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 우리가 필요로 하는 '나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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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책장

나를 찾아줘: 우리가 필요로 하는 '나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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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은 "다시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읽을 가치도 없습니다 (No book is worth reading that isn't worth re-reading)"고 했습니다.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를 10년 만에 다시 펼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첫 번째 독서에서는 치밀한 서사와 스릴러로서의 매력에 빠졌다면, 이번 다시 읽기에서는 주인공 에이미 던이라는 캐릭터에 오로지 집중해 봤습니다.
그녀의 행동과 선택을 면밀히 들여다보면서, 소설 속 여성 캐릭터의 의미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찾아줘

이야기의 시작

『나를 찾아줘』는 결혼 5주년을 맞은 닉과 에이미 던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동화 시리즈 '어메이징 에이미'의 모델이었던 에이미가 갑자기 사라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남편 닉이 주요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사실 에이미는 남편의 불륜에 대한 복수로 자신의 실종과 살해를 위장한 것으로 밝혀집니다. 그녀의 치밀한 계획과 폭력적인 행동들은 출간 당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에이미의 심리적 배경: 완벽을 강요받은 삶

에이미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성장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어메이징 에이미' 동화의 실제 모델이었던 그녀는 부모의 이상화된 기대 속에서 자랐습니다. 책 속의 에이미는 언제나 올바른 선택을 하고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캐릭터였고, 실제 에이미도 그런 완벽함을 강요받았습니다.

이러한 성장 환경은 에이미에게 두 가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나는 극단적인 완벽주의와 통제 욕구입니다.
다른 하나는 진정한 자아와 타인의 기대에 맞춘 페르소나 사이의 깊은 분열이죠.
그녀의 유명한 '쿨 걸' 연기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혼 생활에서도 에이미는 완벽한 아내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닉의 배신은 그녀의 통제된 세계를 무너뜨렸습니다. 실종을 위장한 그녀의 계획은 뛰어난 지능과 조종 능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오랫동안 억눌러온 진정한 자아의 폭발적인 분출로도 볼 수 있습니다.


여성혐오적 비판: 위험한 고정관념의 강화

에이미에 대한 첫 번째 해석은 그녀가 위험한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1. 여성 캐릭터의 부정적 묘사

에이미는 사이코패스적 성격을 가진 극단적인 캐릭터로 그려집니다. 그녀는 치밀하게 자신의 실종을 계획하고, 거짓 성폭력을 조작하며,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릅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감정적이고 복수심에 사로잡힌 여성'이라는 부정적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2. 성폭력과 피해자 신뢰 문제

특히 에이미가 성폭력을 위조하는 설정은 실제 피해자들에게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이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3. 여성의 폭력성 강조

에이미의 복수는 남편의 불륜에 비해 지나치게 과도한 것으로 그려집니다. 이는 여성의 분노를 비이성적이고 과도한 것으로 프레임화할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적 해석: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

반대로 에이미를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입장도 존재합니다:

1. 여성의 복잡성과 다면성

에이미는 전통적인 여성 캐릭터의 틀을 깨는 복잡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착한 여성'이나 '나쁜 여성'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자신의 욕망과 야망을 드러내는 입체적 캐릭터입니다.

2. '쿨 걸' 신드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에이미의 '쿨 걸' 독백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역할을 정면으로 비판합니다. "난 멋진 여자였어. 하지만 그건 진짜 나가 아니었지"라는 고백은 많은 여성들의 경험을 대변합니다.

3. 권력 구조의 전복

에이미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수동적 역할을 거부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서사를 직접 쓰고, 권력 관계를 뒤집으며, 사회가 정한 규칙을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합니다.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지평

문학사를 돌아보면 남성 캐릭터들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그려져 왔습니다. 그들은 영웅이 될 수도, 악당이 될 수도 있었고, 강하거나 약하거나, 매력적이거나 추하거나, 지적이거나 우둔할 수 있었습니다. 로빈 후드이면서 동시에 노팅엄의 보안관이 될 수 있었고, 존 왕자이면서 리처드 왕이 될 수도 있었죠.

반면 여성 캐릭터들은 놀랍도록 제한된 역할만을 부여받았습니다.
어쩌다 묘사되는 진취적인 모습 그마저도 대부분 남성 주인공과의 관계 속에서만 정의되었죠. 『로빈 후드』의 마리안은 오직 '하녀'로만 존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에이미 던의 존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녀는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을 수 있지만, 적어도 자신의 서사를 직접 만들어가는 주체입니다. 한니발 렉터가 좋았다거나 TV에서 그를 보여주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단지 그가 지옥의 화신처럼 강한 이미지를 주고, 우리가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는 것뿐입니다. 여성도 같은 공간에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에이미의 극단적인 행동도 하나의 캐릭터 특성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길리언 플린도 인터뷰에서 이와 비슷한 맥락의 발언을 했습니다.
"끔찍한 여성 캐릭터를 쓴다고 해서 여성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오히려 "조연이나 조력자, 혹은 사랑스러운 결점만을 가진 주인공으로서의 제한된 역할"이 더 문제적이라고 지적했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다양성입니다.
선한 여성 캐릭터도, 악한 여성 캐릭터도, 복잡하고 모순된 여성 캐릭터도 모두 필요합니다. 에이미 던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은 우리가 얼마나 이런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갈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에이미 던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불편함은 어쩌면 현대 서사에 필요한 도전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우리가 캐릭터 구축에 대해 가진 기존 관념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고,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이것이야말로 『나를 찾아줘』가 현대 문학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