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작성자 블라디
평범한 사람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
하얼빈
2년전 김 훈 선생님의 ‘하얼빈’을 읽으며 영화로 만들어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드디어 같은 제목의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책도 영화도 안중근의 행적을 사실 그대로 보여 주기에 어느 것이 더 좋다 할 수는 없습니다. 작가는 글로, 감독은 영상으로 보여주는 점만 다를 뿐입니다.
내심 바랬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졌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주연이라 더욱 반가웠지만 개봉도 전에 조금은 별로(?)라는 평이 들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해외 로케이션도 포함되어 있었고 예고편에서 꽁꽁 언 강 위의 주인공 모습이 궁금했기에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역시나, 본 후에 평가는 ‘아쉽지만, 그래도 볼 만하다’ 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배우들의 캐스팅입니다. 주인공을 오히려 박정민 배우가 했다면, 무명 배우들이 좀 더 등장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입니다. 유명한 배우들과 신체조건이 월등한 배우들, 항상 비슷한 연기톤의 배우들이 오히려 집중하는데 걸림돌이 아니었나 싶네요.
각설하고,
기억에 남는 세 장면이 있었습니다.
#1. 전투신
영화 초반에 독립군들과 일본군 간의 전투신이 있습니다. 흰 눈 쌓인 만주 어딘가에서 치뤄진 전투는 그야말로 치열한 아수라장입니다. 진흙탕 속에서 총과 칼로 살기위해 죽일수 밖에 없는 치열하고 비참한 장면들을 아주 잘 보여주었습니다. 몸이 비틀릴 정도로 잔인한 장면도 있었는데요.. 그 중에 너무나 인상에 남는 한 장면은 한 독립군이 일본군을 죽이고 나서 그 시체위에서 눈이 돌아가(눈의 흰자만 보이는 상황) 넋을 잃고 칼을 허공에다가 계속 휘두르는 장면이 꽤 오랫동안 노출됩니다. 너무나 충격이었습니다. 전투신에서 주인공의 멋진 장면들을 더 넣었어도 될 텐데, 왜 굳이 이 장면을 오랫동안 넣었을까.. 전투의 비참함을 보여주기 위한 감독의 의도였다면, 정말이지 최고였다 하겠습니다.
그 배우는 이 영화에서 대사 한마디 없는 단역 배우였던 것 같은데, 연기와 감독의 의도가 제대로 맞아떨어졌다 싶었습니다. 우리가 쉽게 넘기는 독립군들의 ‘전투’는 이처럼 넋이 나갈 정도로, 미쳤을지도 모를 정도의 비참한 전투였음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다시 한번 독립군들의 기개와 헌신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2. 이토 히로부미
이토가 하얼빈역으로 가는 기차에서 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온 나라인데,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다.국난이 있을 때마가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지..“
조선시대엔 의병, 일제시대엔 독립군...
독재 시대와 현재에는 시민..
국란이 있을 때마다 나라를 구한 건 백성과 시민이었습니다. 거기에 왕과 유생들이 항상 문제였고, 12.3 계엄을 겪은 지금 이 시기에도 적용되는 말이라 너무너무 와 닿은 대사였습니다.
‘우리 조상’과 ‘현재의 우리’는 대단한 민족입니다.
#3. 까레이 우라
이토를 암살하기 전 안중근이 다른 동지에게 ‘대한독립 만세’가 러시아어로 어떻게 되는지 물어봅니다. 그는 ‘까레이 우라’(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치면 된다고 일러줍니다. 그 당시 하얼빈은 러시아 소관의 땅이었습니다.
거사를 치르고 안중근은 잡혀 끌려가면서 안중근은 계속 외칩니다.
‘까레이 우라~ 까레이 우라~ 까레이 우라~‘
실제 촬영된 영상을 보면 안중근은 순순히 잡혀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감독의 연출이었을 수도 있고, 원본 영상에서는 촬영되지 않은 부분에서 안중근이 진짜로 계속 외쳤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이 어떻든, 대한민국의 독립을 더욱 알리기 위해 러시아어로도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던 안중근의 그 마음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인이 찍은 원본 영상(일본이 사들였다고 하네요.)에는 저격 장면은 사라져 있다고 하네요. 이토의 행렬과 안중근이 잡혀가는 영상만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안중근은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저격하여 3발을 이토에게 4발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명중시켰다고 하네요. 2발은 이토의 오른손 팔꿈치를 지나 가슴을 관통하여 지났고 한발은 복부를 관통하여 사망했다고 합니다. 안중근은 알아주던 명사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난한 재판을 거쳐 사형을 당했습니다.
1900년대의 역사속의 안중근.
2022년 책으로 만난 안중근.
2024년 영화로 만난 안중근.
내란을 겪으며 2025년을 맞는 대한민국에 2025년의 안중근은 ’우리 모두‘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