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행복'에 대해 짚고 가고 싶어요. "난 무조건 행복할 거야. 아비투스*의 7가지 자본을 모두 갖추고 완벽하게 행복하기만 한 삶을 살 거야.''라고 주장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아마도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행복에 대한 개념이 다르겠죠.
* 아비투스 : 도리 메르틴의 책 ‘아비투스‘에서 개인의 품격과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요소로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의 7가지 자본 소개

저는 스무살 무렵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있어요. 서울에 올라와 바깥 사회를 처음 경험하고, 청소년도 어른도 아닌 그 애매함 속에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한 TV 프로그램의 강연에서 배우 박신양의 이야기가 뇌리에 박혀 잊혀지지 않아요.

연기와 돈 사이 고민하던 박신양은 러시아 유학 시절 선생님께 이런 말을 많이 했다고 해요. "선생님, 나는 왜 이렇게 힘든가요?"라고요. 그랬더니 선생님은 대답 대신 러시아 시집을 주었는데, 시에는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고 해요.

인간은 대개 '행복 = 힘들지 않은 인생' 이라고 착각하는데, 아니라는 거죠. 즐거울 때보다 힘들 때가 더 많은 것이 바로 인생이고, 나의 힘든 시간을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인생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요.

그 후로는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왜 이렇게 힘들까' 하는 생각이 조금씩 꿈틀댈 때면, '뭐 어때, 인생 새옹지마야.' 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나는 모든 일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도 이유가 있어서 만난다고 믿는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모든 만남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며, 누구도 우리의 삶에 우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내 삶에 왔다가 금방 떠나고 누군가는 오래 내 곁에 머물지만, 그들 모두 내 가슴에 크고 작은 자국을 남겨 나는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중략) 당신이 내 삶에 나타나 준 것에 감사한다. 그것이 이유가 있는 만남이든, 한 계절 동안의 만남이든, 생애를 관통한 만남이든."

시인 류시화의 에세이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의 한 구절이에요. 이 말처럼 사람이든 사건이든 마주하는 모든 것들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종종 저를 둘러싼 모든 것이 '연결'되어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그래서 행복과 불행을 완전히 구분하기는 어려워요. 책 제목처럼, 그게 좋을지 나쁠지 누가 알아?라고 생각하고, '오히려 좋아'라고 넘기는 것이 오히려 좋아요.

◻️ 내가 느끼는 소소한 행복은

여행 중 스위스에서 독일로 넘어가는 기차를 타고 있었어요. 중간에 스위스 베른에서 기차를 하나 갈아타야 하는데, 처음 탔던 기차가 예정 보다 10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갈아타야 할 기차가 먼저 떠나버렸어요. 그 다음 기차를 타기까지 2시간이 붕 떠 버린 거에요. 독일에서 친구가 기다리고 있어 초조했고,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눈 쌓인 바깥을 돌아다닐 자신도 없었어요.

이왕 이렇게 된거 어떻게 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 역 앞의 한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갔어요. 문을 열자 고소한 커피향과 초콜릿 향이 가득했고, 하얀 수염의 사장님이 따뜻한 눈빛으로 반겨주었어요. 'ㄷ'자 바 테이블 한 구석에 앉으니, 맞은 편엔 형광 오렌지색 머리를 한 친구가 생긋 웃었어요. 저처럼 기차를 놓친 것 같은 한 아저씨도 앉아서 책을 읽었구요. 사장님은 브라질 스페셜티 원두를 직접 로스팅했다며 주문한 필터 커피를 정성스럽게 주었어요. 잠시 후 '커피 향 너무 좋다!'라며 들어오는 스위스 소년 3명이 바 테이블 중앙을 둘러싸고 앉으니, 10석 정도의 자리가 가득 찼어요.

모르는 이들과 앉아 있는 그 순간, 표현할 수 없는 아늑함과 행복감을 느꼈어요. 무언가 마음 속 가득 찬 느낌. 생각해보면 제가 느끼는 소소한 행복은 따뜻한 눈빛, 섬세하게 고른듯한 단어, 다정한 분위기로부터 진해지는 것 같아요. 어떤 목적을 가지거나 '체'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친절함과 배려가 묻어있는 것들 말이에요. 10년을 알고 지낸 사이보다, 가끔은 1시간 보고 말게 될 사이에서도 행복을 느껴요.

◻️ 내가 가진 것 중 당연한 것은

제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또 있어요. 자연과 함께 있는 시간이에요. 출근 길에 나뭇잎이 햇빛을 받아 살랑살랑 반짝이는 것을 볼 때, 찰랑이는 한강 윤슬과 함께 바람을 가로지르며 자전거 탈 때, 또는 우연히 길을 걷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라던지요.

특히 등산처럼 커다란 자연 속에 들어가 있으면, 이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벅차오르기도 해요. 내가 가진 것들 중에 당연한 것은 어떤 것도 없고, 불평불만을 하기엔 이미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행복 전문가'로 불리는 버클리 심리학 교수 대커 켈트너도 대자연 속에서 느끼는 경외심은 행복과 연결되는 중요한 감정이라고 말해요.

◻️ 진정한 행복은 감사의 표현

혼자 스위스 리기산을 갔다 내려오는 길 출출해서 스위스에서 유명하다는 캠블리 과자를 먹었어요. 그러다 포장지에 적힌 "Wahrer Genuss ist ein Dankeschoen an das Leben."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어요. 독일어로 'Wahr'은 '진실된, 참된'을 'Genuss'는 '깊은 행복감, 만끽'을 의미해요. 즉, "진정한 행복은 삶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요.

이 문장과 함께 이번 테마에 대한 답을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행복은 어떤 특별한 순간으로부터 찾는 것이 아니에요. 삶의 어떠한 부분이든 내가 가진 것과 경험할 수 있는 것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행복의 시작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왜 하필 내가 여행 온 날 이렇게 춥고 폭설이 오는거야?'라고 생각하기 보다, '길 걷다 눈 맞은 대왕 크로와상을 보다니.' 하고 한 조각 감사함을 느끼기로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