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동양하루살이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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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놀이

야구, 좋아하세요?

지금, 동양하루살이의 시간

공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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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_z6qaay8h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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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동양 하루살이의 시간. /OSEN

(✨✨벌레 사진 없음✨✨)

몇 달 전 동양하루살이가 지하철 무단승차로 화제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사실 그 이전부터 하루살이는 야구장에 매년 꾸준히 출석하는 단골손님이었답니다.,

낭만적인 여름 야구장, 노을과 함께 펼쳐지는 하루살이의 무단 비행쇼(?)로 야구장은 아수라장이 되곤 합니다. 밝은 조명에 불나방처럼 달려들다 추락하는 하루살이 덕에 관중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죠.

이 분들, 왜 이렇게 많은 걸까요?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해질녘을 개와 늑대와 시간이라고 부르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한국의 해질녘 시간은 동양하루살이의 시간으로 불러도 과언이 아닙니다.

야구장 VIP, 당신이 궁금합니다

야구 재밌니? /마이데일리

동양하루살이는 최근에 나타난 벌레가 아닙니다. 1950년대에는 더 많았어요. 그러던 중 산업화로 사라졌다가 2000년대 초 도심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2013년에는 압구정 벌레 습격 이슈로 팅커벨 이전에 압구정벌레라는 직관적인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순화 이미지 /디즈니

오늘날 동양하루살이를 부르는 호칭 팅커벨은 외양에서 유래됐습니다. 날개를 펼치면 크기가 5cm에 달하는 요정급 크기와 밝은 몸 색깔 덕에 '팅커벨'이라는 별명이 붙여진건데요.

보통 5월 말 초여름에 활동을 시작하지만 올해는 지난달 예년보다 높았던 기온 탓에 더 일찍 출몰하기 시작했어요.

출몰 범위도 더 넓어졌습니다. 원래는 경기 남양주, 잠실 등 한강 상류나 강변쪽에서 주로 나타났는데 최근 들어서는 용산, 마포, 성동구 도심에 이르기까지 서울 전역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더러우면 싸가지 없는 거예요 🐝🐝

더러운 인간들아/M드로메다

동양하루살이는 알과 유충 시절에는 물 속에서 1-2년을 지내고, 봄부터 여름 사이 성충이 됩니다. 수명은 고작 2~3일 정도에 불과합니다. 암컷의 경우 짝짓기 이후 알을 낳고 바로 사망합니다.

성충이 되면 입이 없어지는 하루살이들은 인간에게 질병을 옮기거나 해를 끼치진 않아요. 오히려 유충 시절에는 수질 정화까지 해줍니다. 유충들의 먹이가 물 속 유기물이거든요.

게다가 나름 깨끗한 곳에서만 서식을 하기 때문에, 하루살이가 많다는 건 수원이 깨끗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BOD 1㎎/L 이하인 경우 수질등급은 "매우좋음"으로 용존산소가 풍부하고, 오염물질이 없는 청정상태의 생태계로 간단한 정수처리 후 생활용수로 사용할 수 있다/ 4대강 수질현황

수질 조사에 따르면 현재 한강은 1㎎/L 대로 깨끗한 편에 속합니다.

눈 딱 감고 낙하아아아아하, 사실은...

영국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하루살이가 빛을 향해 달려드는 이유는 빛을 좋아해서가 아니라고 하네요. 충격적...😱

오히려 빛이 벌레를 혼란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큰 동물과 달리 작은 벌레나 물고기는 몸집이 작아 공기와 물을 무시하고 행동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은 벌레나 물고기에게는 중력과 반대 방향(위)의 빛을 감지해 밝은 곳을 등지는 자세 제어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이를 배광반응(dorsal-light-response, DLR)이라고 해요. 인공 조명이 없었을 시기에는 해와 달과 별만이 있었을테니, 배광반응은 몸의 균형을 잡는 데는 최고의 시스템이었을 겁니다.

운전대가 말을 안 들어 /tvn

연구진은 광원에 접근한 벌레들이 배광반응으로 인해 광원을 향해 급상승하거나 추락하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인간이 보기엔 달려드는 것 같겠지만, 사실 곤충들은 야간 드라이브 중 갑자기 핸들이 고장나 추락하고 있었던거죠.😣

이 사실을 알고 나니 하루살이도 야구장에 오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루살이의 수요없는 에어쇼는 도시에서 이루어진 하루살이와 불빛, 인간의 잘못된 만남인 셈이죠.

방제 못하는 이유

못생긴 게 죄니 /무한도전

동양하루살이의 징그러운 외모 덕에 매년 민원이 끊이지 않지만 하루살이는 수명이 짧고, 사람의 생활권 안에서 날아다니는 것 빼고는 큰 해가 없는 곤충입니다. 섣불리 살충제를 뿌렸다가는 오히려 환경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지자체들도 낮에 하루살이 휴식지에 가서 고압살수기를 뿌리는 정도의 간접 방제만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주시는 강변 주변에 친환경 해충퇴치기를 설치하고, 야간에는 물대포 방제작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남양주시는 각종 트랩 설치 뿐만 아니라 개체 수 조절을 위해 천적인 미꾸라지를 방류하기도 했어요.

고압살수기에서 눈치 챘겠지만, 장마 기간이 되면 수가 줄어드니 장마 기간 자연 감소를 기다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격언이 있죠. 이 말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하루살이 사태는 인간과 자연 사이 거리감이 사라지면서 생긴 문제입니다.

과거 인간과 자연 사이에는 각자의 구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 영역이 커지면서 그 경계선이 무너졌습니다. 일종의 울타리 역할을 했던 늪지와 숲 자리에 인간 서식지가 생긴거죠. 하루살이 개체를 조절할 자연 천적층이 미처 형성되지 않은 것도, 즉 자연의 다양성이 사라진 것도 인간 탓이 큽니다. 결국 하루살이 사태는 사람이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알쓸신잡: 야구장에서 하루살이 피하기

하루살이와 박해민의 팬미팅 /연합뉴스

본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동양하루살이는 여름 잠실 야구장의 마스코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구단들의 대처 사례도 찾아봤는데, 야구 특성 상 조명을 끌 수도 없고 하루살이가 야구장에 서식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하늘에서 날아드는 하루살이는 마땅한 대처 방법이 없다"고 하네요.

대충 지붕 그늘지는 곳 예매. 대충 17열 근방 / 연합뉴스

그렇다면 최대한 안 마주치는 법은 없을까요?

한 가지 방법은... 2층 좌석 중 돔 지붕이 있는 곳을 예매하는 것입니다. 의외로 효과가 좋습니다. 추락하는 하루살이들은 앞쪽에만 떨어지니까요. 나름의 꿀팁입니다 🫡 직접 가보면 남들 하루살이에 놀랄 때 나만 쾌적하게 야구 즐길 수 있습니다.


뉴슨스(nuisance)라는 영단어는 '해를 끼치다'를 의미하는 고대 프랑스어 'nuire'에서 유래했습니다. 해는 끼치지 않지만 성가신 곤충들을 뉴슨스라고도 부르더라고요. 하루살이는 그저 인간 입장에서 귀찮다는 이유로 해충이 되어버렸죠. 낯선 외모의 하루살이를 보고 꺼려지는 마음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만, 그를 이유로 이번 팅커벨 사태의 원인을 죄다 하루살이 탓으로 돌리지 않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루살이는 주어진 3일을 열심히 살다가 야구장에 들어왔을 뿐이니까요.

인간이 불러온 혼란의 상황! 부득부득 버텨라 💀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