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구간 그리고 벚꽃구간
작성자 블라디
평범한 사람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
한강구간 그리고 벚꽃구간
기다리던 유병욱 님의 책이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혹시나해서 검색해 봤더니, 지난 달에 '인생의 해상도'라는 제목으로 등장했네요...
발견(센서, 관점), 음미(겹, 음미), 창조(창조, 매일)라는 세 챕터로 쓰여진 책입니다.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좀 더 해상도 높은(더 선명하고 풍부하게 살아가는) 날들이 되도록 도와주는 내용입니다. 이미 세상에 나와 있는 다른 3권의 책들(생각의 기쁨, 평소의 발견, 없던 오늘)과 맥을 같이 하는 내용이네요. 늘 하는 생각 속에서,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소의 시간 속에서, 코로나라는 제약에 갇혀 있든 일상 속에서,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평범한 삶 속에서 발견하고, 깨달은 바를 이제는 실행해 볼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책입니다.
이전 3권의 책을 읽으면서도, 이번 '인생의 해상도'를 읽으면서도 특별할 것만 같은(광고를 만드는 직업을 가진 이의 삶은 뭔가 특별할 것 같다는 선입견?) 작가의 삶이 그리 특별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 생각하는 것도 나와 그리 다르지 않다 느껴지기에 참 편하게 다가옵니다. 이번 책에도 멋지고 아름다운 문장과 내용들이 많이 있습니다. 2024년 한 해를 마무리 하며 2025년을 계획하시는 분들이 꼭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센서, 관점, 겹, 음미. 잘 발견하고, 잘 골라 내고, 더 풍부하게, 세밀하게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앞에는 남들보다 훨씬 선명한 세상이 놓여 있을 겁니다. p.183
어찌 매 순간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인생의 무게에 주눅 들지 말고, 참았다 마시는 커피처럼 가끔 볕 좋은 곳에 의자 하나 내놓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행복의 구간을 설정해 보세요. 벚꽃 구간. 그 빛으로 쉽지 않은 시대를 건너고, 덕분에 맑아진 눈으로 가끔씩 찾아오는 해상도 높은 순간들을 포착하고, 더 깊숙이 음미하길 바랍니다. p.268
아이가 자라는 모습.
제때 마시는 커피 한 모금.
아무렇지 않은 동료들과의 점심.
가끔 씩 찾아오는 짧은 성취.
다른 도시의 음식과 냄새.
차창 밖으로 손 흔드는 아이.
볼륨을 투둑 올리게 만드는 음악.
다시 오지 않을 것이 분명한 순간들.
우주의 시간에서 우리는 잠깐 반짝이고 사라지는 불빛 같은 존재입니다. 잠깐이란 말이 민망할 정도로 명멸하는 점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이 짧은 시간을 마음껏 음미해야 해요. 반짝이다 사라질 점에게, 내일로 미룰 시간이 어디 있나요? 최선을 다해 우리는 눈앞에 놓인 세상을 즐겨야 해요. p.에필로그
*한강구간 - 작가는 주로 지하철을 타고 다닙니다. 압구정역과 옥수역을 연결하는 동호대교를 지나는 구간은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와 펼쳐진 한강과 하늘을 볼 수 있는 1분도 채 되지 구간입니다. 작가는 이 구간을 '한강구간' 이라 하였습니다. 똑같은 노선을 이용하는 저도 매번 이 구간을 지나며 바깥풍경을 바라보곤 했었습니다. '한강구간'이라는 4글자가 머릿속에 각인 되고서는 이 구간 만큼은 하던 걸 멈추고 고개를 들고 바깥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무엇이든 관찰하고 무엇이든 생각하려 애쓰는 구간이 되었습니다.
*벚꽃구간 - 365일을 60초로 환산했을 때 벚꽃이 피는 시간은 1-2초 정도라고 합니다. 365일, 60초 내내 행복할 순 없으니, 봄의 소식을 알려주는, 벚꽃으로도 모든 대화가 통하는, 60초 중 가장 빛나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벚꽃구간'(행복의 시간)을 의도적으로라도 설정해 보라 작가는 권합니다.
생각의 기쁨, 평소의 발견, 없던 오늘을 다시 꺼내 들고, 2024년을 마무리 합니다.
