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과 히치콕

'현기증'과 히치콕

작성자 더셀룰로이드

시네마의 미학

'현기증'과 히치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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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_ygttiobn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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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전직 경찰관 스코티는 고소공포증으로 인해 동료의 죽음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은퇴 후 그는 옛 친구의 부탁을 받아 친구의 아내 매들린을 미행하게 되지만, 그녀에게 매혹되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매들린의 죽음으로 인해 스코티는 깊은 절망에 빠지고, 이후 그녀와 닮은 여인 주디를 만나면서 집착과 욕망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히치콕의 <현기증>은 꿈의 나선이다. 꿈, 그저 밤의 고요 속에서 펼쳐지는 몽상이 아닌, 내면 깊숙이 자리한 인간의 무의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꿈. 그는 그 꿈을 관객에게 던지고, 우리는 그 꿈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어간다. <현기증>은 회전하는 나선의 이미지로 시작하여, 그 끝없는 회전을 우리의 의식에 각인시킨다. 모든 것이 나선형으로 움직이고, 반복되고, 되돌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 나선은 우리의 시선을 끌어들이고, 그 중심부에는 결코 다가갈 수 없는 무언가가 숨어 있다. 그 미지의 중심은 우리에게 영원히 닿을 수 없는 비밀, 끝내 밝혀지지 않을 진실로 남는다.

히치콕은 말하자면 스크린을 하나의 거울로 삼아, 관객이 그 안에서 자신을 마주하게 만든다. 영화 속 주인공은 더 이상 허구의 인물이 아니며, 스크린의 반대편에서 우리를 응시하는 우리 자신이다. <현기증>의 스코티는 거울 속 자신을 잃고, 대신 매들린의 환영을 좇는다. 매들린, 그녀는 단순한 여인이 아니다. 그녀는 스코티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이자,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의 대상이다. 라캉의 언어를 빌리자면, 매들린은 대상 a로서 스코티의 결핍을 자극하지만, 그 결핍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나선은 그저 회전할 뿐, 끝을 알 수 없는 그 회전 속에서 스코티는 점점 더 깊이 미궁에 빠진다. 나선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욕망의 상징, 돌이킬 수 없는 집착의 상징이다.

히치콕은 카메라를 통해 스코티의 눈을, 아니 우리의 눈을 조종한다. 그의 카메라는 집요하게 매들린을 따라가고, 관객은 스코티의 시선에 동화된다. 우리는 그 시선을 통해 그녀를 관찰하고, 그녀를 욕망하며, 그녀를 이상화한다. 그러나 그 욕망은 파멸로 향하는 길이다. 히치콕은 관객을 스코티의 감정 속으로 밀어 넣고, 그의 집착과 고통을 체험하게 만든다. 스코티가 매들린을 바라보는 장면마다 그의 시선은 집요하고 강박적이다. 매들린의 자태, 그녀의 움직임, 그녀의 눈빛은 모두 그를 홀리며, 그를 끝없는 나락으로 끌고 간다. 매들린의 죽음 이후에도 그녀를 재현하려는 스코티의 강박은 그가 가진 욕망의 깊이를, 그리고 그것의 무의미함을 보여준다. 그는 주디를 매들린으로 바꾸려 하고, 그것이 그의 유일한 구원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 구원은 거짓이며, 파멸은 불가피하다. 그가 쫓는 것은 매들린이 아니라, 매들린 속에서 이상화된 자신의 꿈이다. 그 꿈은 언제나 허상으로, 손에 잡히지 않는 안개처럼 그를 피한다.

히치콕의 영화는 종종 응시에 대한 이야기다. <현기증>에서도 마찬가지다. 스코티의 응시는 매들린을 하나의 욕망의 대상으로 만든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이상으로 재구성하고, 그녀의 실제 정체성은 무시한다. 히치콕은 이를 거울 이미지와 반사된 모습으로 시각화하여, 스코티의 내면적 분열과 그의 욕망의 본질을 드러낸다. 매들린의 얼굴은 거울에 비치고, 창문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며, 물에 비친 모습으로 흔들린다. 그것은 언제나 확실하지 않고, 실체가 없다. 불안정한 이미지로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응시는 결국 스코티 자신을 파괴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라캉이 말했듯, 응시는 주체의 정체성을 흔들고, 그 불안정성을 드러낸다. 매들린의 죽음, 그리고 주디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스코티의 세계는 완전히 붕괴된다. 그는 자신의 욕망이 결코 충족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되고, 그 순간 그의 응시는 더 이상 대상을 찾지 못하고 공허 속에서 방황한다. 그 공허는 무한한 나선과도 같아서, 그의 내면을 끝없이 휘감으며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하다.

히치콕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현기증>에서 그는 상상계와 상징계, 그리고 실재계의 충돌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스코티는 상징계의 붕괴 이후 상상계에 갇히고, 그 상태에서 매들린을 이상화한다. 그러나 실재계는 그를 무자비하게 덮쳐오고, 그는 결국 그 충돌 속에서 무너진다. 히치콕은 이 과정을 달리 줌과 나선형 이미지, 그리고 복잡한 미쟝센을 통해 표현하며, 관객에게 시각적 충격과 심리적 불안을 동시에 전달한다. 그의 영화는 단순히 사건의 전개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사건이 주인공의 내면에 어떤 파문을 일으키는지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스코티의 심리적 상태는 영화 전반에 걸쳐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내리는 장면, 그 속에서 반복되는 달리 줌의 효과, 그리고 그 효과로 인해 왜곡된 현실. 그것은 단순한 시각적 트릭이 아니라, 그의 내면이 붕괴되어 가는 과정을 가시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현기증>은 히치콕이 남긴 가장 깊은 흔적 중 하나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상처와 집착, 그리고 그로 인해 파멸해가는 과정을 예리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히치콕은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은 진정 무엇인가? 그의 카메라는 우리에게 응시를 강요하고, 그 응시 속에서 우리의 무의식이 드러난다. <현기증>은 우리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히치콕은 그 거울을 통해 우리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만들며,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불안과 공포, 그리고 매혹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그리고 그 거울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나선을, 끝을 알 수 없는 그 회전을,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그 중심을 목격한다. 그것은 우리의 욕망이며, 우리의 두려움이며, 결국에는 우리 자신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