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잘 맞는 사람

우리는 종종 '나랑 잘 맞는 사람'을 찾아요. 3월에 개학하고 낯선 반에 처음 갔을 때, 어색하게 두리번거리며, 어떤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생각해요. 나랑 코드가 맞는 사람, 대화가 되는 사람, 취미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은 누굴까? 하는 생각은 대학생이 되어서도, 사회에 나가서도, 때로는 소개팅을 할 때도 이어져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깨달은 것

평소에 상사별 특징, 이상형 List 50 같은 것을 써볼 정도로, 저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고 분석해보는 것을 좋아해요. 그런데 사람에 대한 관점이 조금 바뀌게 된 계기가 있어요. 작년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을 떠났을 때에요. (이번은 조금 긴 이야기를 시작해볼게요.)

순례길은 총 100km 거리를 5일 동안 나눠서 걷는 일정이었어요. 하루 20km 정도 걷고, 도착한 마을의 알베르게(혼성 도미토리 형태)에서 자고 다음날 또 떠나는거죠.

첫날 폭우를 헤치며 6시간을 걸은 후 첫 알베르게에 도착했어요. 낡은 나무로 만들어진 2층 침대의 아래층에 누워 쉬는데, 위층엔 제 또래 중국인 여자가 있었어요. 젖은 옷과 수건들을 제 침대 부분까지 늘어지게 걸어놨고, 과자 부스러기들을 바닥에 버렸어요. 또, 스피커 폰으로 남자친구와 한참을 통화 했고요. 이후, 모두가 잠든 새벽 6시, 또 그녀의 전화벨이 울리더니, 남자친구의 모닝콜이 시작되었어요.

너무 화가 났지만 참고 둘쨋날의 여정을 떠났어요. 약 20km를 걸은 뒤 다음 알베르게에 도착했어요. 짐을 풀고 쉬고 있는데, 이번엔 바로 맞은 편 침대에 그녀가 있었어요. 이 마을의 10개는 넘는 알베르게에, 300개는 족히 되는 bed중에, 그녀는 왜 또 내 앞에 있을까. 시끄러운 전화와 배려 없는 행동들은 계속되었어요.

셋쨋날, 그녀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가득 안은 채 다시 길을 떠났어요. 도착한 마을에서, 이번엔 그녀가 없기를 바라며 알베르게로 갔어요. bed가 50개는 있어 보이는 큰 방에, 남자 3명과 저뿐이었어요. 알베르게는 보통 오후 6시가 넘으면 직원들은 모두 퇴근하고, 숙박하는 사람들만 남게 돼요. 이 큰 공간에 단 4명만 있는거죠.

저녁 7시 쯤, 샤워를 하고 나왔어요. 한 남자는 저를 위아래로 훑어봤고, 누워있던 다른 남자는 갑자기 일어나 옷을 벗었는데, 온몸이 문신으로 가득했어요. 쉬려고 침대에 누워 있는데, 나머지 한 남자가 일어나더니, 창문을 잠그고 커튼을 쳤어요. 또 옆 창문도 잠그고, 제 침대 앞의 창문을 잠그고, 방 전체를 한 바퀴를 다 돌며 모든 창문을 모두 잠갔고 커튼을 쳤어요. 방은 빛 한 점 소리 한 점 들어오지 않게, 깜깜하고 조용해졌어요.

문득 뭔가 모를 공포가 밀려왔어요. 이어서 중국인 여자가 생각났어요. 그녀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요. 바로 방을 나와, 추운 거리를 배회하며 밤을 새웠어요. 그러다 새벽이 밝아 숙소에 들어갔고, 3명은 쿨쿨 자고 있었어요.
사실 그들은 그냥 제가 지나가서 쳐다 본 거고, 잠시 졸다 깨서 자려고 옷을 갈아입은 거고, 숙면을 위해 빛과 소리를 차단시킨 것일 텐데요. 몸이 지치니까 정신도 약해지고 나만의 불안을 만들어 낸거예요.

네번째 여정도 열심히 걷고 또 새로운 알베르게에 도착했어요. 방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 그 중국인 여자가 있는 게 아니겠어요! 뭔가 모를 반가움이 솟구쳤고 안심이 되었어요. 어제 아침만 해도 너무 미웠는데 말이에요. 여전히 시끄럽게 전화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전화 소리가 다정한 자장가처럼 들렸어요.

그때 느꼈어요. 저 중국인 여자는 바뀐 것이 하나도 없는데, 중요한 것은 제 마음이 달라졌다는 것을요. 사람에 대한 생각은 모두 제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중국인 여자에 대한 스트레스와 전날 밤 알베르게에서의 불안도 다 제 안에서 만들어졌던 거에요.

📍무릇 움직이는 것은 네 마음 뿐이다

영화 ‘달콤한 인생’의 한 대사예요.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며,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니 마음 뿐이다."

관계 속에서 내가 가진 생각들이 때로는 즐거움을, 때로는 불편함을 끌어내요. 어떤 사람과 같이 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건, 나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 자체가 좋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내가 가진 마음가짐이 그 사람을 보는 시선을 만들어요. 물론 지금도 여전히 '이 사람 진짜 로또처럼 안 맞다. 너무 같이 일하기 싫다.' 같은 생각을 하고는 해요. 그래도 타인을 향해 뻗어나가는 미움과 고통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제 마음 안을 더 집중해보려고 해요. 내가 좀 지쳐있지는 않은가? 하고요.

뉴니커 분들도 어떤 사람에 대한 좋거나 혹은 나쁜 감정이 어쩌면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지, 다르게 생각해볼 수 없는지 살펴보는 건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