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앙, 그리고 실존 : 영화 '스토커'(잠입자)

믿음과 신앙, 그리고 실존 : 영화 '스토커'(잠입자)

작성자 더셀룰로이드

시네마의 미학

믿음과 신앙, 그리고 실존 : 영화 '스토커'(잠입자)

더셀룰로이드
더셀룰로이드
@user_ygttiobn19
읽음 683
이 뉴니커를 응원하고 싶다면?
앱에서 응원 카드 보내기

타르코프스키의 <스토커>(잠입자)는 도달할 수 없는 기도와도 같다. <스토커>를 보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하나의 여정이다. 이 여정은 그 끝이 불확실하고 모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끝내 걸어야만 하는 길이다. ‘구역’이라 불리는 미지의 세계는 마치 인간 내면의 미궁과도 같아서, 그곳을 통과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망각과 욕망을 짊어지고 있다. 그곳에는 물리적 경계가 없다. 구역은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모든 것이며, 동시에 우리의 내면에 숨어 있는 그림자이다.

<스토커>에서 스토커는 우리를 그 구역으로 안내한다. 그는 마치 신화적 이야기 속의 안내자처럼, 고통스러운 믿음을 지닌 인물로 등장한다. 스토커는 자신의 역할을 단순한 안내자로 규정하려 하지만, 그가 구역에서 느끼는 경외는 단순한 직업적 의무 이상이다. 구역은 그에게 있어 성소이자 심판의 장이며, 동시에 그는 그곳에서 영혼의 짐을 내려놓을 수도 없고, 구원에 다가갈 수도 없는 중재자에 불과하다. 이 아이러니한 존재는, 마치 자기 자신을 갈망하나 거부하는, 어떤 신비롭고 불가해한 힘과도 닮았다.

작가와 교수, 이들은 스토커의 뒤를 따라 구역에 발을 들인다. 작가는 영감을 잃어버린 자의 고통을 품고 있다. 그는 새로운 창조의 원천을 찾기 위해 구역으로 향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지쳐 있다. 구역은 단지 그에게 창조적 영감을 주는 마법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모든 환상과 불안이 투사된 무대이며, 창작의 의미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회의를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거울이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길을 잃은 자의 표정을 하고 있다.

교수는 냉정하고 이성적이다. 그는 과학의 이름으로 구역을 분석하려 한다. 그러나 타르코프스키의 카메라는 그의 이성을 뒤쫓아 구역의 진실을 파헤치는 대신, 그가 점차 그 안에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구역은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과학적 도구로도 해석할 수 없는 신비한 공간이며, 교수는 자신의 논리로 이곳을 이해하려다가 그만 자신의 무력함과 직면하고 만다. 이 여정은 그에게 있어 냉혹한 교훈이다. 인간의 지식이 도달할 수 없는 곳이 있다는 사실, 그것이 그를 불안하게 만든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세 명의 여정을 통해, 믿음의 문제를 우리 앞에 놓는다. 구역의 방은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속삭임으로 그들을 유혹하지만, 그들은 그 방을 끝내 들어가지 못한다. 문턱 앞에 선 그들은 자신의 욕망과 두려움을 직면하고, 그 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그들의 고백은 절망에 가깝다. 그들은 믿지 못한다. 신의 존재, 혹은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방은 열려 있지만, 아무도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그 문은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닫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믿음의 도약'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믿음의 도약이란, 이성이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으로의 결단을 의미한다. 그것은 모든 불확실성을 뛰어넘어 절대적인 신앙에 자신을 맡기는 행위이다.

그들이 문 앞에 서 있는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질문과 갈등이 사무친다. 방이 정말로 소원을 이루어주는 장소라면, 그들은 무엇을 원해야 하는가? 그들이 원하는 것이 진정으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순간적인 욕망에 불과한 것인가? 이 질문들은 그들을 얼어붙게 만든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으며, 그저 두려움 속에서 결단을 유보한다. 방은 그들의 모든 욕망과 두려움이 실현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지만, 그 가능성 앞에서 그들은 한없이 작아진다.

스토커는 방에 들어가기를 거부한 사람들 앞에서 무력하게 무릎을 꿇는다. 그는 그들이 믿음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절망한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어떤 사실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끝까지 나아가려는 실존적 결단이다. 믿음은 우리가 가진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용기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 속에서 결단을 미루며, 스스로의 욕망을 검열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혹은 알더라도 그것을 직면할 용기가 없다. 그리하여 그들은 방 앞에서 멈추고, 그 문을 열지 않는다.

타르코프스키는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믿으며,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우리는 정말로 우리의 욕망을 직면할 용기를 가졌는가? 우리는 우리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그 너머의 진실을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방 앞에 선 그들처럼, 우리 또한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때 우리는 우리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가? 믿음과 신앙. 그리고 실존. 타르코프스키의 <스토커>는 이 지점에서 한없이 사무친다.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