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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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책장
타오: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다

미스터리 형사 소설을 읽고 눈물을 흘린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최근에 김세화의 『타오』를 읽으며 당혹스럽게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눈물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이 글을 통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최근 한 기사가 제 마음을 흔들어놓았습니다. "우리가 요구하게 된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에는, 시선을 낮춰 그 존재조차 흐릿한 죽음을 목도하는 일 또한 포함된다." 한겨레 신문의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에서 읽은 이 문장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 존재조차 흐릿한 죽음'.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는 이처럼 주목받지 못한 채 사라져 가는 생명들이 있습니다. 『타오』는 그중에서도 특히 해외 유학생들이 겪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파헤치는 소설입니다.
출간일: 2024년 10월 31일
출판사: 나비클럽
페이지 수: 456쪽
시리즈: 나비클럽 소설선
이야기의 시작
🌧️ 폭우가 쏟아내는 비밀
어느 폭우 내리는 밤, 이슬람 사원 근처에서 한 여성이 폭행을 당합니다. 피해자는 대학에서 다문화 연구를 하는 사회학과 교수. 이슬람 사원 건립을 지지해 왔던 그녀를 향한 폭행은, 혐오 범죄로 보이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한 달 뒤, 또 다른 폭우 속에서 발견된 시신은 이 사건이 단순한 혐오 범죄가 아님을 암시합니다.
👮♀️ 진실을 쫓는 사람들
사건을 맡은 오지영 형사과장은 40대 중반의 여성 형사입니다. 감정을 배제한 채 오직 사실관계 확인에만 집중하는 그녀의 모습은 때로는 차갑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될수록 그녀는 이 사건이 단순한 연쇄 살인이 아님을 직감합니다.
수사 과정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타오'. 베트남어로 '푸른 숲'이라는 뜻을 가진 이 이름의 주인공은 한국에서 유학 중이던 베트남 여학생이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몇 달 전, 그녀는 갑자기 모든 연락을 끊고 사라졌습니다.
🧩 드러나는 진실의 조각들
오지영은 타오의 흔적을 따라가며 충격적인 사실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온 유학생들이 겪는 현실, 그들을 둘러싼 구조적 폭력, 그리고 이를 외면하는 사회의 모습까지. 수사는 단순한 범인 찾기를 넘어,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됩니다.
특히 여성 유학생들이 겪는 현실은 더욱 가혹했습니다. 학업과 생계를 동시에 꾸려가야 하는 압박 속에서, 일부는 불법 취업의 유혹에 노출됩니다. 브로커들의 감언이설, 고용주들의 착취, 성희롱과 폭력까지. 타오 역시 이런 폭력의 사슬 속에 있었습니다.
🕊️ 폭우가 멈추지 않는 이유
매번 폭우가 내릴 때마다 새로운 시신이 발견되는 연쇄 살인 사건. 하지만 이 비는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닙니다. 범인이 흔적을 감추기 위해서지만, 그것은 우리 사회가 외면해 온 죄책감의 표현이자, 정의를 향한 절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지영은 이 비가 완전히 멈추기 위해서는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소설이 비추는 우리 사회의 민낯
『타오』는 한국 사회의 여러 층위에 존재하는 구조적 문제들을 예리하게 파고듭니다. 표면적으로는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는 미스터리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차별과 편견, 구조적 모순이 촘촘히 담겨 있습니다.
⛔ 교차하는 차별과 혐오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종교 문제를 넘어, 다문화 수용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 여성 범죄 수사의 현실
40대 여성 형사과장이라는 주인공의 설정은 한국 사회의 젠더 문제를 자연스럽게 드러냅니다. 남성 중심적인 조직 문화, 여성 피해자를 바라보는 편향된 시선, 그리고 여성 수사관이 겪는 내부적 차별까지, 수사 과정 전반에 걸쳐 젠더 문제가 깊이 있게 다뤄집니다.
📰 언론의 선정성과 편향성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 역시 날카로운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문화적 갈등을 부각하고 자극적인 보도에만 치중하는 언론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 유학생이 겪는 한국의 현실
소설의 중심에는 베트남 유학생 '타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녀의 비극을 통해 한국의 유학생 제도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학령인구 감소와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 유학생 유치에 적극적인 대학들. 하지만 이들을 위한 제도적 지원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특히 여성 유학생들은 외국인, 학생, 여성이라는 삼중의 취약성 속에서 더 큰 위험에 노출됩니다. 불법 취업을 알선하는 브로커들의 감언이설, 열악한 노동 환경, 성희롱과 폭력까지. 타오의 이야기는 이러한 구조적 폭력의 결과물입니다.
👥 무관심이라는 공범
이 모든 문제의 근저에는 우리 사회의 무관심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통계로 드러나고, 간간이 보도되는 문제들이지만 대부분 '남의 일'로 치부됩니다. 소설은 이러한 무관심이 결국 우리 모두를 공범으로 만든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한국형 사회파 미스터리의 새로운 가능성
『타오』는 한국 추리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줍니다. 전통적인 미스터리 장르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그 안에 날카로운 사회 비평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 긴장감과 메시지의 균형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미스터리 장르 특유의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무거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균형감입니다. 폭우가 내릴 때마다 발견되는 시신들,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은 독자들을 끝까지 몰입하게 만듭니다. 동시에 사건 해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사회 문제들은 독자들에게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줍니다.
✒️ 기자 출신 작가의 시선
김세화의 30년 기자 경력은 작품에 특별한 깊이를 더합니다. 사회 문제를 다룰 때의 치밀함, 취재된 사실에 기반한 디테일, 그리고 현장을 보는 예리한 시선은 소설에 리얼리티를 부여합니다. 2024년 한국추리문학상 대상 수상은 이러한 작가의 역량을 입증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파 미스터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성과로 평가받습니다.
💭 아쉬운 지점들
다만 본격 미스터리를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아쉬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초반 전개는 풀리지 않는 사건 기록을 보듯이 답답한 부분도 있습니다. 또한, 사회 문제를 다루는 데 치중하다 보니, 추리 소설로서의 치밀한 논리나 반전의 묘미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들은 오히려 작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결과로 보입니다. 『타오』는 처음부터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닌,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들여다보는 거울이 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의도는 충분히 성공적으로 구현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부끄러움의 눈물
"미... 미안합니다."
소설 말미에서 박종구 형사가 타오의 어머니 앞에서 겨우 뱉어낸 이 한마디는, 오랫동안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제가 이 형사물을 읽으며 흘린 눈물의 정체를.
그것은 부끄러움의 눈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타오'들을 무심코 지나쳤을까요? 편의점 카운터 너머에서, 늦은 밤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위에서, 좁은 고시원과 지하 공간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절박한 현실을 외면해 왔습니다. 때로는 그들의 존재가 불편하다는 시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존재조차 흐릿한 죽음을 목도하는 일." 이제 이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보지 않으려 했던 것들,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들을 『타오』는 우리 앞에 조용히 펼쳐 보입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인지를.
한 권의 추리소설이 이토록 뜨거운 눈물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또 있을까요? 『타오』는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 우리 시대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거울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이 비극의 방관자이자 공범이었음을 보여줍니다.
타오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 아닐까요? 이 부끄러움을 어떻게 마주하고, 어떻게 변화로 이어갈 것인지는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은 것 같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죠. 타오 어머니. 제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