(아래 글은 예전에 '없던 오늘'을 읽고 쓴 글입니다)____________________
유병욱이라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잘은 모르지만 카피라이터+α의 역할 인것 같네요)가 있습니다. 광고업계에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이다 보니 이 분이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는 모르고, 나랑은 상관없는 분야, 딴 세상에 존재하는, 아마 대단할 것이라 추측되는 분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업계에 20년 정도 일을 하고 있다하니, 비슷한 나이이거나 몇 년 선배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가 쓴 책 ‘평소의 발견’을 접하고, 자연스레 또 한 권의 책 ‘생각의 기쁨’을 집어드는 건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카피라이터를 꿈꾸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읽어야 할 책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정의는 무엇인가나 자본론처럼 고전이 될 만한 책은 아닙니다.(개인 생각) 그냥 가볍게 때론 정독하며 ‘오호,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대단한대? 나도 생각 좀 하면서 살아야 겠구나. 사물을, 세상을, 현상을 다르게 보며 살아봐야겠는데?’라고 다짐하게 만드는 책들입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책에 쓰여있는 문장들이었습니다. 카피라이터 답게 문장들이 명확하고 쉽게 읽을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습니다’체의 문장이 가장 맘에 들었습니다. 저 책들을 썼을 무렵은 16년차 정도의 경력이었으니, 그 정도면 ‘전문가’라는 티를 내며 우위를 점하여, 독자들을 가르치려 들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책에서는 ‘겸손함’이 마구 느껴졌습니다. ‘~습니다’ 체가 한 몫 했겠지만, 문장 자체만으로도 겸손함은 전달되었습니다.
그가 이번에 세 번째 책을 출간했습니다. ‘없던 오늘’이라는 4글자의 제목과 표지가 예전(노란색 계열의 표지)과 다르게 푸른 계열 건물 그림들의 낯선 표지가 얹혀진 책입니다. 기존의 다섯 글자 제목(소제목들도 대부분 다섯 글자)이 좋았는데 이번에 다섯 글자의 제목과 노란 계열의 표지를 하지 않은 이유를 서문에 설명하였지만,,, 그래도 조금은 낯설었고, 지금도 낯선게 사실입니다. ‘~습니다’체가 아닌 ‘~다’체로 바뀐 것도 더욱 낯설게 합니다. ‘없던 오늘’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느낀 그 만의 생각들을 적어놓은 책입니다. 코로나로 사라진 것, 사라질 것, 사라지지 않을 것, 사라지면 안 될 것들 등을 그 만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또 한번 겸손하게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역시나 명확하고 쉽게 읽히는 문장들로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시선, 관점, 통찰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저명한 작가님들의 문장들을 인용하며 자기는 거기까지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 겸손해 하지만, 그만의 주옥같은 문장들은 감탄을 불러일으키도 했습니다.
‘뾰족한 날들에 지칠 땐, 뭉툭한 과거를 연다’
'진정성은 진지함과는 다른 말이다. 진지함이 자신의 생각을 써내는 '방식'이라면 진정성은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증명하는 '태도'이다'
‘심호흡은 중요한 순간이라는 신호를 몸에 보내는 것이다’
‘거인 한 명이 이끄는 회의실보다, 능력자 다섯 명이 모인 회의실에서 놀라움이 태어날 확률이 훨씬 높다’
‘인생의 벽을 만났을 때 우리가 할 일은, 두려워하며 피하거나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의를 갖춰서 두드려보는 것이다’
‘사람은 변한다. 사람은 시간을 들여 흡수한 지식과, 동경하는 롤모델, 그리고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들의 영향 속에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된다’
어떻게 이런 생각과 표현들을 할 수 있을까...
‘없던 오늘’을 읽으며 반갑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었습니다. 최근에 내가 보았던,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른 시각으로, 좀 더 깊이 파헤쳤기 때문인데요. 가령 그가 이야기 하는 진정성, 예의, 존중, 한강구간, 디지털과 아날로그, 세대갈등, 영화 비포 시리즈, 봉준호 등과 같은 아이템들이 그런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언급하며, 내가 생각했던 것들과 다른 얘기들이 기술되었지만, 같은 것들을 봤다는 것과 그것들을 보며 다르게 생각했다는 것들이 반갑고 신기했습니다.
일에 대한 진정성, 일을 포함한 주변의 것들에 대한 예의와 존중, 매일 같이 지나가는 한강 구간, 디지털(핸드폰, 유튜브, 넷플릭스)과 아날로그(종이책)의 장단점, MZ세대와 그 외 세대와의 갈등은 정말 세대의 문제일까, 봉준호 감독이 보여준 당당함과 자신감, 지칠 때 과거의 것들을 다시 한번 돌이켜 보며 그 때의 감정을 느껴보거나 그 때 알 수 없었던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거나 하는 레트로 여행, 영화 같은 것들.
여러 이야기들을 들려주지만, 코로나 시대에 느끼는 내용들이라 하고자 하는 말은 다른 책들과도 비슷한 듯도 하지만, 그 만의 특유한 생각은 이런 것 같습니다.
음미력을 키우고 당연했던 것들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는 것.
‘지금 내게 없거나, 곧 빼앗길 위기에 처한 것들 앞에서 ’지금 이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구나‘에서 음미는 시작된다. 당연했떤 것들을 너무나 많이 빼앗겨버린 우리. 그래서 우리에겐 그 동안 없던 능력이 하나 생기고 있는 건 아닐까? 음미력’
‘우리는 이 기회를 빌려 질문해야 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어떤 것이 사실 불필요하지는 않았는지,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사름들에게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했는지, 반대로 질병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는 이는 얼마나 소중한지.’