으로 큰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고는 아프간을 내쫓치기만 했다.

그 이후 아프간내에서 1970년대까지 외세와 관련 된 전쟁이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외세가 침략한 게 사라진 거지, 내부에서 쿠테타와 내전은 계속 일어나게 되고 1928~1929년에는 아프가니스탄 내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아프가니스탄 내전이라고 부르는 것도 내전이라고 부를 만할 정도로 규모가 큰 전쟁이 많이 일어나서 그렇게 부르게 된 겁니다.

아프간이 1919년부터 외국이랑 안 싸우기 시작하니까 1920년이 돼 서야 근대화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여자들이 머리에 쓴 부르카는 의무였지만 근대화가 되면서 간소화 시키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꼰대들이 등장하고 그 세력을 등에 업고 다음 왕 자리를 얻기 위한 정치인들은 왕이 해이 해졌다는 걸로 선동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본인들의 정권을 위해 쿠테타를 계속 현재까지 일으키게 됩니다.

앞서 얘기한 1928~1929년에 있었던 아프간 내전 때 실제 반 정부 쿠테타 군대가 세력이 커져서 아프간 왕이 인도로 도망치게 됩니다. 근데 여기서 문제는 쿠테타 정권이 생기고 나서 다른 쿠테타가 또 일어나기 시작했고 또 다른 쿠테타 정권이 정부를 장악하게 되고 그 쿠테타 정권이 장악을 한 뒤에야 아프간 내 안정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면 쿠테타 같은 짓을 한 애들도 문제라고 생각할거고 그걸 선동 당한 애들도 문제라고 생각 할 텐데 쉽게 이해하기 위해 독일의 예를 들어주겠습니다.

독일이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경제가 박살 났기 때문에 히틀러가 집권하게 되었고 박살 난 경제 때문에 유대인들을 탄압할 수 있었던 겁니다. 아프간도 마찬가지로 경제가 계속해서 안 좋았고 근대화를 했는데도 경제가 안 좋아져서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 선동하기 딱 좋은 타이밍 이였던 겁니다.

내륙에 있고 무역이 가능하지 않는 나라였고 먹고 살만한 농사도 잘 지어지지도 않은 곳이 아프간이었습니다. 근데 또 웃긴 건 방금 쿠테타로 나라 정권 잡은 왕은 얼마 안 가 1933년에 암살 당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아프간은 암살과 새로운 왕의 등장이 거의 매년 있다 싶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 암살 당한 왕인 무함마드 나디르는 도로도 건설하고 대학도 만들고 헌법도 다시 근대화 시켰는데 주변에서는 그런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고 또 어떤 변화를 한다는 빌미로 암살하게 된 겁니다.

아프간에 사는 현지인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서 유일하게 믿는 신앙인 이슬람 율법을 대통령이나 왕이 지키지 않고 바꾸려고 하니 어렸을 때부터 이슬람만 믿으면 좋은 세상이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찌됐든 나름 아프간을 바꾸려고 한 무함마드 나디르가 암살 당한 뒤 아들인 무함마드 자히르 샤가 왕위를 계승하고 40년 동안 긴 시간 정권을 가지게 됩니다. 이 왕이 집권하는 기간 동안 아프간의 근현대 역사가 통틀어서 40년만큼 정말 안정적이었습니다. 자히르는 다른 나라와 무역도 하고 외교 관계, 무역 관계 같은 것도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냉전 시대 땐 미국과 소련 둘 다 아프간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자히르는 그 빌미로 소련과 미국 둘 다 돈을 달라고 말했던 유일한 아프간 왕이였습니다. 그리고 자히르는 여성의 통행 금지, 부르카 착용 법도 완화 시키며 점점 아프간을 발전시켰고 그 이후 큰 문제 없이 2차 세계 대전에서 중립을 선포하면서 조용히 넘어갔지만 1947년이 되자 어떤 나라가 갑자기 툭 튀어나오게 됩니다.

그 나라는 내일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명 재미없을 수도 있지만 다 읽고 이해하신 뒤에 아프간에 대해 누군가 한테 설명한다고 생각하면 재미있고 유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오늘도 이만 여기서 마무리 하고 솔직한 다일의 다방 여기서 마무리 인사 올리겠습니다. 저흰 내일 또 만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